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학교에서 4년
5월 25일, 방학 2주 포함 8주간의 휴교를 마무리하고 NSW 주는 재 등교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staggered return' 점차적 재개, 즉 첫 주에는 일주일에 하루, 둘째 주에는 일주일에 이틀, 셋째 주에는 삼일, 넷째 주에는 사일 이렇게 점차적으로 늘려 최종적으로 6월에 풀타임으로 학교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요즘 확진자 수가 거의 무시할 만한 수치만큼 떨어지자 3주 차에 풀타임으로 학교 문을 열었다.
두 아이들 모두 친구들 방문도 못하고 집에 있는 게 지루 하긴 해도 너무나 편했던지라 당연히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첫 주, 일주일에 하루 학교 등교. 7,8학년은 월요일과 화요일에, 9,10학년은 목요일과 금요일에 등교하기로 정해 졌다. 달이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좋기는 했지만 너무 집에 돌아오고 싶었다며 집에 오자마자 내 품에 쏙 안긴다. 별이는 친구 하나를 빼고는 9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고 자기도 가기 싫다고 했다. 별이랑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삼총사는 8학년이라 같은 날 등교가 아니라 재미도 없었을 것이다.
둘째 주, 일주일에 이틀 등교. 월요일에 학교에 간 달이는 친구들을 만난 건 반가웠지만, 어차피 거리를 두고 앉아야 하고 컴퓨터로 내준 과제를 똑같이 하는 거라며 너무 지루했다고 했다. 화요일은 친구들 모두 오지 않기로 했다며 자기도 등교를 거부했다. 그걸 지켜보던 별이 역시 목요일과 금요일에 자기 친구들은 아무도 안 올게 뻔하다며 역시 등교를 거부한다.
그리고 셋째 주, 갑작스러운 풀타임 등교 시작이다. 이번 주부터는 온라인 출석이 인정되지 않아 안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비도 오고 유난히 추웠던 아침. 아이들은 일어나기를 힘들어했다. 늘 그렇듯 달이는 조금 구시렁거리다 학교로 갔다. 별이는 달이가 학교로 간 한참 후에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학교 갈 시간이야."
"너무 추워"
"옷을 입어"
"교복이 너무 차가워"
아이는 잠옷을 입고는 과장되게 이를 떨고 몸을 떨며 추운 시늉을 한다. 그러고는 옷을 입을 생각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전 9시 30분이 다 되어도 침대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자주 동네 산책을 하고 서점과 슈퍼 나들이를 한 나와 달이와 달리 별이는 8주간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달래도 보고 꼬셔도 보고 협박도 해봤지만, 밖에 나가서 자기가 코로나가 걸리면 어쩔 거냐며 '나가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중3씩이나 된 아이를 억지로 끌고 나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별이는 거의 8주간 나와 달이 외의 사람들과 접촉도 없이 집안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간 학교에서 자기 친구들은 만나지도 못하고 민숭맹숭한 하루를 보낸 첫 주의 경험은 아이를 더욱 움츠려 들게 한 것이다.
아이의 교복을 건조기에 돌렸다. 평소라면 전기세가 무서워 어림도 없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자, 이제 엄청 따뜻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뜨끈하고 보송보송한 교복을 받아 입는다.
"이제 춥지 않으니 학교에 갈 수 있겠지? 춥다고 말만 하고 누워있어 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잖아. 어떤 문제든 해결해서 없애야지"
"엄마, 학교가 너무 지긋지긋해. 호주 시골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제대로 없잖아. 그냥 자퇴하고 검정고시나 볼까?"
이 아침에 갑자기요?
"물론 공부만 보자면 집에서 한국식으로 공부하는 게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어. 검정고시도 학력을 따는 한 방법일 수도 있지. 하지만 하루아침에 충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우선 이번 학기는 시작했으니 마치고 아빠랑 가족 모두 이야기해서 결정하자. 니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엄마 혼자 결정할 수가 없네. 그리고 엄마는 너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이랑 친구들이랑 놀라고 호주 시골 학교 보내는 건데?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중요한 거야. 혹시나 널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얘기해. 엄마가 가서 해결해 줄 거야.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면 엄마는 네가 학교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할 말이 없어진 아이는 다시 여덟 살, 처음 학교 가는 아이가 된 양 학교 가기 싫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다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과장된 몸짓과 소리, 심지어는 자기 머리를 한 두 번 쿵쿵 쥐어박는다. 학교에 가서 사람들을 만날 어색함과 부담감이 아이를 짓누르나 보다. 빠져나갈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니 차라리 어린아이로 퇴보한 척하기로 한 것 같다. 여러 번의 전학을 하며, 학교에 가기가 어색하고 힘들 때마다 아이는 그런 모습을 종종 보였다.
"별아, 너를 봐. 이제 키도 엄마보다 훨씬 크고 얼마나 훤칠하게 멋진 아인지. 너는 엄마 보다도 과학책이나 역사책을 잘 이해하고 기억하잖아. 얼마나 똑똑한 아이니? 그런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칭얼대는 여덟 살짜리 아이 같잖아. 너는 충분히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야. 그리고 감정도 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야. 지금 네가 학교에 가기 싫은 건 당연해. 네가 느끼는 감정을 말하자면 두렵기도 하고 부담스럽고 어색한 거 같은데, 어때?"
아이는 과장된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멈추고 나를 또 쳐다본다.
"엄마도 집에 있는 게 너무 편해서 니 기분을 알 거 같아.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지? 왜 싫을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어색하고, 불편하지?"
"응"
아이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엄마도 그런 적이 많았어. 근데 막상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다? 어제도 만난 것 같을 거야"
아이는 겨우 침대에서 몸을 끌고 나온다.
"배고파"
그래 이미 늦은 것, 비도 오는 추운 날 밥이라도 뜨끈하게 먹고 가야지. 아침밥을 차려주니 마지막 남은 밥 한 톨까지 싹 비운다.
도시락을 챙겨 넣고 집 밖을 나선다.
"벌써 10시 30분이 넘었잖아. 늦는 건 싫다고..."
"늦잠을 잔 것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은 것도 네가 그랬잖아? 네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지각해서 창피한 건 당연한 거고 불이익이 있으면 받아야지."
"오늘은 안 가고, 내일부터 가면 안될까?"
"안돼, 저번 주에 이틀 안 가기로 하면서 오늘은 꼭 학교에 가기로 했잖아.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지."
집 밖으로 나온 아이는 달팽이보다 느리게 기어간다. 마침 그새 비가 그쳤다.
"선생님한테 혼날 것 같아 그래?"
"호주 학교에서 혼내는 사람은 없잖아"
"엄마가 선생님한테 오늘 좀 어색해서 오기 힘들어서 늦었다고 말해줄까?"
별이는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있다. < a boy who doesn't speak > 이 지난 4년간 호주에서 별이의 포지션이다. 이제는 많이 좋아져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꽤 하지만, 스스로 선생님께 가 저런 이야기를 할 리는 만무하다.
아이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다시금 거북이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갑자기 학교 반대쪽을 향한다. 집에서 오분 거리의 학교를, 굳이 20-30분 이상 걸리는 학교 반대쪽 언덕을 굳이 올라 건너고 다시 빙 둘러 학교를 간다나? 그냥 학교로 직진하자는 내 말에
"맨날 똑같은 길로 갈 이유가 없잖아. 엄마는 너무 사고가 굳었어. 사람이 좀 창의적이어야지." 라며 갑자기 호통을 친다.
굳이, 8주 만에 학교 가는, 1시간 30분이나 지각한, 오늘, 지금 갑자기요?
"당연히 네가 원하는 길로 가도 되지. 그런데 지각했을 땐 가능하면 빠른 길로 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 아니니?"
아이는 반대쪽 길과 학교로 가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겠다는 듯 일 미터의 거리를 왔다 갔다를 토끼처럼 수십 번 반복한다. 답답한 마음에 뭐 하냐고 소리를 빽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나도 그 뒤를 속도를 맞춰 함께 걸었다. 두 달만에 학교 가는 길. 별이에게 쉬울 리가 없다. 자기 뒤를 따라 걷는 내가 부담스러웠던지 학교로 향한다. 오분 거리를 십오 분도 넘게 걸어, 일 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학교다. 아이는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전봇대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이나 섰다. 얼마나 그 모습이 답답해 보였던지, 빨리 건너지 못해! 하고 쇳소리를 내며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간 학교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8학년 친구들과 친해도 9학년 별이 반에는 친구도 없을 텐데. 엄마가 소리쳐서 억지로 학교를 보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말도 않고 전봇대 반대로 가서 아이를 마주 보고 내 머리를 기댄다. 아이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뗀다. 그러고도 차도 하나를 건너지 못한다. 마침 선생님 한분이 담배를 피우러 잠시 나오셨다. 구세주를 만난 양 반갑다. 재빨리 다가가 부탁을 드린다.
"선생님 휴식 즐기시는데 죄송해요. 오늘 별이가 8주 만에 거의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서 학교 가는 게 많이 낯설고 어색한데, 이제 지각까지 해서 창피해서 들어가는 게 많이 힘든가 봐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늦더라도 오늘 학교를 가야지, 내일도 올 수 있을 거 같아요. 힘들어도 지금 부딪히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선생님은 활짝 웃으시며
"나도 셧다운으로 집에서 있다가 풀타임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집에 있는 게 너무 좋아서 얼마나 나오기 싫었다고요. 지금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꽤 있어요. 걱정 마세요" 하면서 밝게 웃으신다.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걸 본 별이가 도로를 천천히 건너온다.
"마침 점심시간에 딱 맞춰 돌아왔네, 오랜만에 오니 힘들지? 너만 그런 게 아니란다. 선생님이랑 같이 들어갈까?"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 40분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걱정되고 답답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체카가 좋아하는 과자를 하나 들고 그녀의 문을 두드린다.
"Darling, how nice to see you!"
등 뒤에서 대문을 열며 그녀가 외친다. 양손에는 장 바구니를 잔뜩 들고 계신다.
"차 한잔 하고 갈래?"
"네, 차 한잔 얻어먹으러 왔어요"
그녀가 좋아하는 쿠키를 내밀자 좋아하신다.
"So, how are you?
"엉망이에요. 오늘 별이가 학교에 가는 날이었거든요. 다시 여덟 살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이 마을로 처음 오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silly 하게 구는 거 있죠. 이제 막 학교에 갔어요." 하며 아침에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털어놨다.
"Oh poor thing, 힘들었겠구나.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잖아. 지금 유례없는 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잖아. 오늘 많은 엄마들이 힘든 아침을 보냈을 거야. 별이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니란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었는데, 참 많이 발전하고 자랐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갑자기 또 그런 행동을 보이니 당황스러웠어요. 별이랑 내가 이때까지 해온 게, 노력한 게 다 무너져 내린 것 같아서 속상해요. 그냥 집에서 쉬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오늘 가지 않으면 내일은요?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하잖아요. 차라리 매섭게 혼내서 빨리 학교로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보내면 아이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까 봐 그럴 수가 없었어요. 한 번씩 아이가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왜 15살이 돼도 아직 까지 이런 일을 계속 겪어야 할까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엄마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불확실성 속에서 살고 있잖아.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아마 학교에 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그리고 별이는 원래가 사람들 대하는 게 편하지 않으니까 더 힘들었을 거야. 불편한 감정들을 다 처리하기 힘드니까 그냥 편하게 어린아이 같은 행동으로 표현했겠지.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나아가는 거는 건 중요한 거야. Just muddle on. 별이는 별이가 할 만한 행동을 했고 너는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했어. 너는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야. 너의 결정을 믿으렴. 아이마다 다 다르듯 정답이 없는 거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별이를 용서하고 널 용서하렴."
우리는 그녀가 요즘 사들인 새로운 옷감과 캔들, 책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침 그녀의 오빠 파비안이 시드니에서 와 있었다. 파비안은 체카만큼이나 똑똑하고 독특한 분이다. 그의 이야기와 사진을 수도 없이 듣고 봐서 잘 아는 사람인양 너무 반갑다. 그 역시 별이와 나에 대해 많이 들었다며 반가워했다. 별이를 너무 만나고 싶다며 금요일까지 마을에 있을 것이니 언제든 함께 놀러 오라고 하신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청소를 하고 나니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마침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렸는지 우산이 흠뻑 젖은 다리가 우산을 접으며 차가운 빗물을 튀기며 내 품에 쏙 안긴다. 그 뒤로 흠뻑 젖은 별이가 따라 들어온다. 별이가 나갈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엄마, 가보니 나쁘지 않았어"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먼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 삼총사는 다 왔어?"
"응"
아이의 웃는 모습이 환하다. 마음이 놓인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생각해보니 체카네서 쿠키 몇 개와 차 한잔 빼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다리가 끓인 라면 반개를 얻어먹으며 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