디자인과 심리학 25. 사회적 증거 현상
사회적 증거 현상(Social Proof Effect) :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정해나가는 현상
오늘 먹을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오늘 볼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새로 투자할 종목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A : "딱히 먹고 싶은 거 없을 땐, 무난하게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가거나 사람 많은 곳으로 가요"
B : "제 주변 사람들도 다 재밌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C : "아직 제가 자세히는 몰라서, 우량주 중 하나에 투자해보려고 해요"
점심 메뉴 선택부터 진로 선택까지, 우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아쉽게도 우리에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란 선택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행히도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생활 전반을 들여다보자.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선택을 해왔다. 리뷰가 많고 평점이 높은 식당이라면 고민 없이 주문을 했고, 베스트셀러라면 제목만 보고 구매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추천한 장소는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곳이란 확신을 내리기도 했고, 유행이라고 하면 익숙하지 않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기꺼이 나가기도 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린 좋은 결과를 얻었다. 우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 소비자가 될 수 있었으며,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수에 맞춰 내 행동과 선택을 조정해나가는 현상, 그것이 바로 사회적 증거 현상이다. 잠깐, 그렇게 선택을 해오긴 해왔는데...
과연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을까?
사회적 증거 현상을 주목한 이유는 두 가지다.
1. 그렇게 내린 선택은 쉬운 선택이었을 뿐,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2. 다수가 선택했기에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리스크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한동안 코인 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가 생각난다. 갑자기 쓰나미처럼 쏟아졌던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 및 교육, 강의가 생각난다. 똑같은 패션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눈에 띄게 많아졌던 날이 생각난다. 마라탕 가게가, 인형 뽑기 매장이,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 매장이, 프리미엄 독서실이....
사회적 증거에 따라 결정을 내린 수많은 예시들을 보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선택해야 할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려울 때, 슬그머니 타인의 선택으로 눈을 돌리곤 한다.
만약 그 식당의 메인 메뉴, 영화의 장르와 줄거리, 투자할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거기에 더해 본인만의 주관이나 기준이 생긴다면, 타인에 선택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인 선택을 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도 않을뿐더러 비효율적이다. 여기저기서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일에 소비할 에너지는 부족 해질 테니 말이다.
배달 앱,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평점 순, 리뷰 순, 인기 순'같은 필터 옵션을 적극 이용하고, '이미 2,458명이 이 제품을 선택했어요'같은 UX Writing에 이끌려 구매 결정을 내리는 건, 대부분의 상황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니 적절히 사회적 증거에 따른 선택을 하되, 내가 그렇게 선택했다는 것을 인지하기만 하면 된다. 본인의 선택이 주체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니까 말이다.
디자이너라면(꼭 디자이너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고객이, 유저가, 소비자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마감 기한과 예산, 기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다 보면, 그 목표는 쉽게 좌절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디자이너조차, 사회적 증거에 따른 선택을 하기 쉽다.
자원은 한정적인데, 최선의 아웃풋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질적 목표와 다양한 변수에 집중하는 것보다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베팅하는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항상 가치가 있다. 애초에 무엇을 목표로 하는 제품이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건지, 어떤 잠재 고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떠올리며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언제나 가치가 있다.
"내가 그저 쉬운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우리가 사회적으로 증명된 정보들에 본능적으로 이끌린다는 걸 인지할 때, 비로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