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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Aug 25. 2020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와 호주 시골에서 3년 

3년 반의 호주 시골 생활, 5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날이 드디어 왔다.

I thought the day would never come.

 

6월 10일 이제는 떠날 때


한국의 K 방역이 빛을 발하고, 호주의 코로나 확진자 수도 감소세로 접어든다.

아이들 학교는 7월 초면 종강이다. 남편이 베트남으로 떠난 지도 2달이 넘어간다.

달이의 학교는 8월 11일 개학이다.

 

호주에서 아이들 1학기가 마치면 우리는 베트남으로 갈 것인가? 한국으로 갈 것인가? 


현재 하늘길이 완전히 막힌 호주에서 베트남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한국으로 간다면 2주간의 자가격리를 거쳐야 하지만, 특별 입국을 신청해 볼 수 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호주 시골 -> 캔버라 -> 시드니 -> 서울 -> 부산이라는 여정을 소화해야 한다. 내키지 않지만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친구들에게 약속했던 폭탄주와 불고기를 맛보여 줘야 한다. 불고기나 김밥 등 간단한 한국 음식은 소개해 준 적이 종종 있지만 폭탄주, 한국음악과 함께 하는 ultimate Korean experience를 꼭 선물하고 싶다. 감사한 사람,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지만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한 번에 초대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다. 세 팀으로 나누어 초대 메시지를 보낸다.

 

6월 11일 한국행 항공편 예약


페이스북의 외교부 공지를 보니 6월  30일 출발 한국 편에 자리가 있다. 7월 한국행 일정은 나와있지 않다. 상황이 흘러가는 걸로 보아 7월에 비행 편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한다. 

정말 한국으로 떠난다. 

 

6월 12일 체카와 조니 프래니 초대


2020년 초부터 누군가를 집에 초대할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의 손님 접대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정신이 없다. 재료 공수도 쉽지않아 가능하면 호주 슈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메뉴를 정했다.


불고기, 두부 김치, 잡채, 양파 절임, 김밥

체카는 셀리악병이 있다. 글루텐을 소화하지 못해 배가 아픈 병이다.  특별히 글루텐 프리 간장을 사서 음식을 준비하고, 맥주와 소주 로제 와인을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준비한다.


5시 반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체카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한참 운 목소리다.

"Sorry darling, 어젯밤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단다. 조니와 너의 한국 음식 꼭 먹으러 가고 싶지만 지금 기분으로 갈 수가 없구나. 분위기만 나쁘게 만들게 뻔해.  하루 종일 음식 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미안"

체카의 친구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이틀 전에 들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이 아프 우리는 그녀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지만 이렇게나 60세 중반의 그녀는 떠나버렸다. 더 슬픈 것은 일주일 후 그녀의 장례식에 코로나로 인한 모임 인원수 제한으로 체카는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슬퍼하는 체카를 위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약속엔 프래니만  왔다. 

“우리는 왜 이제서야 이런 시간을 가진 거야?” 

별이와 달이가 다니는 중학교 선생님이자 달이가 초등학교 때 영어 튜터가 되어준 프래니

그녀와는 가끔 오후에 와인을 한잔하기는 했지만, 늘 다른 친구들도 함께라 그리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소주, 맥주, 화이트 와인이 각 한 병씩 비워지고 우리의 이야기도 술술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그녀와 나는 통하는 게 많았다. 


“We should have done this more often” 이런 시간을 더 가졌어야 했는데..

“I am glad that we’ve finally done that.” 지금이라도 이런 시간을 가져서 기뻐

 

식사를 마치고 프래니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말했다.

“우리 이제 정말 떠나”

“언제 비행기?” 그녀가 깜짝 놀란다.

“6월 30일”

“Wow” 그녀는 나를 꼭 안아 준다. 


우리는 호주도 베트남도 한국도 아닌 언젠가 프랑스 파리에서 재회하기로 했다. 


6월 13일 또 한번의 Korean Dine & Wine


젠과 칼리가 브랜디와 아리를 데리고 왔다. 메뉴는 같다. 

흔히 사람들은 호주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하는 칼리와 청소업을 하는 젠과 칼리는 근면 성실하다. 그녀들은 주말도 없이 일한다. 가끔 멋진 휴가를 자신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니?” 호주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다소 못마땅하다는 묻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거든” 그녀들은 대답한다. 


그녀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알고 있다, 아무것 가진 것 없이 그저 묵묵히 열심히 용감하게 일하며 지금의 안락한 삶을 일궈온 그녀들. 나는 그녀들을 존경하고 그녀들이 내 친구인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녀들을 보고 나도 사업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꾸어 보지 못한 꿈.  하지만 나도 그녀들처럼 성실히 일해 내 스스로를 부양하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에게 일자리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6월 16일 칼리네 집. Korean Costume Experience


칼리가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올해 초 마을에 있는 집을 하나 더 사서 이사를 했지만, 그녀 역시 호주 산불과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을 초대하지 못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말을 듣고 아리의 새 친구 강아지 유키와 새집을 구경시켜 주기 위해 초대를 한 것이다. 

 

이삿짐 정리를 하다 보니 한국 한복을 찾았다. Ultimate Korean Experience에 제격이다. 


“젠, 네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아 내가 한국을 여기에 가지고 왔어.”

젠은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마흔이 되도록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은 패션쇼를 선보였다. 젠과 칼리도 한복을 입었다. 가지고 간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즉석 사진을 찍어 나누어 주었다. 내일 아침 일찍 또 일터에 나가야 하는 그녀들이므로 이른 안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칼리의 집.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한눈에 마을의 풍경이 담긴다. 안녕… 이제 이 풍경도 마지막 이구나. 

 

6월 20일 타냐에게 한국음식 만들기 클래스


타냐는 내가 일하던 호주 철물점의 주인 바네사의 여동생이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8개월 전쯤 이 시골 마을로 이사 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가 마을로 이사 오고 2개월 후쯤 호주 산불이 크게 났고 3개월 차쯤 되던 어느 날 피터와 바네사의 집이 불에 완전히 타버렸다. 다행히 타냐가 마을 안에 살고 있어 피터와 바네사 세 명의 아이들은 그녀 집에서 머물러 안전할 수 있었다.

 

화가인 타냐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태국 혼혈의 그 아이는 붙임성이 좋고 사랑스럽다. 타냐는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 전 나에게 한국 음식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땅한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약속은 꼭 지키려는 사람이다. 떠나기 전 그녀에게 한국 음식 만드는 것을 알려주기로 했다. 함께 양파를 채 썰어 간장, 설탕, 식초, 물이나 미림을 1:1:1:1로 섞어 양파절임을 만든다. 간단하지만 불고기나 김밥, 특히 아보카도 김밥이나 계란 김밥처럼 재료가 간소한 김밥과 잘 어우러진다. 호주 사람들은 이 양파절임을 너무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레시피를 전해 주었다. 

 

타냐와 함께 김치와 베이컨을 썰어 달달 볶은 후 두부와 함께 두부 김치를 만들고

야채를 채 썰어 잡채를 만든다. glass noodle 유리같이 투명한 당면으로 만든 잡채. 불고기 양념한 소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은 잡채를 싫어하는 호주 사람을 보지 못했다. 

타냐, 프래니, 칼리, 젠 모두 잡채를 꼭 만들어 먹겠다며 레시피를 알아갔다.

가장 좋은 것은 잡채의 모든 재료를 호주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 

 

함께 김밥을 말고 소맥을 말아 점심을 한다.

나와 두 살이 차이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는 내게 그저 바네사의 동생이었을 뿐 속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술 한 잔과 점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우리는 통하는 게 많았다.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다 이제 마흔을 눈앞에 둔 우리는 합창한다. 


“이제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아.”


그건 남자도 아이도 아니었다. 나를 알아 가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그녀가 조금 부러워졌다. 

호주는 한국에 비해 나이에 대해 관대하다. 

한국에서 변변찮은 커리어 없이 아이 둘이 딸린 마흔이 된 아줌마인 나는 조금 더 불안하다. 

 

 

6월 24일 이삿짐 베트남으로 보내는 날


그렇게 네 번의 만남을 가진 후 정신없이 이삿짐을 정리했다. 다행히 포장이사라 짐을 싸는 수고는 덜었지만, 5년간의 호주 생활 동안 불필요한 짐이 많이 늘었다.


“이것들이 배를 타고 베트남까지 갈 가치가 있는 물건들인가?” 

“It’s time to do some culling.” 나의 고민을 듣고 친구들이 말한다.

culling 고르기. 선택. 도태라는 뜻, 호주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캥거루를 사냥할 때도,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서 연락을 않는 친구를 삭제할 때도, 더 이상 불필요한 아이들 장난감을 정리할 때도 culling을 사용한다. 

 

Massive culling 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컨테이너를 가득 채울 만큼 짐은 많다. 언제까지 이 짐들을 다 끌어안고 살 것인가.

 

새벽부터 시드니에서 온 이삿짐센터분들과 짐을 다 싸서 보냈다. 텅 빈 집.


"This is it. 이제 끝이야."


이제 호주에서 살 날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세 개의 캐리어 가방. 


가재도구는 이불 하나, 담요 두 개, 난방 매트 하나, 목베개 3개, 전기 주전자, 냄비 하나, 숟가락 젓가락 3벌씩, 밥그릇 세 개.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라 충분하지 않지만, 물건이 더 많아봐야 나중에 처리만 어렵다. 친구들이 식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슈퍼에서 냉동피자와 라자냐 등을 사다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 

 

저녁에 체카가 저녁식사 초대를 했다. 아이들은 쑥스러운지 가지 않는다고 해서 나만 갔다. 그녀가 내게 맛 보여 주고 싶었던 이태리 가정식 라자냐와 호주 디저트 파블로바를 맛있게 먹고, 두 병의 로제 와인을 비웠다. 교장선생님이셨던 체카답게 떠나는 나를 위해 일장의 연설을 해주신다.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프래니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소리친다. 

“Hip Hip”

나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받아친다.

“Hurray”

보통 생일 축하 때 하는 Hip Hip Hurray 삼창을 하고 우리는 까르륵 웃었다. 


언제나 호주로 돌아오고 싶으면 자신들의 집은 나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프래 니와 체카의 말에 가슴이 찡하다.  프래니와 조니 체카 카샤와 안녕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Saying Good bye never gets easier. 

그동안 수많은 이사를 했건만 이별 인사를 하는 것은 익숙해지지도 쉬워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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