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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Jul 16. 2023

[그림책으로글쓰기] 예상치 못한 인생의 방향

<병아리>, <색깔의 비밀>로 보는 인생의 방향

부담을 보람으로 가꾸다보면, 욕망이 지나 소명으로 되는 것이 인생 아니더냐고, 그러기에 내 가족, 내 이웃, 내 나라, 내가 속한 이 행성을, 그 숱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니겠느냐고.

 여러분도 그러실 겁니다. 어쩌다 이 길을 가고 있는 겐지 알다가도 모를 운명 속에서 오늘도 웃다가 울다가, 애써 버티다가 허위허위 떠내려가다가, 문득 돌아보니 또 다른 길목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계실 겁니다.    
               - 최재천,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중 -       


  회사를 그만둔 후 나의 삶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는  예측 가능한 삶의 연속이었다. 사직 후 시작 된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의 과정은 많은 이들과 비슷하게 흘러갔고 엄마가 된 후에는 아이의 성장에 나를 맞춰갔다. 아이는 별 탈 없이 발달 과정에 맞게 잘 컸고 나는 적당한 때가 되어 기관에 보낼 준비를 했다. 그 무렵부터 나의 예측 가능했던 삶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의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코로나가 시작됐다. 3월 입학이었던 일정은 6월로 연기됐고 이에 맞춰 세웠던 계획들도 연기됐다. 그 후 우연히 시작한 공부가 일로 연결됐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몇 달간 긴장을 하며 살았더니 출산 후 불어나 빠지지 않았던 살이 자연스레 감량됐다. (역시 다이어트의 최고는 스트레스였다.)

공부가 끝난 후에는 좋은 기회가 생겨 새로운 일에 참여하게 됐다. 일을 하며 처음으로 만난 나와 너무 다른 성향의 사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고,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일 열심히 해보자 하는 마음에 어쩌다 보니 내가 한 업체의 대표가 되었다. 그렇게 또 어영부영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국가사업에 지원한다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당장 다음 주 그 사업의 중간평가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서문처럼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부담을 안고 열심히 하려고 애쓰다 보니 일을 통한 보람이 생기고, 이왕 시작한 일 계속해보자 하는 욕망이 가치를 만들어보자는 소명으로 이어졌다. 내년의 나는 이 계절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 물처럼 흐르며 살아온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20대도 아닌 30대의 진로가 이렇게 다사다난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었던 시기, 도서관에서 그림책 한 권을 발견했다.     


 

우연이 이끄는 삶     

<병아리> 다비드 칼리 글, 다비드 메르베이유 그림 김영신 옮김 빨간콩(2021)


  

"옛날에 위대한 작가가 있었어요.
사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작가는 아니었어요."     


  책 속 주인공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가득한 존재다. 글쓰기와 그림을 좋아했던 유년시절을 지나 주인공은 다락방에서 낡은 아빠의 타자기를 발견하곤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위대한 작가가 되리라 의심치 않았던 주인공은 자신의 소설은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그의 소설을 환영해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두 번째 소설도 예상과 달리 출판사의 출간 거절을 당하다 어느 날 한 줄의 출판 거절 이유를 담은 답장을 받게 된다. “문장을 단순하게 쓰세요. 그럼 훨씬 더 읽기 쉬울 거예요.”     


 주인공은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출판사의 말에 복수를 다짐하고 어리석은 병아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우스꽝스러운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책 속에 들어가는 병아리를 직접 그렸다. 그냥 종이에 물감 덩어리를 툭 던진 후 대충 눈을 그려서 말이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을 얻게 된다. 병아리를 주인공으로 한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출판사에 투고 후 당장 연락이 온 것이다. 주인공은 사실 이런 형편없는 글로 작가가 되는 게 부끄럽기는 했지만 ‘아무렴 어때 아무도 읽지 않을 텐데’라는 마음으로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예상은 또 빗나간다. 책은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될 대로 되란 마음으로 냈던 후속편들이 연이은 히트를 거둔다. 병아리를 주인공으로 한 엉뚱한 이야기는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세계 40여 개국에 팔리기까지 한다. 나아가 소설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고 여러 가지 굿즈로까지 만들어진다. 그렇게 우연히도 만들어진 병아리 시리즈는 주인공의 곁을 평생 맴돌며 자신을 위대한 작가로 만든다.       


    

 삶은 우리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여러 가지 창업 사례를 접하게 되는데 그중엔 홍보를 위해 이벤트로 시작한 일이 역지사지로 업체의 주수입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육아에 도움이 될까 시작한 공부가 일로 연결되고 예상치 못한 확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을지 아직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신없이 지내다 뒤 돌아보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확실하다. 일을 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내 마음에 새긴 다짐이 있다. 휘몰아치는 변화 속의 중심에 나를 잃지 말자는 다짐이다          



일이 나를 바꿀지라도 나를 잃지 않기     

<색깔의 비밀> 차재혁 글, 최은영 그림 / 논장(2020)

      

  산속에 네 형제가 살았다. 첫째는 보라색 안갯속에서 보리를 키우고 둘째는 파란색 안갯속에서 물고기를 잡고 셋째는 초록색 안갯속에서 채소를 가꾸고 넷째는 빨간색 안갯속에서 돼지를 키웠다. 다들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안개 색에 물들었고 네 형제는 이를 당연히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와 둘째, 셋째는 넷째의 몸에 베인 빨간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걱정이 된 형들은 다시 막내를 빨간색으로 바꿔보려 갖가지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후 다른 형제들의 몸에서도 일을 하며 물든 색깔들이 빠지기 시작한다. 색을 돌려보려 노력했지만 효과는 없었고 결국  형제들은 자신들의 본질이 바뀌지 않았음을 깨닫고 걱정은 사라진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을 겪으며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선 ‘나 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맞춰주기 위해 억지로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결국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잘하려고 애쓰며 내가 아닌 옷을 입고 행동해 보지만 그 결과 평상시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보다 무리하게 힘을 소모하고 결국 지쳐서 일을 놓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 일을 해나갈 때 가장 중요한 상성의 본질은 속도보다는 방향을 맞춰가는 것이다. 현재 하고 있는 사업체에서 함께 일을 하는 사람 중 대범하고 속도가 빠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느린 의사 결정 속도가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때론 나조차도 일을 하는 속도가 갑갑하기도 하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느리더라도 함께 방향을 찾고 서로를 배려한 후에 속도를 내는 것이 내가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는 친구나 연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서로에게 맞춰주기보다 둘이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내고 그 선을 넘지 않으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를 잃는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과 오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일을 편하게 하는 나의 모습을 알았다 하더라도 일로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내가 아닌 다른 탈을 써야 할 때가 많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반응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분위기를 띄운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괜히 사교적인 척 안부를 물으며 친분을 쌓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예전만큼 거북하지 않다. 어느 정도의 선을 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정했기 때문이다. 남의 속도를 보며 애타지 않고 내가 갈 수 있는 방향에 집중한다. 그리고 일에 맞춰 나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일이 내 몸에 익숙해지도록 시간을 갖는 것에 좀 더 신경 쓴다. 예전에는 나의 느린 의사 결정 속도가 다른 이들에 비해 뒤처지는 요인인 것 같아 맘을 애태우며 지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불안함을 조금 걷어냈다. 사실 아직도 마음이 힘들 땐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진통제로 여기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자극제로 삼기도 한다. 그래도 그 중심 속에 나를 두고 나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것은 일을 시작하고 얻은 교훈이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인생 속, 일이 나를 바꿀지라도 나의 본질만큼은 잃지 않는 삶. 그게 내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의 물길을 트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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