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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스톤 Mar 24. 2024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

지나간 일은 모두 추억이 된다

누가 아니래도 그렇다

정말이다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추억이 된다

(허영만, 오! 한강 에서)


<! 한강>을 읽고 있는데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지난날 겪었던 세 번의 큰 고뇌가 지금은 모두 추억으로 변신했다. 당시에는 무척 괴로웠는데 지금은 가슴속 보물단지 안에 소중하게 담겨있다.




첫 고뇌는 고2 때 찾아왔다.

가고 싶은 대학과 가야 하는 대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무렵, 친구가 선물한 <데미안>을 읽었는데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불씨 하나가 팍 터져 버렸다.

내가 싱클레어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두꺼운 알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쳤다.

방과 후에는 다락방에서 공부하던 일과를 팽개치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언덕밑에 보이는 부산시내 야경을 한참 바라보다 집으로 오곤 했다.

정도가 심한 날에는 밤늦게 몰래 소주를 마시고 일기장에 낙서를 갈기곤 했다.

당시 일기장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여럿 나오는데 꽤 심각했었나 보다.

가정환경과 대학 선택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성적이 떨어지자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고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야지’라는 말씀에 마음을 바로 잡았다. 다행히 가야 할 대학에는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방황이 내 정서에 영양분을 많이 주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에 사춘기 번뇌가 더해져서  ISFJ로 굳어진 것 같다.


두 번째 고뇌는 군대생활 할 때 나를 찾아왔다.

철책선 근무보다는 사람들과 자주 접하고 싶은 얄팍한 마음에 전경을 지원했다.

논산훈련소를 마치고 서해안 경비 근무로 배치받았다

(당시 동해안은 해병대가, 남/서해안은 전투경찰이 북한 공비 침투 방어 목적으로 해안경비를 했다)

철저히 혼자였다. 선임과 후배만 있는 해안초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

거기다 구타와 기합, 근무 강도가 심해서 이겨보려고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주간 경계근무할 때는 조그만 단어장을 들고나가곤 했다.

서치라이트 불빛으로 날아드는 형형색색의 나방들과 겨울 밤하늘을 사선으로 내리꽂는 백색 눈발의 춤사위를 보면서 마음을 달랬던 기억도 난다. 군대 복무기간  동안 겪었던 고독과 고통이 제대 후 사회생활할 때 인내심과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는 직장 생활할 때 만났다. 대기업에 기세등등하게 입사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의 일원으로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다. 사원에서 부장이 되기까지 산 넘고 강 건너면서 때론 힘들었고 때론 즐거웠다. 웬만한 스트레스는 그때그때 풀었고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큰 암벽을 맞게 된 건 부장 4년 차 때였다. 새로 부임한 사업부장으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넘기에는 너무 힘든 벽이었다. 본인의 스트레스를 부하직원에게 푸는 스타일 그 밑 여러 부장들이 엄청 힘들어했다. 등산과 음악으로는 해소되지 않았고 불면과 악몽의 터널에 갇혀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번 아웃 직전에 그곳을 탈출하여 협력사 새 둥지로 날아갔다

(더 버티면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대기업을 떠나면 인생 끝나는 줄 알았는데 협력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을 보내게 되었다.

을의 위치에서 갑을 경험했고, 여러 분야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나는 해외출장을 여행 가는 마음으로 다녔다)




인생사 새옹지마

맞는 말이다.


괴롭고 아팠던 시간들이 지나고 보니 모두 추억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뇌를 통한 성숙으로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남을 위한 조금의 배려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소확행의 참 뜻을 조금씩 받아들였고 행동으로 옮기면서 삶의 행복을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겨도 빙긋 미소 지으려 한다. 어차피 지나면 추억이니…


오늘 아침, 설거지 잘못했다고 야단맞은 것도 내일이면 추억으로 변해있겠지.






표지사진 : 근무 설 때마다 바라봤던 조그만 무인도, 제대 후 10년 주기로 찾아가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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