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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민용 Dec 02. 2020

롯데마트는 왜 안내견 출입을 거부했을까

눈이 보이는 당신의 '미리 실패하려는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롯데마트 잠실점서 '출입 거부' 당하는 예비 안내견의 모습 (출처:목격자 인스타그램)


최근 롯데마트 잠실점이 훈련 중인 '예비 안내견'의 출입을 막아서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장애인도 아닌데 왜 안내견을 데리고 들어오냐"라고 항의하자, 매니저가 "데리고 나가라"라고 고함을 쳤고, 깜짝 놀란 예비 안내견은 분뇨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장애인도 아닌데 왜 안내견을 데리고 들어오냐'라고 항의했다는 것을 보면, 적어도 안내견이 장애인을 돕는 존재라는 건 많이들 아시는 것 같습니다. (절망 속 희망을 봤다고 해야 할까요..?)


눈이 보이는데도 안내견을 데리고 대형마트에 들어와 다른 손님들을 소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람은 '퍼피워커'입니다. 안내견은 생후 7주부터 1년간 일반 가정에 보내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데요. 무보수 자원봉사로 이 일을 하는 분들을 '퍼피워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롯데마트에서 이런 봉변을 당한 분은 아기 안내견이 어엿한 안내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자원봉사자였던 거죠.


저도 불과 두 달 전, 예비 안내견 탱고와 탱고의 퍼피워커 임남주 씨와 함께 홍대 거리를 걸었습니다. 안내견을 환영한다는 스티커를 붙이는 캠페인을 독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저 역시 참 많이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JTBC 뉴스룸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해서였는지, 롯데마트처럼 소리 지르는 분은 없었지만요.


우리 취재 돕느냐고 계속 거절당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자, 퍼피워커 주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하도 싸워서 이제 파이터 다 됐어요. 우리 저 식당도 도전해볼까요?"


도전.

주 씨는 탱고와 어딘가에 들어가는 행위를 도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주 씨 역시 식당 출입을 거부당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탱고를 맡은 뒤부터는 거절과 도전이 일상이 됐습니다. 집 앞 우동집도 세 번 도전한 끝에 '뚫었다'고 자랑스레 말했습니다.

제가 안내견 취재로 며칠 '거절당하는 삶'을 살아보니 정말 싫던데, 한 번 거절한 곳을 세 번이나 또 찾아가 설득했다니... 존경을 담은 질문이 터져 나왔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어요?"

그러자 주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희 퍼피워커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저희가 실패를 거듭할수록 좋아지는 거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아...!" 이번에는 존경을 담은 탄식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주 씨의 실패 덕분에,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을 거부할 사람이 이 땅에서 한 명 줄어들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롯데마트에서 거부당한 퍼피워커도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분도 분명 늘 '거절당하는 삶'을 살아왔을 겁니다. 대형마트에 데려가면 사람들이 뭐라 할 거라는 것도 쉬이 짐작했을 겁니다. 굳이 마트 같은 데 데려가지 말고, 요 앞 공원이나 산책시키면 이런 험한 꼴은 안 당할 거라는 것쯤은 그분도 잘 아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롯데마트로 간 것은 '내가 미리 실패하는 게 낫지'라는 생각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부디 이번 일이 당신의 이런 '미리 실패하려는 용기'를 꺾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롯데마트 사건으로, 여러 목소리들이 머릿속에 흘렀습니다.



"그분들이 나쁜 마음으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몰라서 그러신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저는 집에만 있지 않아요. 계속 나가서 부딪혀요. 다들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막아요. 하지만 제가 설명하면 받아주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가만히 있으면 그런 분들을 만날 기회조차 잃는 거잖아요?" (시각장애인 한혜경 씨)


"저는 그분들이 과태료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안내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캠페인이나 공익광고 같은 것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인식을 개선하기를 바랍니다." (시각장애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구름이와 어디든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너무 속상해요.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뚜껑 덮을 수 있는 유모차에 태우고 가도 안 된다고 하니까요." (청각장애인 원서연 씨)


"저희 퍼피 워커들이 하는 얘기가 있는데, 저희가 실패를 거듭할수록 좋아지는 거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퍼피워커 자원봉사자 임난주 씨)



안내견을 알리는 일이라면, 시험 기간에도, 국감 기간에도, 출근길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줬던 간절했던 분들께. 안내견을 알리는 걸 돕겠다는 약속을 이 글을 통해 작게나마 지켜봅니다.





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중 안내견 관련 기사 링크

[오픈마이크]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하루…"어딜 개가!" 밥 먹으려다 7번 거절 / JTBC 뉴스룸 - YouTube

[오픈마이크] 청각장애인의 '귀' 구름이도 "어딜 개가!" #안내견환영 함께 해주세요 / JTBC 뉴스룸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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