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토요일과 다르지 않았던 그날. 우리 가족은 잠옷 바람으로 옹기종기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오전 열 시반쯤 되었을까 갑자기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우리 집 근처에 총격 사건이 일어나서 오늘 오후 예정이던 한글학교가 취소된다는 소식이었다.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이니, 창문 근처에 가지 말고 인근 지역에 사는 분들은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다. 호기심에 창문 밖을 내다보는 여섯살 아들을 끌어내리고 당장 뉴스를 켰다. 방송국도 일정 거리 이상 현장에 접근하지 못해 뉴스에서도 SWAT 이라고 써진 경찰밴과 무장경찰들의 모습만 계속 보여줬지만, 매일 지나다니던 건물이라는 건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천천히 걸어도 5분이면 닿을, 단 두블럭 거리. 사거리 한 쪽을 넓게 차지하는 꽤 큰 건물이었다. 반대편에는 The Children's Institute 라는, 중증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특수교육기관이 있었지만 다행히 주말이라 학생과 보호자들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뉴스에 의하면 어떤 백인 남자가 아침 예배 중인 유대교 회당에 들어가 갑자기 총을 발사했다 했다. 범인이 현장에 도착한 SWAT 팀과 대치 중이라고는 했지만, 공범이 동네를 배회하거나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갑자기 총을 들고 우리 집으로 밀고 들어오거나 총을 난사하면 어쩔 것인가. 나중에 사건이 일어난 회당 대각선 건너에 사는 친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스나이퍼들이 들어와 위층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 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고요해 보였지만, 수면 아래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범인이 잡혔다고 했다. 사망자는 무려 열한 명. 두 명의 민간인과 네 명의 경찰이 부상당했다. 사망자들은 모두 예배에 참석 중이던 유대인들이었고, 54세부터 97세까지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았다. 두어시간 후 주지사, 시장, 의원, 경찰총장 등 유력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현장에 찾아와 기자들 앞에 섰다. 범인은 로버트 바워스라는 당시 46세의 백인 남성으로, 우리 동네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동네 출신이었다. 반자동 라이플과 반자동 권총 3개를 들고 20분간 총격을 가한 그는 잡혀가면서도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는 망언을 멈추지 않았다. 범인은 신나치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 극우, 반유대주의자였으며 명백한 유대인 증오범죄였다. 누군가의 잘못된 증오 때문에 죄없는 귀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평온하던 동네에 슬픔이 찾아왔다. 내가 사는 곳은 조용한 곳이다. 백인이 다수인 이 지역에서 그래도 우리 동네는 외국인 비율이 높아 다른 문화, 종교, 외국인에 대한 존중이 높은 편이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 인구도 많았다. 유대교 정통파(orthodox)들이 집 밖으로 열쇠나 유모차, 휠체어 등을 갖고 나갈 수 있도록 허용된 에루브(Eruv)라는 구간 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 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반유대 정서가 고개를 들면서, Jewish Community Center (어린이집부터 학원, 스포츠센터, 어르신 복지관까지 비유대인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복합 문화센터)에 몇 달에 한 번씩 폭발물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작은 동네에만 20개나 있다는 유대교 회당들은 사설 경비를 고용하기 시작했고, 교회 등 다른 종교 단체들에게도 이는 고민의 대상이었다. 이 사건의 범인도, 처음에는 다른 회당을 답사하러 갔다가 사설 경비가 있는 것을 보고 목표물을 바꿨다. 말이 유대인이지, 대를 이어 미국에서 살아온 이들도 많고, 외모만 봐서는 미국인과 구분이 어려운 이들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도 잔인한 사람들이, 피부색과 문화권이 아예 다른 내 아이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낙심했다.
그래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공동체는 이 일로 좌절하기보다는, 손을 내미는 계기로 삼았다. 사건이 있었던 날 저녁, 사람들이 초와 피켓을 들고 동네 가장 중심가에 있는 교회에 모였다. 추모예배이긴 했지만,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힌두교, 무신론자 -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환영받는 자리. 배척하고 미워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랑하고 포용하는 자리.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던 그날,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교회 밖 사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산 아래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공동체에 분열과 증오가 들어올 자리가 없기를, 각자가 믿는 신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하고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뉴스를 지켜보며, 잠시나마 이방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위협을 느꼈던 마음에 조금 온기가 돌았다.
다음날부터 사건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방송국 카메라와 1인 미디어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 자리는 이웃들의 진심이 메웠다. 다윗의 별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 앞에, 그들을 알았던 사람들과 몰랐던 사람들이 편지와 그림과 꽃다발을 두고 갔다. 지역의 교회, 성당, 이슬람 공동체들이 슬픔에 빠진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앞다투어 모금을 진행하고, 위로를 전했다. 지금도 비어있는 이 건물 앞에는, 인근의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사랑의 메세지를 담은 그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옆집 짐 할아버지가 집 앞에 새로운 푯말을 세웠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든, 나는 당신이 내 이웃이라 기쁘다"는 구절을 스페인어, 영어, 아랍어로 적은 푯말이었다. 동네 많은 집들 앞에 비슷한 팻말이 세워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바로 옆집은 "우리는 우리 유대인 이웃을 사랑한다"는 배너를 세웠다.
작은 도시인만큼 희생자들을 직접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50대 중반인 친구 앤디는 가장 젊은 사망자인 로젠탈 형제를 어린 시절부터 알았다. 그들의 장례식에 다녀오다 우연히 마주친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평생 이 동네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증오가 판을 친 적이 없다"며. 내가 다니는 동물병원의 간호사인 앤 또한, 친구가 어머니를 잃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전에는 사는 데 바빠서 혹은 너무 달라서 무관심했던 이웃의 삶 앞에서, 사람들은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주고 받았다.
총기사고는 미국의 심각한 문제고 총기규제로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하지만 사랑은 증오보다 힘이 세면 좋겠다. 증오에 증오로 대항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차례차례 희생될 뿐이다. 비극 앞에서 벽을 세우기보다는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주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