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면 알람처럼 눈이 떠진다.
새벽 4시면 알람처럼 눈이 떠진다. 주섬주섬 식구들이 깰세라 조심스럽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가야 할 곳을 위해 준비된 몸은 어느새 문 앞에 서서 스르륵 문을 열고 닫고를 조심스럽게 하고 신발을 신고 나선다. 새벽 4시 30분이다. 어둑 어둑한 짙은 어둠이 아직 회색빛이 되려면 한 시간쯤 지나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안다. 밤새 내린 서릿발이 굵어서 차 앞 유리에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있다. 최에 탬 성애 긁게로 개운하게 긁어내고 시동을 켠다.
밤잠에서 못내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나와 차의 히터로나마 따뜻함을 채우고 싶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서둘러 일할 곳으로 핸들을 잡고 엑셀을 밟아 서서히 움직인다. 점멸이 가득한 거리의 신호등을 익숙하게 지나 녹색 등의 기다림 없이 어느덧 회색빛 고속도로를 타고 일터에 도착한다. 금세 해가 벌써 어딜 가는지 궁금이라도 한 듯 나와있다. 때론 햇살의 눈부심을 찌그린 눈으로 맞이하는 날도 거의 17년 차가 아닌가 싶다. 현장의 일은 보통 7시부터 시작이다.
겨울의 해도 게으름을 피우는듯 7시쯤 되어야 회색빛을 물리고 밝은 빛을 보여주지만 현장은 그 시간은 일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매일 같은 시간 나는 1시간 먼저 출근을 한다. 나와 나의 가족을 생계를 책임져 주는 나의 업무용 차량에 미리 시동을 켠다. 일의 시작 전 가장 중요한 점검하는 시간이다. 일찌감치 준비해 겨울엔 꽁꽁 언 기계들을 풀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점검을 하고 현장에서 아침식사로 허한 뱃속을 채운다. 식사 후 안전체조와 안전 교육을 듣는다.
사실 17년째 듣는 안전교육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날의 할 일을 체크한다. 마지막 일의 시작 전 믹스 커피 한 잔은 국룰이다. 옆 동료 상덕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상덕이는 최근에 들어온 건설장비 기사다. “상덕이 잘 돼가?", “형님 잘 가르쳐 주십쇼” 어느덧 베테랑이 된 나는 많은 후배 양성을 했다. 그 후배들은 꽤 고수가 되어있는 동생들도 있고, 그만둔 동생들도 있다. 깍듯한 상덕이와 주절 주절 몇 마디 나눈 후 일을 시작한다.
높은 타워에 앉아 긴 줄을 늘어 드린 타워에서 목수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있고 나면 긴 줄에 자재들의 실려 있는 줄을 들어 올려 높은 층고에 옮겨 준다. 이것이 나의 하루 일이다. 나는 장비를 다루는 건설 현장에서 수많은 건물을 짓는데 중요한 일을 맡아 하고 있다. 손가락의 움직이 바쁘다. 섬세하게 잘 움여야만 실수 없이 자재들을 운반할 수 있다. 건설 현장은 일사불란한 아침 시간을 시작으로 10시쯤이 되면 잠시 휴식 타임이 시작된다. 간식으로 빵 하나와 음료 하나씩 배당이 된다. 어떤 날은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가방에 넣었다. 집으로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게 한 삼십분 쉬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한다. 안전이 가장 중요한 일이 이기에 한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어쩌다가 아들이나 딸,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기라도 하면 늘 귀에 꽂아진 이어폰이 참 편리한 존재다. “잠깐만 좀 있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라며 끊기가 일쑤다. 한참을 집중하고 나면 점심시간이다. 현장에서의 점심은 11시 30분부터다. 후다닥 먹고 잠시 차 안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일할 때 통화를 마무리하지 못한 전화를 건다.
나의 아내는 늘 바쁘다. 부재중 전화를 5-6통을 해도 받지 않는 날도 있다. 이유는 전화벨을 무음으로 해놓고 소리를 듣지 못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짜증이 밀려오는 날도 많다. 오후 일과가 끝이 나면 보통 5시다. 집에서 나온 지 열 시간째다. 하루 근무는 8시간 맞지만, 준비 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합하면 보통 열 시간이 훌쩍 넘는다.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깨끗이 씻고 눕는다.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하루가 고된 날은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매일 거의 17년을 해왔다.
힘들지만 불평할 수 없는 족쇄처럼 일을 한다. 나는 가장이기에 돈을 벌어야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이치라 생각하기에 일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한 번도 싫다는 표현은 해본 적이 없다. 나의 힘듦을 굳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왜 나만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일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어떤 것이란 걸 알기에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둔다.
남편이 되어 글을 써보았다.
남편이 되어 글을 써보았다. 일은 하고 살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가장이라는 무게에 눌려 한 번도 힘들다는 말없이 일하는 남편의 모습이 애잔하고 마음이 아팠다. 나라면 힘들다는 말을 백 번도 더 했을지 모른다. 늘 묵묵히 새벽엔 가족들이 깰까 싶어 조용히 문을 여닫는 남편은 내가 잠이 깬 날은 조용히 “나 간다”라고 말하고 나가지만, 깊이 잠든 날은 날 절대로 깨우지 않는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그런 남편의 뒷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지만, 나는 그냥 잔다. 어떤 날은 자는 척을 할 때도 있다. 가장이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깨에 짐을 몽땅 짊어지고 힘들다고 말할 틈도 없이 일만 하는 남편이 안타깝게 보이는 날이 있다. 나는 남편을 일만 시키려고 결혼 것도 아니다. 그저 남편과 이야기하고 싶고 소소함을 함께 즐기고 싶었고, 내 편이라는 확신 속에서 나만 아는 남편의 모습에 희열과 사랑을 듬뿍 주고받는 그런 관계이고 싶었다.
살아가다 보니 남편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눌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고 있었다. 나 또한 내가 원하는 것보다 가족이 원하는 것 혹은 남편보다 아이들을 위해 살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우리 둘은 책임감이라는 것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불평도 없이 살아온 시간이 벌써 22년이다.
우리의 꿈은 뭐였더라? 남편은 결혼 후 해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정작 서로 나누지 못했다는 생각은 왜 이제야 들어지는 세 아이 키우느라 서로에게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혹은 누군가가 잘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서로 책임감이라는 것에 둘러싸여 살아온 것이다. 엄마가 되어 보니 내 아들의 볼을 쓰다듬듯 남편의 볼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등허리를 토닥여 주며 말해주고 싶었다. 정말 고생이 많았네 남편님아 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