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는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고생을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가
렌조 라 패스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감상한 후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걷고 또 걷고 그리고 계속해서 걸었다. 그나마 내리막 길이어서 괜찮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내리막 또한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목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기에 전체적인 컨디션까지 좋지 않았다. 앞에서는 강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이 나를 밀어냈고 쓰고 있던 정글모는 계속 뒤집어졌다. 끝이 없었다.
'도대체 나는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고생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는가.'
설령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주며 하라고 했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스스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험한 코스와 날씨를 뚫고 나타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던 아름다운 풍경들은 계속해서 내가 걸어갈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주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저 앞에 작은 마을이 보였다. 눈짐작으로 재어 보니 앞으로 20여분 후면 그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곧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서히 긴장이 풀렸는지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졌다.
라즈가 걱정하듯 소리쳤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좁은 내리막 길이었기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될 거 같았다. 갈수록 찬 바람은 강해졌고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으로 인해 몸은 춥고 목은 따가웠다. 정신이 흐려지려 했지만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건! 마지막까지 정신 차려야 해, 조금만 더 긴장하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최악의 컨디션인 몸을 이끌고 드디어 해발고도 4,368m에 위치한 룸데(Lumde)에 도착했다. 오늘 트레킹은 정말 역대급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매일이 내가 가장 힘든 날이라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오늘이 지금까지 일정 중 가장 힘든 하루였다. 이제는 몸이 지칠 대로 지친 거 같았다. 최초 목표했던 곳들을 다 점령해서 그런 걸까. 오늘은 몸도 안 좋고 발도 헛디디며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감사하게도 햇볕이 잘 드는 로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 룸데 마을 로지에는 방이 여유가 있어서 오늘은 모처럼 나 혼자 방을 쓸 수 있었다. 배가 고프니 우선은 점심을 먹었다. 아저씨께서 준비해오신 김치가 한통 더 남아있어서 그 김치와 함께 먹었다. 역시 꿀맛이었다. 만약 한국에 김치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는 누가 물어봐도 히말라야 트레킹 하며 먹는 김치였다고 말할 것이다.
늦은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하며 아픈 목을 달래기 위해 생강차 한 잔을 마셨다. 오늘 6시간 하드 트레킹으로 인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물티슈로 간단히 몸과 얼굴을 닦고 차분하게 하루를 돌아봤다. 드디어 내일이면 남체(Namche)로 간다. 그곳에 가면 인터넷 데이터 사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보고 싶은 가족들과 연락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 거의 10일 만에 가족들과 연락도 하고 씻을 수도 있다니... 또한 내일부터는 좀 더 속도를 내며 내려갈 예정이었기에 계획보다 루클라(트레킹 출발 지점,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로 가기 위한 비행장이 있는 곳)에 며칠 일찍 도착할 거 같았다.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해지면 비행기 티켓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일정으로 인해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벼워지며 내일이 더욱 기다려졌다.
음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보니 목 상태는 오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거 같았다. 든든하게 저녁식사 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방으로 들어왔다. 며칠 만에 혼자 쓰는 방인지. 따뜻한 물병을 끌어안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만든 로지를 관통하는 강한 바람소리가 들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곳은 침낭 속이었다. 돌아보니 그 어느 때 보다 쉽지 않았던 하루였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던 렌조 라 패스 넘어오는 길. 내려갈수록 쉽고 편해져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11일 차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다. 그 어느 때와 달리 울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또 해낸 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