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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Jan 21. 2023

[30대의 자아찾기] 고양이가 좋아요

약한 존재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결코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일, 좋아할 리 없다 장담하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존재들이 몇 가지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차곡차곡 쌓은 마음속 불가능의 영역 속 벽들이 어느 순간 낮아지거나 무너지는 일들이 최근 이어졌다. 그 대상 중 하나가 ‘고양이’다.


나는 살면서 동물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작은 것들 특히 동물의 새끼들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찰나의 순간 감정을 파고드는 귀여움에 대한 감탄일 뿐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연애 시절 공원을 산책하다 지나가는 개만 보면 걸음을 멈추는 연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반려견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화제로 삼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동조할 수 없었다. 반려동물을 다룬 문학작품들 또한 내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며 나에겐 속할 수 없는 나와 다른 사람의 일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작년 여름, 그런 나에게 사건이 생겼다. 일을 하러 나가던 길 아파트 벤치 근처 바닥에 앉아 있는 작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했다. 태어나 실제로 본 가장 작은 고양이었다, ‘저렇게 작은 고양이가 있구나’라고 생각만 하고 볼일을 보러 걸음을 옮겼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고양이가 있던 벤치 쪽을 지나가니 초등학생들이 아기 고양이를 둘러싼 모습이 보였다. 아기 고양이를 만지면 엄마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데라는 생각만 한 후 그 자리를 지나쳤다.


그 후에도 벤치 주변에는 아기 고양이가 자주 출몰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사람 손을 타서 내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고 좀 더 접근하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앉아 있기까지 했다. 만남이 잦아지자 작은 생명체에 정이 갔고 아기 고양이를 보기 위해 일부러 그 장소를 지나가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날 쪼그려 앉아 한참을 아기 고양이를 보다가 집에 오는 일이 종종 생겼고, 때론 근처 편의점에 가서 고양이용 닭가슴살을 사서 주기도 했다. 고양이를 하염없이 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곤 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잠깐이었다. 일이 바빠지며 그 주변을 지나갈 일이 점점 없어졌고 그 후엔 고양이들이 영역을 옮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약 두 달 넘게 고양이를 잊고 지내는 사이 계절이 바뀌었고 선선해진 가을 날씨를 느끼며 아이와 아파트 단지 산책을 하다 또 다른 고양이를 만났다. 하얀색 바탕에 노란 무늬가 있는 소위 치즈냥에 속하는 큰 고양이었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벤치에 앉아 있으니 가까이 다가오더니 허벅지에 앉기까지 했다. 청바지 위로 느껴지는 고양이의 무게와 체온은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동물의 체온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을 통해 나는 고양이에게 완전히 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사람 이외의 생명체의 온기를 이리 가까이 느낀 건 처음이었다.


다가와주는 고양이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이렇게 사람을 가까이하면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후 고양이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고, 영상을 찾아보고, 길을 지나가다 고양이를 만나면 걸음을 멈추게 됐다. 오가며 간식을 주는 고양이가 생겼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서 지내는 고양이가 걱정됐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며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껏 길고양이들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종종 올라오던 고양이 관련 아파트 커뮤니티의 글이 생각났다.


이전부터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고양이 울음소리, 캣맘의 행동, TNR 요청과 같은 고양이에 대한 민원이 종종 올라왔었다. 몇 년 전엔 놀이터 앞에서 캣맘의 행동에 반대하는 엄마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남 일이라 생각했던 글들을 다시 읽고 예전의 기억들을 회상하니 아파트 단지 내에서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을 선뜻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어려웠다.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한 명의 주민에 불과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찰 사람이 있다는 생각 하니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고양이를 보고 있다가도 사람들이 지나가면 아닌 척하기도 했다. 한 때 나 또한 캣맘은 물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조차 극성스러운 사람으로 봤으니 자업자득이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가는 눈길은 멈출 수 없었다. 고양이를 좋아한 후 여러 가지 지식이 생기며 고양이의 특성을 알게 됐다. 고양이의 특성을 알아가며 길고양이의 생애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고 이는 다른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중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동물이 살면서 누릴 행복에 대한 것이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인 사람은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사람을 위해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현실에 대해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란 고민과 연결됐다. 기회가 되면 생이 힘든 동물을 거두어 가족으로 삼는 일, 그리고 동물들이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동물에게 다정한 법>이란 책의 뒤표지에 있는 박준 시인의 추천사는 나의 갑갑한 마음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줬다.



동물에 대한 애정은 세상의 약한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작은 생각의 변화는 삶 전체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조금씩 바꿨다. 한동안 가격 때문에 내려놓던 동물복지 달걀을 사기 시작했고 내가 먹는 것들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살펴보게 됐다.


동물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은 약자들에게도 친절하지 않을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경우 동물학대로 범죄를 시작한다고 한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가치의 대한 존중은 상대를 달리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당화할 때가 많다.


고양이를 좋아하며 시작된 마음의 크기는 점점 부피를 키워갔다. 길고양이들이 겨울을 잘 보냈으면 하는 마음, 동물들이 살아있는 동안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세상 속 약한 존재들이 차별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성인이든 어린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존재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고양이를 시작으로 나는 세상을 이전과는 조금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나의 영역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삶으로 들어왔고 나의 시선이 낮아지는 시간이 늘어났다. 변화가 점점 두려워지는 30대의 일상 속, 그래도 이런 변화는 참 달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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