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필요한 과학적 근거
용서하는데도 과학적 근거가 필요한 것 보니 나 T 맞구나.
가까운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다. 나를 가장 사랑해 줄거라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줬을 때 받은 놀람과 충격.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듯 화들짝 놀라 눈물이 찔끔 나는 그 느낌은 수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을 괴롭힌다.
60 중반인 엄마에게 주기적으로 듣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우리 집에서 머무셨는데 엄마는 식사도 잘 챙겨드리고 정성껏 모셨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빠에게 수고했다는 말은커녕 ‘당신이 한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정말 무심했고, 나빴다. 내가 중학생 때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얘기다. 그런데도 그 일로 박힌 가시는 엄마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다 엄마와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꼭 이 이야기가 나온다.
나에게도 마음속 깊이 박힌 가시가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막 태어나서 돌이 될 때까지, 통잠 한 번 자지 않던 예민한 녀석을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나에게 남편이 한 말들이다.
한밤부터 새벽까지 3시간 간격으로 벌떡 일어나 모유수유를 하는 고충에 대해 "넌 그래도 애 낮잠 잘 때 잘 수 있잖아."
모유 수유하는 수고에 대해 "모유수유는 네가 선택한 거지, 내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고마워해야 해?"
아이 데리고 친구 만나러 백화점에 갔다가 칭얼대는 아이 덕분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하소연에 "그러게, 왜 애를 데리고 밖에 나갔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생경하고 공격적인 반응에 허를 찔린 듯 상처받았다. 그 이후 우리 부부관계는 엉망진창이었다. 서로가 더 힘들다는 힘듦 배틀의 시작이었다. 조금 더 나은 날, 더 안 좋은 날도 있었지만 남편에 대한 내 기본 정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되어버렸다. 살면서 왜 좋은 날 없었겠냐만은, 아이가 10살이 된 지금도 이때 일을 용서하지 못했다.
수십 년 지난 일을 얘기하며 어제 일인 듯 분노하는 엄마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다.
용서하지 않으면 결국 고통받는 쪽은 용서하지 못한 자다. 30년 전의 아빠가 잘못한 것이 맞다. 10년 전의 남편이 잘못했던 것 맞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30년을, 10년을 행복하게 지내지 못한다면 고통받는 쪽은 과연 누구일까.
유튜브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봤다. “괴로워하는 것도 습관이다.”라고 하셨다. 그게 내 카르마란다. 문제가 아니다 하면 문제가 아니고, 문제 삼으면 문제이다. 머리로 알겠는데 끝까지 마음 깊은 곳 용서가 어렵다.
용서가 필요한 과학적 이유
쉼 없이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우리 뇌는 능동적 추론을 한다. 빨갛고 동그란 일부만 보고도 ‘저건 사과야’라고 추론한다는 것이다. 이런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추론과정이 없다면, 과부하가 걸린 뇌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할 것이다. 추론의 근거가 되는 것은 각자가 갖고 있는 사전 지식, 경험에 따른 내적 모델이다. 이 내적 모델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하고도 두 사람의 해석이 현저하게 다를 수 있다.
효율적 정보 처리를 위해 뇌는 ‘예측’을 한다.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예측하고, 만약 그 예측이 틀렸다면 이를 수정하여 예측 오류를 줄여나간다. 건강한 뇌라면 여러 감각정보 가운데 무의미한 정보나 오류는 무시하고, 예측 오류에 따라서 사전 믿음을 수정하여 유의미하고 중요한 정보에 가중치를 두며 추론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 바로 각종 정신 질환이다. <내면 소통>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인상 깊게 봤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양한 정신병의 사례들이 과거의 힘든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예측 오류 때문에 상처받고 환각과 망상에 빠지는 경우였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부당했고 잘못된 것이 맞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렇다고 생각하고 예측 오류에 대한 수정을 거부하면 결국 자신이 불행하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예측 오류를 불러올 수 있고, 정신병의 시초가 될 수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자신을 괴롭고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에 계속 빠져 있고, 이를 수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 병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말에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용서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설득당했다. 실제 용서를 하는 것은 아직 마음 수련이 필요하다. 내 카르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