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심리학 26. 희소성
이런 타이틀을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다양하다.
"삭제되기 전에 빨리 읽으러 가야겠다!"
"뭐 어떤 정보가 담겨있길래 그래?"
"삭제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을 것 같아"
이렇게 급박한 감정을 일으키는 타이틀을 사용한 광고나 컨텐츠를 꽤 자주 보셨을 것이다. 이것이 전환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건 알겠지만, 무분별한 사용은 오히려 독이 된다.
아마 본 글의 타이틀도 높은 확률로 독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얘기해보려 한다.
+당연하게도 이 글은 3시간 뒤에 삭제되지 않습니다.
여기 동경하는 인플루언서의 굿즈를 정말 사고 싶어 하는 A라는 사람이 있다. A는 이미 굿즈 구매를 위해 필요한 충분한 돈을 마련해놓았고, 스토어 오픈 소식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A뿐만이 아니었다. 구매를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A에게 '한정 수량', '선착순' 같은 변수는 재앙과도 같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재앙은 보란 듯이 현실이 되었다.
'많은 주문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폭발적인 주문에 이끌려 품질을 놓치기보단,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량을 조절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소성'은 A의 구매 욕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기보단,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운 좋게 구매에 성공한다면 A의 감정 상태는 달라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놓친 기회를 내가 가졌다'는 생각은 만족도를 극대화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 동경하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애정도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반면 그 인플루언서가 좋아서 팔로우는 하고 있지만 '열성적인 팬'은 아닌 B라는 사람이 있다. B 또한 굿즈 판매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딱히 큰 관심을 두고 있진 않다.
B는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판매하는 굿즈'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 굿즈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같은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을 잠깐이나마 해보았다.
B에게 '한정 수량', '선착순' 같은 변수는 호기심과 급박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내일이든, 다음 주든 미룰 수 있었던, '필요하다면 사볼까?'란 물음에 답을 해야 하는 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와버렸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희소성'은 B에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기보단, 구매 욕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운 좋게 구매에 성공한다면 B의 감정 상태는 달라질 것이다. 한정된 기회를 잡았다는 긍정적인 경험 자체가 발단이 되어, 그 인플루언서를 애정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만 보면 언제 어디서나 '희소성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쉽고 빠르며 효과적인 전략이란 생각이 드실 수도 있다. 하지만 본 글의 타이틀(이 글은 3시간 후에 삭제됩니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평소에 필자의 글을 즐겨 읽으시는 분이라면, 3시간 뒤면 사라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루지 않고 글을 읽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연히 이 글을 마주한 분이라면 어떨까? 혹은 가끔 읽으시는 분이라면?
3시간 뒤면 삭제된다는 말은 공갈이나 협박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강력한 느낌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의 씨앗을 만들어내기엔 충분하다. 나는 지금 당장 읽을 여유가 없는데,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천천히 읽고 싶은데, 마치 내 행동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희소성 법칙을 적용하려는 바로 그곳에, '희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지 자문해보는 게 좋다.
아까 보았던 인플루언서의 '폭발적인 주문에 이끌려 품질을 놓치기보단,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량을 조절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라는 말엔 희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만약 정말 본 글에 이런 타이틀을 사용할 거였으면, '정말 평소에 제 글을 즐겨 읽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해당 정보는 딱 3시간만 노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희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반면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흔히 사용되는 '얼리버드 특가! 3시간 36분 후면 가격이 인상됩니다'라는 카피라이팅엔 희소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자기 복제가 가능한 컨텐츠에 이러한 옵션은 오롯이 판매량 증대를 위한 전략일 뿐 실질직으로 수강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이런 전략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컨텐츠 플랫폼 <롱 블랙>에서도 희소성 법칙을 사용했다. 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읽을 수 없는 아티클을 매일 제공하는 컨텐츠 플랫폼이다. 과연 여기엔 희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들은 '나중에 보기 위해 다른 곳에 저장한 글이나 링크는 높은 확률로 보지 않게 된다'라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법칙을 적용했다.
<롱 블랙>의 '여러분들이 보고 싶어서 저장했던 아티클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24시간 뒤에 글을 내리겠습니다' 말에도 희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법칙과 방법론은 참 편하다. 그대로 따라가면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객에 따라, 제품에 따라, 규모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니 '이게 법칙이니까 꼭 이래야만 해!'같은 생각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물론 법칙과 방법론은 누군가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연구되어 탄생했다. 그들의 수많은 실험과 연구 끝에 도출해낸 결과를 모두 무시한 채, '내가 알아서 다 할 수 있어' 같은 생각 또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건 단지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