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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Apr 15. 2023

파리 쥐와 한국 쥐

자유 쥐 vs  노예 쥐?!

쥐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나는 유독 쥐를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얼마나 싫어했냐면 - 쥐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떠올랐는데 - 어릴 시절 부산에 살 때, 항구 컨테이너에 짐을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뜨문뜨문 기억이 나지만 아마도 풋사과를 가지러 갔던 것 같다(문득 드는 의문, 컨테이너 안에 음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때 컨테이너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걸 보았고 풋사과와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쥐를 봤다는 이유로 한동안 풋사과를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또 때는 프랑스로 교환학생 갔던 2008년, 낭트에 놀러 갔을 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동안 육지와 강 사이(수평 아니고 수직으로.. 설명할 길이 없네)에 사람은 지나다닐 수 없는 틈이 있었는데 거기에 있던 육중한 쥐, 그 장면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쥐를 보면 그 충격이 너무나도 커서 쥐를 마주한 순간을 대부분을 생생히 기억을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거의 쥐를 볼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쥐 혐오자가 파리에서 사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파리에서 살기 전, 쥐를 보는 일은 특별한 이슈였지만(물론 그전에 파리 여행 가서 쥐를 본 건 제외...) 파리는 명실상부한 자타가 공인하는 쥐 천국이니까. 프랑스의 느려터진 행정도 비록 속으로 욕을 삼키면서 속은 터질지언정 속으로 살다 보니 어느샌가 익숙해졌는데, 쥐는 정말 정말 0.0000001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파리의 모든 게 좋았지만 딱 하나, 쥐 때문에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당연히 쥐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아쉽게도 새로 이사 간 곳은 가보지 못했지만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지금과 같이 샹젤리제 근처에 멋들어진 단독건물을 가지기 전 16구 아파트 지하에 세 들어 살 때였다(이것도 라떼는~이 되어버렸다니). 스타쥬생이지만 야근을 하고 집에 걸어오는 힘든 나를 유일하게 위로해 주는 에펠탑을 보면서 감상에 젖어있는 것도 잠시, 밤이 되자 제세상을 찾은 듯 바글바글하던 쥐떼의 공격을 받아(진짜 나한테 공격한 건 아니고) '퇴근길의 에펠탑'이라는 환상이 와장창 깨진 채 쥐들을 피해 도망치듯 공원을 뛰쳐나갔다. 언제는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었다. 한창 식사를 하는 중 식당에 쥐가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다! 다행히(?) 생쥐였지만 웬 라따뚜이 실사판인지! 당연히 밥맛이 뚝 떨어진 나는 당장이라도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소심해서 항의도 못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짜증만 냈다. 아니, 부엌이야 그렇다 쳐도(물론 부엌도 안되지만 내 눈에는 안 보이니까...) 밥 먹는 홀에 쥐가 돌아다녀? 돈 못 낸다고 항의해야 하나? 내 짜증을 보다 못한 남편이 계산하면서 한 마디 했는데 직원의 말이 가관이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C'est Paris~'. 즉, 여기는 파리야~라는 말. 더 놀라운 건 식당에 쥐가 나오든지 말든지 직원을 포함한 손님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는 거. 그 길로 부부싸움 대판하고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남편이 가출을 하고야 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집 안에는 쥐가 없었다는 것?? (아, 아파트 0층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는 쥐가 출몰해 쓰레기 버리러 갈 때마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갔다. '사람 들어가니까 알아서 숨어~ 제발~!') 




아름다운 파리 야경. 그러나 저곳은 밤이 되면 쥐 천국이 된다(물론 낮에도).
나를 위로해주던 퇴근길의 에펠탑도 잠시, 나는 쥐들로 바글거리는 저 Promenade Marie de Roumanie 공원을 질주해야 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러나 쥐 트라우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낙엽이 굴러가도 가슴이 철렁, 뭔가 갈색 물체가 움직여도 가슴이 철렁, 깜깜한 밤에 한강 공원에서 스윽 움직이는 검은 물체를 봐도 가슴이 철렁(a.k.a 비닐봉지...). 한국은 파리와, 유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 깨끗한 곳이다. 한국의 공원에서 움직이는 갈색 물체는 쥐가 아닌 작고 귀엽고 소중한 참새였다. 소리에 가슴이 철렁이긴 했어도 어딜 가도 쥐의 흔적은 쉽게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렇다고 해서 사람 사는 곳에 당연히 쥐가 없을 리는 만무한 법. 여전히 쥐를 본 그때를 잘 기억하는 나는 한국에서 쥐를 본 두 번의 순간을 잊지 못하는데! 한국에서 만난 두 마리 쥐는 고양이에 버금가는 파리 쥐와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의 아주 작은 생쥐였다. 심지어 한국 쥐는 사람이 어떻게 할까 봐 무서운지 재빨리 수풀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미동도 없는 파리 쥐와는 아주 다르게도. 그걸 보고 나는 파리에 있는 친구한테 이렇게 말했다.

"파리 쥐는 당당한데 한국 거는 소심하네 ㅋㅋㅋ 소심이라기보다 파리 쥐는 주제를 모르고 한국 거는 주제를 안달까 ㅋㅋㅋ"







그래서 난 한시름 놓아버렸다. 한국은 쥐 청정구역이야. 있어도 생쥐만 있네. 이제 바스락거리는 물체를 봐도 쫄지 말자. 아,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시름 놓은 순간,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사람이 땅을 보지 말고 앞을 보고 걸어 다녀야 한다고, 아무 생각 없이 땅을 보고 다니던 그때, 길의 하수구 밑을 본 순간 나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도망쳤다. 하수구 밑에 검은 물체가 있었던 것. 그것도 엄청 크고 퉁퉁한. 이런 표현하기 뭣하지만 정말 기가 막힌 묘사라고 생각한다. 양변기 말고 화변기(쪼그려 앉은 변기를 화변기라고 한다)에 큰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그 형태. 딱 그 모습이었다. 약간의 엉덩이와 꼬리만 보았는데도 하수구가 꽉 차는 듯한 그런 느낌. 아, 다시는 땅을 보고 다니지 않으리라.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파리 쥐는 지 주제 혹은 쥐 주제를 모르고 사람인 줄 아는데 한국 쥐는 그래도 지 주제를 알아서 숨는구나. 적어도 한국 왕쥐는 하수구 안에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왠지 쥐도 나라의 영향을 받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 눈치 안 보는 프랑스, 남 눈치를 많이 보는 한국. 사실 그런 한국의 문화가 싫어서 자유로운(자유롭다고 여겼던) 프랑스로 탈출했던 거지만 지금 보면 어느 게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남 눈치 안 보다 있어서 안 될 자리에 있다가 큰일 날 수도 있다.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고 있다가 잡혀서 결국 죽고 마는 파리 쥐처럼. 아 그런데 또 모르겠다.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했던 누구처럼, 쥐도 생명체니까 살아있을 권리가 있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으니. 어떤 (정신 나간) 프랑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쥐 공포증은 거미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근거 없는 공포증이다. 쥐에게 아름답고 풍성한 꼬리를 주면 우리가 사랑하는 다람쥐가 된다. 이 불쌍하고 불운한 존재들은 우리 사회에서 근절돼야 하는 희생양으로 지목돼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



p.s.

'라따뚜이'하니 생각난 에피소드. (구) 디즈니 마니아는 디즈니에서 개봉한 애니는 다 볼 정도로 디즈니를 사랑했었지만 그 뜨거웠던 디즈니 사랑도 쥐 혐오를 이길 수가 없었던지라 라따뚜이만큼은 보지 않았다. 그러다 비행기에서 볼 게 너무 없어서 무려 기내식을 먹으면서 '라따뚜이'를 봤는데... 아무리 애니여도 라따뚜이 주인공 가족, 친구가 바글거리던 장면에서는 한계치를 넘어 버려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당연히 밥맛도 뚝 떨어졌는데; Chère Mme. Josette Benchetrit, 아줌마 기사 찾아보다가 쥐 사진 나와서 먹고 있던 오렌지 뱉을 뻔했어요. 쥐 공포증은 실제랍니다. 저녁 먹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식욕 떨어뜨려주셔서 감사해요, 마담.




스타쥬할 때. 대략 이런 내용. 자정에 사무실에서 나왔다. 집에 가는 길에 쥐가 바글거린다. 젠장. 이 밤에 나를 위로하는 건 빛나는 에펠탑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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