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되면 우면산의 풀내음이 바람을 타고 예술의 전당을 지나 남부순환로를 거쳐, 남부터미널까지 느껴지는 동네이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어린 시절 길거리 마술쇼를 시작했던 대학교가 위치하였기에 개인적으로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던 2015년 4월, 패스트파이브가 서초동에 1호점을 오픈하며 사업을 시작하였고 같은 해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서초동에 어느 한 빌라 반지하에서 IT 서비스의 첫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돌아보자면, 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0에서 1을 만드는 능력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반면 1에서 10을 만드는 운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변곡점에서 늘 나에게 1을 만들어주는 귀한 인연들이 등장하게 된다.
귀한 인연인 Y는 내 오랜 친구이다.
어린 시절에는 공원에서 앉아 수다를 떨다 보면 해가 뜨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다. Y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을 때에는 당시에 내가 살던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함께 찾아오기도 하였고, Y의 프로포즈도 둘이서 함께 준비하고, 신혼여행을 가는 공항도 배웅가기도 할 만큼 가깝게 지냈다.
내가 미국에서 있던 시절, 친구 Y는 개인사업으로 프린터, 복합기 렌탈 사업을 오랜 기간하고 있었다.
빌딩타기라는 고전적인 영업방식으로 고객을 확장해 나갔었다.
고전적이면서도 시간 외에는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고객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바쁜 업무 하는 시간 속에서 잡상인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아기에 효율이 좋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Y는 프린터에 들어가는 교체형 소모품인 다 쓴 토너를 일정 금액을 주고 구입하는 방식의 접근으로 영업하였다.
온라인이나 근처 사무용품에서 구매한 뒤 사용이 끝난 토너는 사무실에서는 처리하기 귀찮은 쓰레기였다.
그러한 쓰레기를 돈 주고 산다고 하니 고객은 작게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토너 1개당 간식을 살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그 자리에서 지불하고 토너를 회수해 왔다.
회수된 토너를 통해서 어떤 프린터를 사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고 몇 번의 회수가 진행된 이후에는, 대략적인 사용량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얻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이미 안면을 트고 익숙해진 고객에게, 더 저렴한 비용으로 프린트를 할 수 있는 재생토너를 사용하는 복합기 렌탈 서비스를 제안하였고, 자사 렌탈을 통해 발생된 다 쓴 토너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은 현금을 지불하고 회수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고정비용보다 더 저렴하고,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낀 고객은 Y의 복합기 렌탈로 계약을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통해서 Y는 서초동 일대의 출력물을 많이 사용하는 회계, 법무, 세무 법인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탄탄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당시에 우리는 이것이 작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넛지라는 것을 정의할 만큼의 마케팅 지식은 없었다.
그저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구매 욕구를 촉진할 수 있었던 방법을 찾았던 것이었다.
지금은 한여름에 사무실에서 간혹 긴팔을 입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는 에어컨도 없고 바람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에서 남자들끼리 윗옷을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였다.
윗옷을 벗을까? 말까? 고민하던 온도의 여름 초입이었다.
나는 Y가 진행했던 프린터 렌탈 사업의 시스템을 보다 더 쉽게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아서, 수기로 진행해왔던 모든 업무 방식을 ERP로 전환하는 작업을 맡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업 리스트, 규모, 매출을 계속 정리하는 일을 반복하였고, 현장 업무를 위해 고객사를 방문하고 소통하는 일도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객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1) 다수 고객사의 규모는 5~50명이 업무를 보고 있으며
2) 사실상 IT의 지식이 없는 경영지원팀에서 모든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고
3) PC가 느리거나, 네트워크가 끊기는 등의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4) 그때마다 개별 업체들을 찾아서 연락하여 처리하였지만
5) PC업체에 연락하면 인터넷 문제라고 하고, 인터넷 업체에 연락하면 우리는 문제없다고 하고, 보안이나 소프트웨어 업체에 연락하면 다른 이슈라고 하는 책임회피가 많았다.
그렇다고 직접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도 해당 규모의 고객사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고 불편을 경험한 채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는 곳들이 다수였다.
그래서 우리는 '유지보수가 포함된 PC렌탈', '소프트웨어 판매 및 관리' '네트워크 구축 및 유지보수' 아울러 기존에 하던 '복합기 렌탈 서비스'를 통합하여 상품을 출시하였다.
운이 좋게도 어린 시절 컴퓨터의 하드웨어, OS, 네트워크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어서 바로 시작하였고, 고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이건 될 것 같다!
확신을 가지고 CPA, CPC란 단어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무작정 포털 사이트에 키워드 광고를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의 키워드로 조합해서 돌려보고, 효율을 분석해 보고, 다른 키워드도 바꾸기도 해 보면서 무작정 배워갔다.
온라인 광고를 시작하고 신기하게도 기존 고객의 규모보다 더 큰 규모의 기업들의 문의가 접수되었다.
이제는 서초동을 벗어나 서울과 경기도까지 고객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고객의 규모가 커진 만큼 네트워크 설계와 구축의 범위도 커졌고, 학습이 필요하게 되었다.
낮에는 현장으로, 밤에는 서류 업무를, 새벽에는 테스트랩을 구성하고 수만 번의 초기화를 하면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주말에는 15시간씩 학원을 다니면서 독학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배워나갔다.
어떤 날에는 새벽부터 정신없이 랩을 구성하고 테스트를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과 마주한 적도 있었다.
"헐… 설마 밤샌 거예요?"
그랬다..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 알 수도 없는 창문이 없는 사무실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매일매일을 보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과 나날이 성장하는 사업보다 재밌는 것은 없었다. 대체할 것도 없었다.
연애도, 휴가도 없이 일만 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의 별명은 사무실의 "지박령"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는 창문과 에어컨이 있는 2층의 사무실로 둥지를 옮길만큼 성장하고 있었다.
2017년 봄과 여름이 맞닿아있던5월의 어느 날,
검색 광고를 통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따르릉
"PC 100대를 렌탈하려고 합니다. 가능한가요?"
"네! 물론입니다. 기간이 얼마나 필요하신가요?"
"저희는 3개월만 렌탈하려구요."
현재 3개월로 렌탈을 나가기에는 사업성이 없다. 아쉬운 전화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 최소 1년부터 렌탈이 가능해서요. 혹시 TF가 구성되는 것일까요?"
당시에 검색 광고를 통해 유입되는 고객들 중에서는 TF를 통해 사무실을 구성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고객들이 종종 있었고, 그러한 고객들의 경우 PC 렌탈은 어렵더라도 네트워크 구축이나 복합기 렌탈은 가능한 경우가 많았기에 확인을 시작하였다.
"아니요! 저희가 쓸 건 아니고요. 저희 입주사가 쓰고 싶다고 하셔서요."
입주사? 입주사가 쓰고 싶은데 왜 임대인이 PC문의를 하는 상황이지?
"제가 잘 이해를 못 했습니다! 어떤 입주사일까요?"
"아~ 저희는 공유오피스를 하는 패스트파이브라는 곳인데요. 공유오피스에 입주하는 고객들이 원하셔서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다. 소호사무실인가? 근데 100명이 들어오면 규모가 큰데? 일단은…
"죄송합니다. 저희가 PC렌탈은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 복합기나 네트워크 다른 거 필요하신 건 없으실까요?"
"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없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검색을 시작하였다.
패스트파이브? 공유오피스?
자연스럽게 구글로 넘어가 글로벌 W사까지 검색을 하면서 수백 장의 사진을 보고 사업 모델을 열심히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