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비
ㅡ어쩌다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면경 앞에서 자신과 마주하던 ㅡ
토산품 가계에서 참빗을 보면 엄마의 빗질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농번기가 끝나고 한가한 날이면 어머니는 머리를 정갈하게 빗으셨다. 얼레빗으로 가볍게 빗질을 한 다음 살이 촘촘한 대나무 참빗을 사용했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머리카락을 가슴 앞으로 내려 빗질을 하는 모습은 여느 여인의 모습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머릿결이 골라지면 참빗 한쪽 끝을 세워 이마에서 머리 정 중앙을 따라 가르마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경대나 가르마를 타는 빗치개도 없었다. 머리를 빗을 때는 벽에 걸어 두었던 면경을 내려놓고 정교하게 좌우대칭을 맞추어 가르마를 탔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당신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던 삶의 무게를 거울 안에서 보았던 것일까. 빗질하던 손을 내리고 무심한 세월 속의 당신을 바라보며 쓸쓸한 미소를 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상하다.
마지막 빗질은 왼손으로 뒷머리를 잡고 머리카락이 뜨지 않도록 참빗을 꼭 눌러 빗은 다음 끈으로 묶고 똬리를 틀었다. 때로는 묶지 않은 채 뒷머리를 팽팽하게 당겨 동그랗게 말아 비녀를 질렀다. 비녀 하나로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는 처마 밑에 매달아 두었던 작은 병을 내렸다. 언제 사용했는지 모를 병에는 먼지가 눌어붙어 있었다. 기름때를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병 속의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한 두 방울 떨어뜨렸다. 거친 손바닥의 금을 타고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얼른 양손 바닥에 부빈 다음 앞머리에서 뒤쪽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어느새 윤기가 반지르르했다. 손바닥의 기름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다 스며들 때까지 몇 번을 쓸었다. 동백기름까지 바르는 어머니의 머리 손질은 농한기가 아니면 볼 수가 없었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솔 갈비처럼 촘촘한 빗살 사이에 흔적이 남았다. 긴 머리카락이 제법 빠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참빗에 끼인 머리카락을 한올 두올 손가락에 말아 풀리지 않게 끝을 감친 후 매듭을 지었다.
모아둔 머리카락은 처마 밑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다. ‘달비 삽니다. 채권 삽니다.’ 골목 끝에서부터 달비 장수의 길게 뽑아 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모아 두었던 머리카락을 들고나갔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에도 화장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언제나 얇은 수건을 쓰고 있었다. 보통 때는 사각 수건을 반으로 접어 이마에서 귀 위쪽을 지나 머리 뒤에서 묶었고 겨울에는 머리 위쪽에서 양쪽 볼을 지나 턱 아래에 묶었다.
추운 겨울에도 어머니는 맨 먼저 일어났다. 부엌에 나가 밤새 차가워진 집안의 냉기를 가시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침밥을 준비했다. 밥상을 치우기가 바쁘게 들에 나가지 않으면 가마니를 짰으니 머리를 곱게 빗거나 화장할 일이 없었다. 어쩌다 동동구루미를 바를 때가 있었지만 갈라진 손가락에 후끈거리는 연고를 바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게는 더 익숙했다,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도 흰머리가 많았다.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이 싫었는지 화장은 안 해도 염색만은 자주 했다. 염색을 하고 나면 며칠간 눈이 퉁퉁 붓고 충혈이 되었다. 옻을 심하게 타는 모습이 안타까워 염색을 만류했지만 어머니의 고집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수출 품목은 가발이었다. 재료의 부족으로 가발 조합이 여학생들의 머리를 7센티만 더 기르도록 상공부에 건의했다가 학부형들로부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머리카락도 신체 일부라고 생각했던 유교적 사고가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가발 재료로 쓰기 위해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길러달라고 요청했으니 털을 이용하는 앙골라 토끼와 뭐가 다르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소위 말하는 ‘앙골라 소동’이었다. 댕기 머리 달비는 쌀 한 가마니 값이 되었다고 하니 가발을 위한 삭발 모정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돼지 털을 섞어 가발을 만들다가 업주가 구속되기도 한 웃지 못할 사건들 속에 달비 장수들이 골목골목을 다녔다.
달비! 참 고운 말이다, 이제는 달비 장수를 볼 수가 없다. 대나무로 촘촘하게 만든 참빗을 찾기도 쉽지 않다. 동백기름을 바르는 사람도 없고 어머니의 정겨운 빗질도 볼 수 없다. 잊혀진 기억들을 떠올리면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듯 가까이 있다.
평생을 시골 아낙으로 살면서 고운 화장 한번 못한 어머니, 어쩌다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면경 앞에서 자신과 마주하던 어머니,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일만 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