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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Apr 05. 2020

이 글은 본문부터 적었습니다.

30일 글쓰기

저는 글을 쓸 때 보통 제목부터 적고 시작합니다.

아마 회사에서 보고서 쓰던 버릇 때문일 겁니다.


2년 전 1월,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흙막이 뒤쪽 땅이 푹 꺼졌다고 합니다.

원인은 대충 압니다. 그렇지만 메일에는 그런 내용이 쏙 빠져있습니다.

제가 시공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서 감독하지도 않았습니다. 4년 전에 제가 조금 설계를 했을 뿐입니다.

그 이후로 뭘 어떻게 바꾸고 비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네가 그래도 처음에 설계했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알 거 아니야. 보고서 초안 좀 잡아봐."

이런 이유로 보고서를 썼습니다. 

시작은 보고서지만 결국 프로그램도 다시 돌리고 현황 파악을 위한 요청 메일도 보냈습니다.


"OO 현장 가시설 배면 지반 침하 관련 검토 보고서"

제목부터 씁니다.

어차피 쓰일 내용은 똑같습니다.

기술사 시험공부할 때 학원에서 배운 기술입니다.

문제점이 발생하면 원인, 대책을 써줘야 제대로 된 답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 기술사 시험이든 회사 보고서든 쓰는 데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문제가 없는데 보고서를 쓰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다른 글을 쓸 때는 당황스럽습니다.

문제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글이 써지질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매번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건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좀 키워보려 했습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보성 글을 쓰라고 합니다. 무슨 정보를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쓰라고 합니다. 생각 없이 40년 넘게 산 사람이 갑자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경험을 쓰라고 합니다. 토목 얘기를 누가 좋아할까.


"30일 글쓰기"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매일 밤 9시가 되면 힘이 듭니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쓰지?'

'내가 왜 30일 동안 글을 쓴다고 올렸을까?'

'이런다고 글쓰기 능력이 올라갈 거 같지도 않은데 그냥 그만둘까?'

그리고 브런치를 열고 무슨 제목을 적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부터 적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제목은 그냥 사실대로 적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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