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끼적 작가노트
부치지 못한 편지라고 할까..
꽤나 긴 글을 써 놓고 결국 발행 키를 누르지 못했다. 마음이 아프거나 하고 싶은 말들을 있을 때 실컷 써 놓은 글을 결국 노출시키지 못하고 속으로 보관하는 글들이 꽤나 있다. 훌륭한 작가들의 끼적이는 노트가 궁금해졌다. 어떤 내용의 글들이 있을까..?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비 때문인지 사무실 가득 틀어 놓은 온풍기의 온기도 그다지 고슬 거리는 하루가 아닌 비에 젖어 마르는 과정 같은 몸 상태였다. 옆 사무실의 커피 머신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받아와 홀짝거리며 창밖을 한 번씩 흘겨보며 하루를 보냈다. 일에 집중이 유난히 안 되는 날이었다. "지금부터 딱 1시간 만에 지금 벌여 놓은 일에 집중한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일에 집중하기를 몇 번 하고 나니 하루가 지나 퇴근시간이 되었다.
12월에 되니 머릿속이 정리되지 못한 일들이 오래전 소중한 카세트테이프의 진한 고동색 테이프가 눈앞에 엉클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근히 하나씩 정리 중이지만 생각이 많은 만큼 몸으로 해야 할 일도 많아져 몸도 머릿속도 분주하다. 그럴 때일수록 차분해지고 싶어 음악을 틀고 오히려 차분한 독서를 하기도 한다. 밤늦게까지 성경을 읽고 창세기의 야곱 이야기 중 열두 아들을 읽어 내려가며 신앙의 관점과는 다르게 속으로 말하기도 한다. "라헬을 그렇게 사랑했다 메 여종들에게서 그렇게 많은 아들을 낳는다고?"라며 중얼중얼거리기도 한다.
내 안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을 계속 쉬지 않고 생각하거나 메여있지 않지만, 난 아직 큰일을 하기엔 먼 사람인가 보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은 일들 수십 개가 모여 덩어리를 만들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 번의 큰 돌덩이가 그동안 채워 놓은 나의 웅덩이에 떨어지는 순간 모든 물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를 다독거리며 평정을 찾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남편만 한 울타리가 있다는 든든함은 지울 수 없다는 내 맘속 무언의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위로받고 싶어서 말하고 싶어서, 젠장.... 잘 못 걸린 전화라고 끊고 싶었다. 내 편이 되어 줘도 모자란 판에 자신의 모든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나를 타이르다 타박하다 하는 모습에 늘 당연한 상황이려니 하지만, 허전하고 참 도움이 안 되는 "인. 간. 이. 구. 나" 생각하며 그래도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난 힘들어도 웃음이 나고 좋아도 웃음이 난다. 물론 더 많이 힘들어야 웃음과 울음이 한꺼번에 나기도 한다. 신나게 한번 웃고 나면 힘듦이 사라지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 딸아이와 한바탕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딸애는 말하는 데 있어 타고난 웃음보따리가 있다. 듣고 싶어 듣는 건 아니지만 딸아이의 친구와 영상통화하는 내용이 크게 들린다. 딸애 친구들 와의 통화 내용이 웃음이 나와 행여 들리지 않게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일상이란 별일 아니다. 별일 아닌 것 속에서 별일인 것처럼 울고 웃는 평범한 삶이 그래도 감사하다는걸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