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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훈의 파란도시 Aug 08. 2020

"어린데 뭘 알겠어"

나를 바꾼 건 단 한마디였다

84년생 강수훈은 올해 서른 일곱 살이다. 


해가 세 번 바뀌면 불혹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어리다는 말로 ‘까일’ 줄은 까이기 전까진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나도 이제 나이로는 어디서 뒤지지 않는다 이거다. 


<오스트리아의 '쿠르츠'는 31살, 핀란드의 '산나 마린'은 34살, 우크라이나의 '곤차룩'은 35살,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은 37살에 총리에 올랐다. 대한민국의 김두관 국회의원도 37살에 남해군수에 당선되었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84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린데 뭘 알겠냐는 소리를 이렇게 밥 먹듯 듣고 살 줄이야. 


물론 내가 몸담은 이 현직 세상에선 아직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훨씬 많이 계신다.


그분들과 식사 한 번, 술자리 한 번에서의 이야기만 주워 담아도 이순신 위인전 저리 가라의 책 한권은 뚝딱 나올 기세다.      


짬에서 나온 바이브?! 

백번 존중한다. 


그들의 오랜 세월, 그리고 그 깊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몇 바퀴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다 좋다 이거다. 하지만 존경을 표하고 박수를 보내드릴 수 있는 건 거기까지.  


과연 그렇게 외치는 더 많은 나이, 더 많은 경력이 더 어리고 가능성과 능력을 겸비한 청년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되는 게 타당한 것일까?      


언제나 ‘으른들’은 아직 이르다, 아직 어리다는 말로 경고하듯 세상만사에서 그들보다 젊은 사람들을 후순위로 미룬다. 


문제는 그 한마디는 딱히 나쁜 말도,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수긍하고 반박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 아직 내가 멀었구나’ ‘맞아, 경험이 너무 부족하지’ 


이렇게 후퇴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나는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은 태도와 자세는 겸손하되, 꿈과 비전은 거만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건 분명 예의, 공경 따위의 것들과는 다른 문제다.      


그들이 세운 나이의 잣대로 나의 가치를 단정시키고 나를 소외시키는 으른들의 말들은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진정한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린데 뭘 알겠어?” 라고 못 받는 대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알려줄게” 라고 

배움과 도움을 주시고 든든한 조력자가 돼 주셨다.      


다시 말하지만 내 나이 서른일곱.

 

아직도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들과 싸워야 할 세력이 많다. 


날마다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성장해가는 자세를 다짐한다. 


청년들의 자신감을 꺾고 가능성을 억누르는 어른들이야 말로 ‘겁쟁이 으른들’이 아닐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이 맞다는 어른이 될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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