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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민용 Dec 06. 2020

코로나19에는 얼굴이 없다

완치 후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3번째 확진자부터였을 겁니다. 확진자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것이 말입니다.


공개된 동선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많이도 싸돌아다녔다"라고 손가락질하고, "3번 환자, 어디 어디 다녔길래" 같은 제목이 달린 인터넷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당시 저는 오픈마이크를 기획 중이었고, 첫 기사로 "확진자=피해자"라는 취지의 보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왜 굳이 나서서 욕을 먹으려고 하냐"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옳은 말도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해야지, 지금 하면 화만 돋운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의는 하지 않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현명한 조언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확진자는 피해자입니다. 여러분 비난을 멈추세요"라고 했다면, 아마 3번째 확진자 역시 더 큰 공분을 샀을 겁니다. 저는 당연하고요.


그래도 한고집 하는 저는, 당시 3번째 확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거절'이었습니다. 의료진은 3번째 확진자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코로나19 치료보다도 정신적 치료에 더 집중해야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기사도 내보내지 말아 달라 부탁했습니다. 악플만 달릴 테니.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3번째 확진자는 너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중국 우한에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증상이 없어 '조사대상자'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볼일을 보러 자유롭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닷새 뒤, 증상이 있어 스스로 신고했고, 그렇게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딱히 방역지침을 어긴 것도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코로나19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시기라는 것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 우리는 왜 그토록 그를 비난했던 걸까요.


처음 맞닥뜨린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감.

보이지 않는 암살자와 싸워야 한다는 공포감을 지우려, 코로나19의 얼굴을 확진자에게서 찾았던 것은 아닐까.






어느덧 우리는 3만 7천 번째 확진자를 앞두고 있습니다.


3만 7천 명이라니.

차별하기에, 또 혐오하기에는 많은 숫자 아닌가.

3명도 아니고 3만 7천 명을 차별하고 혐오할 수 있을까.


하지만 코로나가 주는 공포와 두려움, 또 불편함은 이 정도 숫자는 단숨에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완치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완치 판정을 받고 드디어 코로나와의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병원 밖을 나서는 바로 그때, 그 순간부터, 코로나와의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고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치매 노모 돌보려 음압병실까지 갔는데…"엄마도, 일자리도 잃었어요" / 한민용의 오픈마이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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