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동규 Jun 08. 2023

AI와 영상 편집

AI의 발달로 인해 타격을 입는 직종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사실 거창하게 AI라고 할 것도 없이, 모든 기술의 발달은 기존 기술을 짓밟기 마련입니다. 이걸 굳이 암산과 주판, 계산기 등의 예시를 가져올 필요는 없겠지요. 영상 편집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수학이 아니야! 하지만 뭐 일러스트나 사진은 수학이라서 저렇게 떡하니 만들어낸답니까? 편집에도 엄연한 공식이 있고 정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리 어렵지도 않습니다. 보고 학습할 레퍼런스가 넘쳐나거든요. 알파고가 보고 배운 기보가 넘쳐났듯이.


하지만 다행히도, 영상 편집에서 중요한건 공식이 아닙니다. 아니 중요하긴 하지요. 공식에 따라 판을 깔아놓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완성이 되진 않습니다. 그걸로만 완성이 됐다고 생각한다면 얼른 AI에게 맡기고 물러나세요. 판을 깔아놓는건 편집의 출발점에 서는 행위입니다. 연출 하나 안 해본 조감독 시절에도 줄기차게 했던게 이 판을 까는 편집입니다. 간혹 욕심이 나는 작업은 제 나름의 완성까지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감독님의 최종본을 보고 나면 슬며시 프로젝트를 삭제해버리곤 합니다. 


AI는 이 조감독의 가편집을 훌륭하게 흉내낼지도 모릅니다. 촬영한 클립들과 스크립트, 콘티를 우겨넣으면 뚝딱 하고 판이 만들어질겁니다.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겠지요. 어차피 금새 만들어질꺼, 쿨하게 그냥 나왔다고 칩시다. 그래서, 누가 피해를 입습니까? 밤새 촬영 끝나자마자 잠도 못자고 프록시 돌리고 가편집 들어가는 조감독이요? 그 시간에 AI 돌리고 한숨 때리는게 만배는 더 이롭습니다. 정신 건강이든, 몸의 건강이든. 그렇다면 편집을 메인 업무로 삼고 있는 감독님들은? 1년차 조감독의 가편집 정도로 먹고 사는 편집 감독이라면 이젠 좀 도태되는게 어때요? 어떤 인맥으로 일거리를 받았었는지 몰라도, AI로 인해 타격 받을 정도면 진작에 접었어야 하는 사업으로 아뢰옵니다.


조금 현실적으로 접근하면, 크몽 등에서 분당 가격으로 편집비를 받는 유튜브 편집자들은 타격을 입겠지요. 단순히 건 바이 건으로 용돈벌이 아르바이트 말고, 박리다매로 동시에 몇개씩 쳐내는 업계 종사자는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은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주 조금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걸 하루아침이라 생각할 정도로 안일하게 살았으면 직업 정도야 잃어도 할 말 없지 않나요? 어떤 직업이든, 내 업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필요로 인한게 아니에요. 누구나 내 일이 영원할지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함은 더 나아지기 위한 동력입니다. 불안함 없이 묵직하게 제 할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텅 빈 배 위에서 혼자 노를 젓고 있을겁니다. 남들은 다 날아다니는데 말이에요.


너무 세게 얘기한건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에 뜨끔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아무리 단순 가편집이라도 반복되고 편집에 감이 생기면, 파이널 컷을 뽑아내는 안목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문제는 그런 안목을 가진 사람들끼리 경쟁할 생각 없이, 마치 공장 컨테이너 벨트마냥 가편집만 반복하는 작업자는 분명히 있다는거고. 그들의 안목과 능력은 별개로, 단순 노동이 좋아서 선택한 사람들에겐 AI가 일종의 날벼락일지도 모릅니다. 멀쩡히 잘 일하고 있는데 대뜸 AI가 몽둥이 들고 나타나선 얼른 짐싸서 꺼지라는 꼴입니다. 아쉽지만, 이제는 선택해야 합니다. 뛰어난 안목끼리 경쟁하는 파이널 컷의 세계로 뛰어들지, 업계를 떠날지 둘 중 하나를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박리다매 편집자들을 염두하고 한 얘기구요. 제 경우엔 귀찮고 지루하지만, 하긴 해야 하는 작업을 대신해서 해주는 단축키처럼 느낍니다. 사실 대부분이 그럴거에요. "AI가 나타났다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야!"라고 외치는 인구보다 "오 이걸 어떻게 써먹어볼까"가 월등히 많습니다. 당연해요. P2 메모리, CF카드 SD카드 나올때 징징댄건 DV 테잎 판매자나 1394 케이블 공장 뿐일겁니다. 더 편하고 스마트해진 편집 공정은 결국 시간을 가져오고, 시간은 수많은 시도를 가져옵니다. 필름 시절엔 모든게 돈이었기 때문에 한 컷 한 컷을 신중하게 찍었습니다. 지금은 일단 찍고 편집하면서 생각하자가 되지요. 뭐가 더 좋은 환경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고지 뿐인 세상에 워드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이 글도 팬으로 써야 했다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겁니다. 그다지 존재할 필요도 없구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기술의 발달은 결국 꼭 필요로 인해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아도 존재하게끔 하는건 아닐까요? 누구나 쉽게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세상이니 쓰레기 같은 웹툰도 넘쳐나고.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니 나무야 미안해 책들이 넘쳐나고. 또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휴대폰으로 쉽게 편집할 수 있으니 뿌슝빠슝 뿅뿅TV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누구나>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는거에요. 비싼 카메라가 있어야지만, 비싼 타블렛이 있어야지만, 비싼 원고지... 참 말하다보니 새삼스럽게 글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도 쓸 수 있긴 하네요. 어쨌든 더 쉽게 쓰고, 그리고, 찍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젠 그걸 더 쉽게 붙일 수 있는 세상이 오는거구요. 


문제는 사실 관객에게 있습니다. 허섭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는 늘 있었어요. 요즘은 그나마 저작권 인식이라도 있지, 예전 통샘플링 힙합을 듣다보면 민망해서 얼굴이 다 붉어집니다. 그들이 힙합의 대부 대한민국 힙합의 기둥 취급받는걸 보고 있으면 참 시대를 잘 타고났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분명한건, 퀄리티를 가늠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있었다 이겁니다. 표절이니 뭐니 해도, 좋은 음악을 즐기고.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빛날 것들은 빛났어요. 황금시대 오류가 아닙니다, 10년 뒤에 2023년을 황금시대로 기억할 것 같습니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꾸준히 좋은 작품들은 태어나지만, 결국 관객이 소비하는 대다수는 쓰레기 폐기물이지 않습니까? 치사하게 TOP 10 TOP 100 가져오지 말고, 한 해 동안 만들어진 창작물을 죄다 뭉쳐보면 악취가 나지 않냐구요. 당연하지, 그만큼 만들기가 쉬우니까. 그런데 제가 어이가 없는 포인트는, 그런 쓰레기가 왜 잘나가냐구요. 만들기 쉬우니깐 쓰레기들 잘 만든건 자연스럽잖아? 그런데 쓰레기들이 잘나가는건 결국 관객의 탓이 아니냐 이거야. 솔직히 조금은 반성할 필요 있지 않습니까? 


AI 이야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부터 반성하겠습니다. 결국 말하고 싶은건, 약간 몇 줄 요약 식으로 이야기해보면(아직 몇 줄일진 모르겠지만)


1 AI 영상편집 기술은 가편집을 더 쉽게 도와줌이 분명하다.

2 가편집이 기술의 전부인 사람들은 도태될 것이다.

3 반면,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들은 더 쉽게 더 많이 아이디어를 뿜어낼 것이다.

4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객의 수준은 질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5 그러니 진짜를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고. 가짜에 중독되지 말지어다.


마지막으로 6번이자 대충 이 글을 정리하는 늬앙스의 문장인데. 기술은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 도구는 더욱 뛰어난 창작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도 뛰어난 창작을 찾지 않는 사회가 오면, 우리는 결국 도구에 지배당할 것이다. 영양가 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 같은 글에 만족해선 안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반이 왜 쓰레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