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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Feb 11. 2023

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다.

친구야 나 잠시만 고독하고 올게!

 노트 한 권을 채웠다. 


 겨울 동안 꼭 브런치북에 담아 두어야지 했는데 아뿔싸. 봄이 코 앞이다. 바빠질 날들을 생각하니 초조하다. 쓰지 못할까 봐.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이겠으나, 게으르다 자책하다 보니 좀 억울하다.

 감사하게도 틈이 없었다. 7평 작은 가게는 추울 틈이 없었고 나는 쓸 틈이 없었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매일 찾아주시는 감사한 분들.

 아침에 복숭아빛 거베라를 들고 가게로 향하는데 불현듯 ‘나는 고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읽었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쓸 때 일본을 떠난다고 했다. 나는 소설을 쓸 재능도 없고 더욱이 장편은 꿈도 못 꾸니 무려 한국을 떠날 이유는 없겠으나, 변화가 필요하다.


 “나? 가게 앞 횡단보도! 거베라 샀는데 너무 좋아.” 라 말해 버리니, “거베라를 들고 횡단보도에 섰다. 내가 봄이 된 것 같아 아찔하다.” 라 쓸 고독이 없다. 일찍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출근. 가게에 종일 있는 편이고 자격증 학원에 다니고 있고. 중간중간 가족들과 계속 연락하고 얼굴 보고. 퇴근 후는 아이들과 뒹굴뒹굴. 혼자 있는 기분을 누리기 쉽지 않다. 전화로 좋은 친구들과 히히 호호 이야기를 충만히 나누니 소통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촐랑거리다 쓸 이유를 잊는다.

 

 노트에서 브런치로 옮기지 못한 것은, 부족했던 부지런만큼 고독도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으른 인간이란 평가에서 벗어날 구실이 생겨 기쁘면서도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독을 어디에서 구하지.


 소통이 고픈 일상을 만들어볼까. 소중한 친구에게 속삭여본다. 친구야. 나 올해는 꼭 쓰고 싶어. 꼭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어. 네가 들어주었던 이야기들을 문장으로 엮어 미소를 만들어내고 싶어. 그러니까 친구야. 나 잠시만 고독하고 올게. 그 사이 새로운 네 이야기도 모아서 들려줘. 


홀로여도 예쁘고 함께여도 예쁜, 거베라


 아. 쓰고 나니 벌써 네 목소리가 그리워. 거듭 반성하는 내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네가 보고 싶어. 난 아침형 인간이고 벌써 밤이 되었으니 별 수 없지. 

 오늘 저녁 메뉴는 보쌈이라 했잖아. 육즙 머금은 부드러운 보쌈이 완성되었는지 아니면 지난번 해물탕처럼 생것으로 먹는 편이 나을 뻔한 괴상한 요리가 되었는지. 눈끝 주름 보톡스를 맞았더니 눈밑 주름이 더 선명해져 피부과에 다시 간다 했잖아. 잘 지워졌는지 어딘가 또 다른 주름이 발견되지는 않았는지. 겨울이 가기 전 눈썰매장에 다녀온다 했잖아. 아이들과 신나게 타고 왔는지 종종 아픈 네 허리가 잘 이겨냈는지. 아잇. 궁금해서 안되겠다.

 친구야, 지금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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