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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스톤 Jan 09. 2024

용감한 건지 간이 배밖에 나온 건지

그래도 다시 한번

어느 '항명' 기사를 읽다 보니 내가 했던 항명 사건이 떠올랐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신입사원 때 항명을 세 번이나 했다.

간이 배밖에 나왔었나 보다.




(상황 1)

두 달간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울산공장 00 본부에 배치되었다.

본부에서도 2주간 교육이 있어서 기초업무를 배우고 있던 어느 날, 관리과장이 사원급 직원을 대상으로 면담을 한다고 했다.

내 차례가 되어 회의실로 들어갔다. 직사각형 테이블 중앙에 관리과장이 앉아있었고 양옆으로는 대리 두 분이 앉아있었다.


"스톤씨,  고생 많지?

알다시피 요즘 노조 결성 때문에 현장이 엄청 시끄러워. 그래서 젊은 사원들이 회사를 위해 힘 좀 써줘야겠어.

내가 모이라 하면 전부 모여서 현장으로 가도록 하지!"


"전, 안 가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과장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대답한 나도 놀랐다


"엉?  왜?"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의실 온도가 급강하했다.


"아,  그래... 그러면 스톤씨는 빼도록 할게. 나가봐"


회의실을 나오자 김대리가 따라 나왔다. 그는 내 팔을 붙잡더니 다른 회의실로 끌고 갔다.

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지만,  젊은 패기 이해는 하는데 회사생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로 시작해서 30분쯤 일대일 인생강의를 듣고 나왔다.


그런데, 당시 결성했던 '구사대'는 한 번도 출동하지 않았다.

나만 관리과장에게 찍혔다.


(상황 2)

내가 입사했던 시기는 회사가 급격히 팽창하던 때였다. 토요일에도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시절이었다.

입사 첫해에는 일요일조차 한 달에 두 번 정도 특근을 했다.

여자 친구와 주말마다 데이트를 하던 나는 토요일만 기다렸고 오후 5시 땡 하자마자 사원숙소로 달려가

상의만 갈아입고 택시 잡아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가곤 했다.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담당 과장이 과원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번주도 수고 많았습니다. 건데..."

'안돼 안돼'

"이번주 마무리 할게 좀 남아서 내일  특근해야겠습니다. 모두 특별한 일 없지요?"

'안돼에에에'


당시에는 과장이 특근하자고 하면 열외 없이 다 나와야 하는 분위기였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저녁에 그녀와 광안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과장님, 내일 특근에서 저를 좀 빼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용기를 내서 건의했다.


“왜? 무슨 일 있는가 보네?”

“여자친구와 약속이 있어서요.”

과원들 눈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되게 용감하네, 우리는 뭐 약속 없는 줄 아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참,  스톤씨는 매주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 되네. 스톤씨는 빼줍시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다른 총각 과원들의 눈총이 쏟아졌다.

내게는 일보다 그녀와의 만남이 더 소중했다.

겁도 없이.


(상황 3)

입사 첫해는 매일 10시쯤 일을 마쳤고,

퇴근하면서 종종 회사 앞 호프집에 들렀다.

총각사원들끼리 어울려 마실 때는 그나마 즐겁게 마셨는데

담당과장과 함께 마실 때는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대부분 대화 소재가 목표달성에 관한 것이었다.


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날, 막 퇴근하려는데 과장이 말했다.

"모두 회사 앞 호프집에 가서 500cc 한잔만 하고 갑시다"

슬쩍 과원들 얼굴을 보니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500cc 한잔에서 시작해서 대여섯 잔 마셔야  말씀이 마무리되었다)

‘회의시간에 못다 한 말씀을 하시려나보다. 오늘 비도 오는데...'


손을 번쩍 들었다.

“과장님, 제가 배탈이 나서 오늘 술 마시기가 좀 힘듭니다”


“그래? 그러면 스톤씨는 바로 퇴근해”

“옙!”.  

가슴속에서 아싸 소리가 났다.


항명이 아니고 거짓말을 했다.

숙소로 가서 바로 옷 갈아입고, 테이프 하나 들고 택시를 탔다.

비가 오면 즐겨 찾는 일산해수욕장 포장마차로 갔다.


“이 노래 좀 틀어주세요”

호세펠리치아노 노래 테이프를 아주머니께 건넸다.

포장마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흐르는 ‘rain‘을 들으며 소주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소주가 짜르르르 소리를 내며 식도에서 미끄럼을 탔다.

“아주머니, 여기 멍게 한 접시하고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세 경우 모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직장생활에서 항명은 결혼한 후부터 사라졌다.

두 딸이 태어난 후부터는 아주 착실하게 고분고분 회사생활을 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열받을 땐 아내와 두 딸을 생각하면서 잘 버텼다.

가늘고 길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요즘,

오랫동안 내면에서 숨죽여 있던  '항명'이 꿈틀대고 있다.

김여사한테 항명할 틈을 노리고 있다.

간이 다시 배밖으로 나오려나 보다.




사진 출처 :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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