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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na Sep 09. 2022

미국 음악선생님 Ms.Kil

회의

회의가 있었던 날.


새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각 학년 대표 선생님과 아이들의 특별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과의 만남이 있었던 날이다.


지금 내가 있는 학교에는 하와이아나(Hawaiiana), 컴퓨터(Tech), 체육(P.E), 제2외국어(Japanese), 도서관(Library), 음악(Music) 이렇게 총 6개의 특별 수업이 있고 이 과목들을 통틀어 Resource classes라고 한다.


각 학년별 IB Unit 주제가 무엇인지(학교가 IB School인데, IB 학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겠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 혹은 계획하고 있는지 얘기를 듣고 각 Resource 선생님들과 상의 해 연관 수업으로 어떤 것들을 하면 좋을 지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런 수업도 진행해야 하는 지 몰랐었던 나는, 이미 수업을 어느정도 짜 놓은 상태였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을 다 짜기 전에 얘기를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회의를 하면 당장 다음 주 수업 부터 오늘 회의 내용을 적용 해 수업을 해야 하는 건가.. 본격 회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궁금증이 너무 많았지만 일단 각 학년 대표 선생님들의 학년 별 IB 수업 계획을 들었다. 학년 별 주제를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Pre.K - We are family

K - Everyone is unique

1st - How the world works

2nd - Sharing the planet / Year long : Who we are?

3rd - Culture differnces


이 주제들로 학생들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혹은 할 예정에 있었고 이미 베테랑인 다른 Resource 선생님들은 지난 해에 했던 커리큘럼을 보완하고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나였다. 계속 얘기가 반복되는데 2년동안의 음악 수업 부재. 담임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각각의 IB 주제를 음악 수업에서 다뤄본 적이 없었다. 대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짰던 수업 중 응용할 것들은 없는지, 어떻게 음악과 결합하면 좋을지 머리를 쉬지 않고 굴렸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진행하려던 수업과 일맥상통하는 주제들이 있어 계획했던 수업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다.

2학년 경우를 예를 들자면, 현재 2학년은 다양한 동물들과 그 동물들의 서식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계획했던 수업은, 책과 연계한 음악 수업. 원래는 더 어린 학년용 수업으로 계획 했던 건데, 선생님들의 반응이 괜찮아서 2학년 수업에도 진행해 보기로 했다. 책은 유명한 Eric carl의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 책을 노래로 읽어줄 예정이다. 내용이 계속 반복되어서 멜로디도 계속 반복하면 된다.

책을 읽어준 뒤, 아이들에게 여러 동물 카드를 나눠준다. 그리고 어떤 동물을 가지고 있는지, 각 동물들은 어떤 habitat에 사는 지 얘기를 간단히 나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한다.

만약 내가 돌고래를 가지고 있다고 치자. 그럼 모두가 노래한다, Blue dolphin, Blue dolphin what do you see? 그럼 내가 다른 친구들의 동물 사진을 본 후, 혼자 노래로 답한다. I see a red monkey looking at me.

그럼 다시 다 같이 노래 시작. Red monkey, red monkey what do you see?

Red monkey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혼자 노래한다. I see a ------. 모두 노래할 수 있도록 한번씩 돌고 끝난다.

간단하지만 아이들이 하고 있는 IB 주제와도 얼추 맞아들어가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혼자 한 소절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추후에 수업을 진행하고 피드백을 남기겠음!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들은, 새로이 수업을 짜야 하는데- 워낙 구체적인 주제와 프로젝트들이 있어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선생님들과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거기에 선생님들의 아이디어들이 더해졌더니 나만 잘 하면 재미나고 흥미로운 수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번 해에는 May day 행사도 예전처럼 다시 진행한다고 했다. (코로나로 지난 2년간 이 행사도 없었다.) May Day는 5월 1일에 열리는 행사로 다른 주(State)에서는 어떤 지 모르겠는데, 하와이에서는 May Day = Lei Day(메이데이=레이데이)로 불리며 꽤나 특별한 하루로 보낸다. 한 학년이 끝나는 마지막 달이기도 하기에 부모, 친지, 보호자등 모두가 학교에 와 아이들의 공연, 게임등을 함께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하와이의 역사를 기념하기도 하는데, 졸업반인 5학년들이 자신들의 친구들 중에 하와이의 각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왕과 왕비를 대표할 사람을 선발한다. 메이데이가 되면 그 친구들은 하와이 왕과 왕비의 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전통 왕관을 쓰고, 하와이 특유의 깃털로 만든 장식을 들고, 행진을 한다. 모든 행진이 끝나면 전교생이 다 함께 하와이 주가인 (State song) Hawaii pono'i(하와이 포노이)를 부른다. 그리고 학교 교가를 부르는 것으로 큰 프로그램이 하나 끝이 난다.


이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나와 연관이 있기 때문. 이 날 전교생이 부를 하와이 주가와 학교 교가를 음악 시간에 조금씩 가르쳐 달라고 했다. 주가와 교가 모두 하와이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난 Hawaiiana 시간에 다룰 줄 알았는데, 음악 시간에 배우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하와이언 발음을 모르기에 음은 가르쳐도 발음은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하와이아나 선생님이 흔쾌히 발음을 알려준다고 했다.

하와이에 4년을 살면서 하와이 주가를 들을 줄만 알았지 부를 줄은 몰랐는데, 잘 됐다 싶었다. 제대로 배워 아이들과 함께 불러야지!

교가가 문젠데, 교가는 아이들이 부른 음원이 남아있질 않았다. 반주만 음악파일로 남았는데, 일일이 들으며 기보해야 할 판이다. 근데, 어느 음에 가사가 붙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교장 선생님이 도와주시려 몇 번 불렀는데, 엄청난 음치에 박치라 도움이 안되었다. 어떻게 되겠지. 학교에 교가를 아는 숨은 고수가 있으리라 믿어본다.


아침부터 이어진 회의는 12시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회의를 마치니 영혼이 탈탈 털린 기분이었다. 배도 너무 고프고. 서둘러 음악실로 돌아가려 하는데 다른 Resource 선생님들이 처음이라 힘들었을텐데 아이디어도 많고, 이미 수업도 계획해 둔 것이 있고 대단하다며 칭찬을 남겼다. May day도 다 같이 도와서 잘 해보자며 서로를 응원했다. 칭찬과 격려에 후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조금 당황스럽다가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격려와 칭찬의 말들이 한없이 쪼그라들 수 있는 초보 선생님에게는 큰 힘과 용기가 되어준다.


얘기가 좀 벗어나는데, 작아지고 작아지는 초보 선생님의 또다른 에너지는 바로 희음이다.

희음이는 내가 학교 선생님이 된 걸 퍽이나 좋아한다. 엄마가 학교에 있는게 좋은가? 나의 초등학교 때를 돌이켜 생각하면 난 내 일거수 일투족을 엄마가 다 알게 되니 너무 싫고 불편할 것 같은데 희음이는 그런게 전혀 없다. 내가 학교에 있는게 마음이 든든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희음이 교실이 음악실 바로 옆옆 교실이라 희음이가 쉬는시간에 놀러 갈 때, 점심먹으러 오갈 때, 기타 등등 수시로 희음이를 보게 된다. 자연스레 귀가 복도로 가고, 눈이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르며 재빠르게 희음이를 찾아낸다. 처음에는 희음이가 시도때도 없이 음악실에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정작 희음이는 나랑 눈이 마주칠 때를 제외하고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내가 문제지. 하하.


첫 음악수업을 끝내고 제일 떨렸던 것도 희음이의 반응이었다. 내 수업 준비 과정을 다 본 이도 희음이고, 준비한 수업을 가장 먼저 실험(?) 해 본 상대도 희음이었기에 희음이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희음이는 엄마 수업이 최고였다고 나를 한껏 치켜세워줬다. 친구들도 다 자기에게 음악 수업이 재밌고, 너네 엄마 엄청 Cool~ 하다고 했다며 내가 들을 수 없는 생생 후기들을 전해줬다. 아이고, 고마워라.


희음이의 한글학교 그림일기 숙제를 첨부해 본다. 내가 바쁘게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희음이 내 옆에 앉아 이 그림일기를 그렸는데,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진창인 그림일기가 왈칵 눈물을 나게 했다. 그리고 힘을 받았다. 그래, 희음이가 보고 있다!

이 그림일기의 치트키는 '날씨:가 좋다' 푸하하. 어찌나 웃었던지!


이래저래 말이 길어졌다. 오늘도, 또 하루를 열심히 지냈다. 수업을 하고, 수업을 짜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뭐 하나 쉬운게 없는 요즘인데 뭐 하나 신나지 않은 게 없는 요즘이기도 하다. 다 재밌고, 그저 좋다. 내년 이맘 때 지금을 생각하며 훗, 많이 컸네. 라며 나를 가볍게 칭찬할 수 있길 바래본다. 그리고 그 때도 여전히 딸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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