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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해 Mar 06. 2022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어휘 늘리는 법 」

무한한 세계를 유한한 언어로 사유하기

# 어휘 늘리는 법

# 박일환

# 유유

# 2018년 3월


# 한 줄 추천평 : ★★★☆☆  진짜로 어휘를 늘리고 싶은 사람에게 사다 줄 책은 아니지만, 언어에 대한 사유의 물꼬를 트기엔 좋은 책


# 읽기 쉬는 정도 : ★★★★★ 읽기 매우 쉽다. 












내 글이 지겹다는 건 내 생각이 고여있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문장도 싫고, 반복되는 단어도 싫다. 내가 쓰고 있지만 항상 비슷한 내 글이 지겹다. 글이 비슷하다는 건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멈춰있다는 뜻인 것 같아 더 싫어진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하고 감탄했던 책을 필사해보기도 했지만 꾸준히 하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효과를 보진 못한 듯하다. 이 책의 부제처럼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언어는 제한되어 있다. 제한된 언어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또, '말로 설명할 수 없는'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것만큼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는 무한하다. 언어는 유한한 와중에 내가 쓰는 언어는 더더욱 좁다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
- 언어학자 훔볼트


그 옛날 언어가 없었을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동물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아마도 장면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사유하는 데 필수적이다. 언어가 없다면 어떻게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 획득은 곧 혁명이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언어가 사유를 이끌어 가는 측면이 있다면, 어휘량이 많은 사람이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어휘를 익힌다는 것은 교양을 넓히는 일일 뿐 아니라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일이 된다." 


이 책에선 국어의 '어휘'에 국한되어서 말하지만 이것을 언어로 확장시켜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엔 단순히 외국어가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생각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말이다. 외국어로 된 단어를 번역했을 때 잃게 되는 질서가 있다. 쿠키를 쪼갤 때 부스러기가 떨어져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독일어로 된 철학 단어의 경우 부스러기보다 좀 더 큰 쿠키 조각이 버려지는 느낌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자기 결정」의 저자 피터 비에리는 인간에게 이해의 능력을 부여하는 언어를 강조하는 작가이다. 모국어를 배우고, 언어 법칙에 몰두하고, 언어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며, 선택한 언어의 틀 안에서 나의 목소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중심적 요소라고 본다. 


피터 비에리의「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언어의 신비로움에 관해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말이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지, 어떻게 울거나 웃게 할 수 있는지 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다. 이런 의문은 어른이 된 뒤에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말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치 요술 같지 않은가?" 언어는 사상과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어떤 말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가 어느 정도 결정된다.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인 문법이나 단어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전달하는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중요한 교훈이자 진리가 되어간다. 피터 비에리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을 움직이게도 멈추게도 하고, 울리기도 웃게도 하는 말은 너무나 중요하다. 언어는 나와 타인을 매개하는 거의 유일한 매체이다. 그러한 매체를 오염시키는 것은 연대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이다. 



올레 17코스를 걷다 관덕정을 뒤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나오는 길에 있는 작은 서점. 아주아주 작은 서점이다. 그리고 꽤나 괜찮은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한 게 두껍지 않은 책들이 많다. 처음 보는 출판사인 유유에서 나온 책들이다. 많지 않은 도서들 중에 손이 가는 제목이 보여 서점에 앉아서 보다가 몇 권 사들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어휘 늘리는 법」,「읽고 쓰는 사람의 건강」 모두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손바닥 크기의 가볍고 얇은 책이다. 



이 얇은 책을 보면서 영화 <말모이>도 생각났고, 전라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최애 소설 「태백산맥」도 생각났다. 어릴 때 보던 까만색 표지의 국어사전도 생각나고, 아주 가끔씩 찾아보던 엄청난 크기와 두께의 국어대사전도 떠올랐다. 사전을 뒤적이던 초등학교 시절을 가지고 있는 세대의 거의 끝자락이 아닐까. 


이 책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휘가 길러진다! 하는 일타강사의 <어휘 늘리는 법> 강의가 아니다. 도리어 부제인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에 걸맞은 재미있는 수필에 가깝다. 진짜로 어휘를 늘리고 싶은 사람에게 사다 줄 책은 아니지만, 언어에 대한 사유의 물꼬를 트기엔 좋은 책이다. 



언어 표현의 행위는 수사학이나 문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윤리학의 문제이다.
- 이규호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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