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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Nov 16. 2022

휴대폰 글쓰기 협회

가장 글쓰기 좋은 공간이 지하철이지만, 휴대폰으로 글 쓰기가 싫다. 간단한 메모 정도는 가능해도 각 잡고 산문을 펼치기엔 뭐랄까 그 좀 그게 있잖아 왜 뭐더라 그... 폼이 안난다. 폼 말고 좀 더 나은 표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간지라고 할 수는 없어서 합의보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내가 산문을 쓰는지 카톡을 하는지 어디 유튜브에 악플을 다는지 알게 뭐야. 이게 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게 아니라. 내가 보는 내가 멋져야 하는데, 거기에서 무너지는거다. 글쓰기의 초라한 행태. 휴대폰 두두두두.


하지만 동시에, 각잡고 쓰지 않는 글의 멋짐도 알고 있다. 키친 테이블 노블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멋진가. 전쟁터에서 휴식 시간에 노트를 꺼내 글을 쓴다던가. 여행지는 또 어떻고. 결국 내가 글을 쓰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근사하냐 지하철. 멀미 걱정도 없고 집중도 잘 되고. 문제는 내 글씨가 나도 못 알아볼 정도로 악플이라는 것. 노트북을 펼쳐 놓기엔 공간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하철이 문제가 아니라 휴대폰이 문제였다.


그래서 한때는 녹음을 하기도 했다. 휴대폰을 통화하듯이 쥐고, 마치 가상의 상대방이 있는 것 처럼. “어 내다. 왜 전에 그때 말한거 있다아이가, 그 뭐지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글쓰는건 좀 구리다고 했었던거 내 좀 생각해봤거든? 그게 지하철 문제는 아닌거 같지 않나? 결국 폰으로 글쓰는게 구린거 같은데...” 하면서. 나름 훌륭한 아이디어였지만, 녹음본을 옮겨 적을 엄두는 나지 않아 금새 포기한 방법이다. 이렇듯 몇년이나 휴대폰의 대체를 궁리했지만 뚜렷한 대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있잖아, 여기까지 쓰고 생각해봤는데. 그렇다고 막 어떤 안경을 끼면 홀로그램 모니터가 뜨고, 내 뇌파나 어쩌구 시신경 저쩌구 이용해서 생각하는대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치면. 그건 또 싫을 것 같거든? 마이너리티 리포트야 뭐야. 난 그런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은 싫어요. 시대착오적인게 좋아요. 그렇다고 종이에 펜으로 쓰는건 싫지만, 나도 손글씨 잘 쓰면 그랬을거란 말이야. 결국 휴대폰으로 쓰는게 왜 안좋냐는 접근보단, 키보드를 두드리는게 왜 좋은지로 접근했어야 했다. 빠른 타자 속도. 손쉬운 자료조사. 맞춤법 검사. 텀블러에 차가운 커피. 스크리브너 전체화면. 비싸게 주고 산 키보드. 큼지막한 폰트 크기. 제이팍. 렛츠고.


그래 이렇게 마음에 드는 세팅 해놓고 휴대폰으로 쓰는게 말이 안되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폰으론 대충 쓰고 싶은 글의 키워드만 적고, 노트북으로 본격적으로 적어야겠다. 물론 이건 폰으로 쓴 글이긴 하지만 어쨌든. 마블 스냅이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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