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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an 29. 2024

동유럽의 숨겨둔 진주

2024년 1월 17일(수)(14일째)-브라티슬라바

어제처럼 기차로 시작하는 당일치기 여행이기 때문에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숙소가 중앙역과 가까워서 이런 이동하기에는 매우 편리했다. 평일 아침부터 국경을 넘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지 슬로바키아에 가는 플랫폼은 한산했다. 어제 잘츠부르크는 북적였는데 브라티슬라바는 비즈니스나 여행 등 교류가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가니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국경선이 무의미한 EU에 속한 이웃 나라이고 얼마 안 되는 이동 거리지만, 나라가 달라지니 분위기도 확실히 달라졌다. 인구가 50만이 채 안된다고 하니 중앙역도 그렇게 크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첫인상으로 받았다.


국경 넘는 중
낯선 나라에 도착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오스트리아 빈과 트윈 수도로 유명한 슬로바키아의 수도로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처럼 도나우강을 끼고 있으며 인구는 약 43만 명으로 그리 크지는 않다. 수도 치고는 국경 인근에 있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2개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수도라는 이색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5세기 초부터 켈트족이 살고 있었고, 1세기부터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5세기부터 슬라브족이 와서 살기 시작했다. 헝가리의 마차시 1세 국왕이 다스릴 때 큰 발전을 이루었다. 1536년부터 1783년까지 헝가리 왕국의 수도 역할을 했어서 헝가리 국왕 11명의 대관식이 이곳에 있는 성 마르틴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체코 슬로바키아의 지배를 받다가 두 나라가 분리되면서 슬로바키아의 수도가 되었다. 런데 오랜 역사치고는 도시에 남아 있는 유적의 규모를 보았을 때는 그리 크지 않아서 조금 의아하긴 했다.


브라티슬라바의 첫 인상


옛 공산주의 시절 분위기가 나는 거리를 걸어가니 보이는 그리살코비흐 궁전(Prezidentský palác)은 현재 슬로바키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궁전은 1760년에 지어졌으며,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다.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조각상과 분수가 있다. 18세기부터 오스트리아의 귀족 가문들이 소유하고 있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붕괴 이후 1918년부터 1993년까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그 사이 이 나라는 소련의 영향력 아래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벨벳 혁명 이후 민주화가 되었다가 1992년 12월 31일 슬로바키아와 체코가 분리된 이후에는 슬로바키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었다.


격동의 근현대사가 흘러간 대통령궁


이 도시에는 이색적인 동상이 거리 곳곳에 많아서 우리는 걸어 다니며 그런 동상을 찾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가장 먼저 찾은 스케이터 소녀 우체통(Skater Gril's Mailbox)은 2017년에 설치되었으며, 브라티슬라바의 스케이터 소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체통은 스케이터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스케이터 소녀에게 전달되었다.


동상 찾는 재미


트램이 다니는 큰 도로를 건너니 이정표 같은 미하엘 문이 우리를 맞이했다. 미하엘 문(Michalská brána)은 중세 요새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시 문으로, 1300년경에 지어졌다. 현재의 모습은 1758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것이었다. 6층 높이의 석조 탑으로, 높이는 51m이며 탑의 꼭대기에는 성 미카엘 용을 밟고 서 있는 조각상이 있다. 성 미카엘이 있는 이유는 악마를 물리치는 천사로, 브라티슬라바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이었다. 미하엘 문을 지나서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 편안한 헝가리의 성 스테판 성당에서 잠시 기도드리고 나왔다.


도시의 등대
소박해서 좋았던 성당


그다음 간 성 마르틴 대성당(Dóm sv. Martina)은 13세기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서 1245년에 지어졌으며, 1563년부터 1830년까지는 헝가리 왕국의 왕관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이 오스트리아 영토였을 때는 대관식이 열렸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미사 중이어서 제단까지 갈 수는 없었고 안에서 살펴보는 정도에 그쳤다. 성에 올라가기 전 잠시 쉬기 위해서 성당 옆에 있는 카페에 가서 라테 마키아토, 도피오, 핫 초콜릿과 체리 조각 케이크를 주문해서 여유를 즐겼다. 슬로바키아 할머니들 모임이 있는지 꽤 왁자지껄했지만 그 분위기도 재미있었다.


슬로바키아만의 매력을 가진 성당


우리는 카페를 나와 브라티슬라바성(Bratislavský hrad)으로 걸어 올라갔다. 가는 길에 웬 거대한 마녀 동상이 있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도나우강으로 혹시 마녀 사형을 해서 소녀 혹은 여성들을 던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높지 않아서 10분이면 다 올라갔다. 정갈하면서 소박해 보이는 이 성은 바로크 양식의 성으로 서기 907년에 지어졌으며, 1811년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1950년대에 복원되었다. 느낌이 왠지 으스스해 보이는 성에는 국립박물관이 있으며, 슬로바키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올라와서 무엇보다 압권은 성에서 브라티슬라바 시내의 아름다운 전망과 도나우강의 푸른 물결을 연결하는 SNP다리(UFO)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도히 흘러가는 도나우강은 이 나라가 내륙국가가 아니라 항구가 있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무엇을 하는 마녀인가
브라타슬라바 시가지
동유럽의 또 다른 매력을 찾은 곳


한참 성에서 브라티슬라바 시가지를 바라보고 터벅터벅 내려왔다. 열심히 성까지 올라오고 내려간 아이를 위해 시내로 와서 젤라토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가게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후 네 곳을 더 찾아갔으나 다 영업을 안 해서 하늘이 무너질 듯한 상황이라 아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막시밀리아노바 폰타나 광장에 이색적인 동상이 많아서 사진을 찍으며 작은 재미를 찾았다. 먼저 맨홀 아저씨 동상(Čumil)은 1997년 슬로바키아 조각가 빅토르 훌리크가 제작했으며, 맨홀 입구에 몸을 걸치고 쉬면서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하수도 작업 노동자의 이색적인 청동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추밀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뭔가 의미 있는 것 같은데 별다른 의미가 없는 동상이라고 하니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곧 의미 같았다.



다음으로 유쾌한 숀 나치(Schöne Náci)가 등장해서 모자 사이로 얼굴을 넣으며 사진을 남겼다. 그는 이곳 거리에서 40년 가까이 지내며 늘 웃으며 사람을 돕던 실존 인물로서 브라티슬라바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캐릭터였다. 여타의 다른 동상과는 다르게 실제로 살았던 사람을 거리의 동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군인(Napoleon Army Soldier)은 벤치 뒤에 있는 동상인데, 나폴레옹 시절의 군복을 입은 청동상이 걸쳐있는 의자였다.  별명은 엿듣는 사람이라더니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듯했다.


동상도 한 명의 시민


광장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슬로바키아 식당을 찾았다. 나름 유명한 식당이어서 기대를 하고 주문했는데 유명한 마늘 수프는 나에겐 느끼하며 밍밍한 사골 맛이 났고, 추천받은 돼지고기 요리는 기름지고 맛이 끌리지 않아서 아쉬움이 있었다. 여행에서 처음으로 많이 남긴 점심을 먹고 나서 마지막 일정이라 할 수 있는 파란 성당을 찾아 나섰다. 브라티슬라바의 파란 성당(Farský kostol sv. Alžbety)은 1900년대 초 아르누보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연한 푸른색이 인상적인 교회로서, 성 엘리자벳 성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성 엘리자벳은 헝가리의 왕비이자 로마 가톨릭의 성인으로 유명했다. 내부와 외부 모두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데, 내부는 아르누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외부는 연한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포근한 색감과 건축 느낌이어서 오랫동안 보고 싶은 색다른 성당이 있다.


동화 속 성당


그러고 나서 아이가 한국 라면을 너무 먹고 싶어 해서 대형 마트를 두 군데 찾았지만 발견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빈 손으로 나와서 허탈했지만, 어제부터 내 신발 밑창이 찢어져 눈을 밟으면 양말이 젖을 정도로 구멍이 생기고 있어서 신발을 사러 의류 매장을 찾았다. 마침 세일하는 신발이 있어서 운 좋게도 45유로 신발을 13유로로 구입할 수 있었다. 15년 전에 사서 여행 다닐 때 신었던 신발에게 안녕을 고하고 새 신발을 신게 되니 뭔가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기분이 느껴졌다.


15년 동안 고마웠던 신발과 작별


저녁 식사는 미리 찾아놓은 슬로바키아 식당으로 갔다. 삐꺽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는 인테리어에 한쪽 벽면에 쓰인 스름트 야노시코바(Jánošík's Death)는 슬로바키아의 시인 야네스 보토가 1862년에 쓴 서사시로서 이 작품은 슬로바키아의 민중 영웅인 야노시코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야노시코는 18세기 후반에 슬로바키아의 트렌친 지방에서 태어난 실존 인물로 부패한 지주들과 헝가리 귀족들의 착취에 맞서 싸우는 산적대의 두목이었다. 야노시코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체포되어 처형당했던 인물로 우리의 임꺽정과 닮아있었다. 이것만 봐도 진짜 슬로바키아 식당에 온 듯해서 기대가 되었다.


진짜 슬로바키아 식당


우리는 염소젖으로 만든 감자 뇨끼, 염소치즈 만두, 마늘 수프를 주문하고 음료는 로컬 하우스 맥주, 라들러,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여기서는 다르게 불릴 요리겠지만 편의상 뇨끼라고 부른 요리는 씹는 식감이 너무 좋아서 맛있었고, 만두 역시 염소젖 특유의 쿰쿰함을 잘 살렸다. 종업원이 괜찮냐고 물어볼 때 음식이 맛있다며 연신 칭찬했다. 마늘 수프도 점심때 먹은 것보다 간이 맞고 진했다. 즐겁게 먹고 흑맥주와 코폴라를 추가로 시켰고, 아이는 누텔라 만두를 디저트로 주문해서 먹었다. 쫀득한 반죽 안에 꾸덕한 누텔라가 나오는데 신기했다. 여기 식사가 마음에 들어서 이 식당에서 파는 15유로짜리 티셔츠도 구입했다. 물가가 싸서 이렇게 하고도 61유로밖에 안 나왔다. 어제 잘츠부르크에서 80유로가 넘게 나온 걸 생각하면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슬로바키아 최고의 식당


중앙역까지 걸어오면서 생각하건대 이 도시가 친절하고 동유럽 감성에 물가도 저렴하지만, 우리 같은 자유 여행객을 불러 모으기엔 유명한 역사 문화 지역이나 체험, 자연경관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쪽으로는 덜 알려지고 개발된 듯해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여행객 중 여유 시간이 있지 않은 이상 방문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 내서 이렇게 방문한다면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나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를 경험하고 다시 우리는 야간열차를 타고 잠자리가 있는 빈으로 갔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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