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면 평생을 같이 지내왔기에 모든 모습을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엄마, 아빠, 형제남매의 모습은 가족 관계 안에서 딸로서, 남매로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의 오빠이자, 아빠, 엄마이기 전에 자신의 이름 석자로 불리던 사람들이었기에 함께 떠난 낯선 곳에서의 여행은 평생을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의 처음 보는 모습을 경험할 수가 있었다.
4명만 떠나려 했던 여행은 사촌들과 할머니의 합류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어쩌다 보니 3대가 떠나는 '대가족 여행'이 되었다.
그리고 이 '대가족 여행'을 계획을 맡은 건은 바로, 나였다...! 우리의 목표는 패키지가 아닌 자. 유. 여. 행! 다들 정해진 음식점과 사고 싶지 않은 기념품샾에 들려야 하는 패키지여행에 질렸던 것이다. 나 또한 패키지여행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여행 방향은 자연스럽게 자유여행으로 흘러갔다. 이것이 고난 가득한 여행의 시작일줄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의 입맛과 가족들의 의견을 맞추고 최소한의 거리 등을 고려해서 계획을 짜다 보니 이미 여행 가기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기자기한 음식점들이 가득한 일본에서 7명 이상이 들어가는 식당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케터의 서칭 능력을 발휘하여 우여곡절 끝에 예약을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난 프로 여행러다. 인도, 태국, 베트남, 대만을 여행할 정도로 외국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기에 어디든 훌쩍훌쩍 떠났다. 그래서 이번 일본 여행의 가이드로도 임명될 수 있었다. 기뻐해야겠지..? 하지만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가이드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의 만족을 맞출 수 없기에 항상 눈치를 보고 그들의 상태를 고려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일이며 당연히 누군가에게는 불평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 가이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자연스럽게 가이드라는 꿈은 사그라들 수 있었다.
불평 가득한 이야기만 한 것 같지만 가족 여행을 간다면 현실적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것을 상쇄할 만큼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부터 시작해서 집안일까지 엄마는 언제나 원더우먼처럼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든든하게 우리의 가림막이 되어주기 때문에 그 흔한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떠난 해외여행에서 그 누구보다 긴장해 눈동자가 많이 굴러갔지만 두 번째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음식점 주문을 해보고 나서 아이처럼 기뻐하였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마치고 난 후 그녀의 얼굴에서 순수함이 빛나는 미소는 27년을 살아가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