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무거웠지만 알람 소리에 일어나 캐리어에 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아침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하는 기차를 타야 해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나와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던 빈 숙소의 문을 닫고 나오니 아쉬움 가득 남겨두고 나온 듯했다. 아내가 숙소 맞은편에 있는 작은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를 사자고 해서 사서 빈 중앙역으로 걸어갔다. 즐거운 여행 되라는 카페 주인에게 오늘 빈을 떠난다고 하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9번 플랫폼으로 가서 기다리니 9시 40분 출발하는 부다페스트행 열차가 들어왔다. 한 시간쯤 가니 국경에 도착했고 검표원이 헝가리 사람으로 바뀌어 다시 표 검사를 하는데 이번 여행 처음으로 여권 확인까지 받았다. 대개 표만 확인하고 넘어갔기에 조금 낯설었다. 평원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다시 한 시간쯤 달려서 우리 여행의 마지막 도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켈레티(Budapest-Keleti)역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눈이 내리길래 날씨를 확인했더니 일단 오후에는 그친다고는 나와있는데, 눈 내리는 부다페스트도 운치 있어 보였다.
마지막 여행지 도착
부다페스트(Budapest)는 헝가리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국가보다 수도가 유명한 경우였다. 다뉴브강이 가로지르는 것으로 유명하고, 야경 또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라는 두 도시가 합쳐진 것인데 부다는 지배층이 거주했고, 페스트는 서민층이 거주한 곳이라고 했다.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900년경 마자르족이 침공해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나중에 13세기 중반 몽골 제국 바투의 침공을 받았고, 1541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다. 이후 1686년 오스트리아에 점령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까지 이어지다가 1873년 부다와 페스트가 통합되어 현재의 부다페스트가 탄생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가 패망하자 헝가리 왕국은 독립하게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부다페스트 공방전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유대인들도 많은 학살을 당했다. 현재 인구는 180만 명 정도로 유럽에서는 꽤 큰 대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은 야경으로 인해 우리에게 많이 유명해졌는데 다뉴브(Danube)는 영어로 독일어로는 도나우(Donau)라고 불렀다. 우리가 빈, 브라티슬라바에서 마주쳤던 강이 여기에도 걸쳐있었다. 독일 남쪽으로 발원해서 루마니아 동쪽을 가로질러 흑해로 흘러가는 이 강은 길이 2,860km로서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었다. 영어권 국가를 지나가지 않지만 워낙 많은 나라를 지나가서 편의상 다뉴브라는 명칭을 많이 썼다. 헝가리에서는 두너(Duna)강으로 불렀다.
페스트 지역에 있는 켈레티역에서 택시를 타고 부다 지역에 있는 호텔로 가려했지만 보이지 않아서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영국 런던, 터키 이스탄불 다음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통된 지하철로서 1896년 5월 2일 헝가리 왕국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통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특이한 점은 유럽 대륙 최초의 지하철이라는 점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1호선은 총연장 4.4km, 11개 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페슈트 지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노선이었으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었다. 우리가 탄 것은 1970년 옛 소련 시절에 만든 2호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땅 속 깊숙이 들어가는 게 이색적이었다. 개찰구도 뭔가 가로막는 게 없어서 특이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때 들어가기 전에 티켓 펀칭을 해야 했다. 우리는 땅 밑으로 부다페스트 도심을 가로질러서 부다 지역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특이한 개찰구
호텔은 부다페스트 하면 떠오르는 국회의사당 야경을 바로 볼 수 있는 최적의 위치해 있어서 풍경 맛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은 우리에게 다뉴브강의 경치를 보여줄 생각이 없는지 함박눈처럼 눈이 계속 내려 확인해 보니 2시까지는 이렇게 내리는 듯해서 일단 짐을 맡기고 며칠째 먹었던 빵 대신에 쌀을 먹고 싶어 한 아내의 뜻에 따라 근처 터키 음식점에 와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바로 근처에 있는 실내 시장의 2층 카페에 와서 커피 한 잔 하며 눈이 그친 후 멋진 풍경을 선사해 줄 시간을 기다렸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가 체크 인을 하고 오늘 둘러볼 부다 지역 탐방을 시작했다.
호텔을 나와 지도를 따라서 조금 올라가니 여행의 시작점인 비엔나 게이트가 나왔다. 비엔나 게이트(Bécsi kapu)는 부다 언덕의 북쪽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인 헝가리 대로의 시작점이었다. 우리도 여기서 우리의 부다페스트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곳은 원래 13세기에 지어졌지만,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1936년에 헝가리의 수도가 부다페스트로 복원된 지 250주년을 기념하여 비엔나 게이트가 재건되었다. 게이트의 정면에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이 있고, 양쪽에는 헝가리의 국기와 성 게오르기우스의 조각상이 있다.
헝가리 여행 시작
이곳을 지나 시내를 바라보기 위해 어부의 요새 쪽으로 길을 걸었다.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이미 야경을 보기 위해 일찍부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어부의 요새(Halászbástya)는 1899년에서 1905년에 지어진 신 로마네스크와 신 고딕 양식이 절충된 건물로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이 부근에 많이 살았던 다뉴브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것에서 이름의 유래가 있다. 7개의 탑은 헝가리 건국 당시 마자르 7 부족을 상징했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전경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유유히 흐르는 다뉴브강의 폭은 다른 유럽의 대도시를 흐르는 강들보다 넓어서 진짜 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새 같지 않은 어부의 요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에 있는 마차시 성당(Mátyás templom)의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성당 남쪽 탑에 마차시 1세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어서 이렇게 불렸다. 1269년 벨러 4세에 의해 지어졌고 15세기 마치시 1세에 의해 첨탑이 증축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를 지배했을 때는 모스크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기도를 하던 이슬람교도의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서 전의를 상실했고,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부다 점령이 끝났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 성당에 명성을 더했다.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열린 장소로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해방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가 후에 고딕 양식으로 다시 개축되었다. 역사적 내용보다는 지붕 건축 재료가 나의 흥미를 끌어서 찾아보니, 지붕 재료가 헝가리에서 유명한 졸너이(Zsolnay) 타일이라서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데 부다페스트에 있는 성당들은 이런 타일로 마감을 한 성당이 많았다. 아직도 졸너이 기업은 도자기, 타일 등을 제조하면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지붕에 감탄한 성당
우리는 내려가서 부다성 쪽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세체니 다리(Széchenyi Lánchíd)는 다른 도시였던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로 상징성이 있는 다리였다.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이 생각해서 만들어진 다리로 영국 런던의 템스강 런던브리지를 건설한 영국인 윌리엄 클라크와 애덤 클라크가 설계했다. 1945년 독일에 의해 폭파되었다가 1949년에 다시 개통되었다. 세체니 이슈트반은 헝가리의 자유주의 정치가로 1848년 초대 헝가리 내각의 교통장관이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비판하는 글을 출판한 인물이었다.
멀리 보이는 세체니 다리
부다성(Budai Vár)은 과거 왕궁이라 불렀던 곳으로 푸니쿨라 옆 세체니 다리와 이어져있으며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했다. 1242년 벨러 4세가 몽골의 침략에서 피신하여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였고, 14세기 들어서 라요슈 1세가 고딕 양식 왕궁으로 증축했다. 그 후 번영하다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후에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 18세기에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으로 203개의 방을 갖춘 거대한 궁이 되었다가 19세기 후반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904년에 다시 지었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파괴되고,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80년에 재건한 것으로 오랜 역사의 중심지였던 만큼 다사다난했던 주름이 있는 성이었다.
또 다른 야경 맛집 다뉴브강을 배경으로 아내와 아이
다시 우리는 어부의 요새까지 온 다음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객들과 도나우강을 품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내려와서 마트에 들러 헝가리 특산품인 토카이 와인을 7병이나 샀다. 토카이 와인(Tokaji Aszú)은 헝가리 토카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으로서 1650년 세계 최초로 귀부 포도에서 와인을 양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37년에는 공적인 등급제를 실시하여, 이 지방의 뛰어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밭에 제1급부터 제3급까지 등급을 매기고 있다. 1703년에는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선물로 보내지며, '와인의 왕'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흔히 토카이 와인으로 아는 귀부 와인, 아쑤(Aszú)라는 용어는 잔류 당분 120g/L 이상(푸토뇨쉬 5)일 때만 쓸 수 있어서 토카이 와인이라고 적혀 있어서 다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구매할 때 가격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잘 골라야 했다. 푸토뇨쉬 5도 상당히 달콤한데 6은 더 달고, 진액이라 할 수 있는 에센시아(Eszencia)는 잔류당분 450g/L 이상으로 꿀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야경
포도는 주로 푸르민트(Furmint) 품종으로 양조되며 이는 산도가 높고 향이 풍부한 품종으로 토카이 와인 특유의 드라이한 맛과 복합적인 향을 만들어냈다. 그 외에도 하르스레벨루(Harslevelu), 사싸르(Szamorodni) 등의 품종도 사용되기도 했다. 흔히 귀부 포도라고 많이 말하는데 귀부화란 포도가 곰팡이에 감염되어 당도가 높아지고 향이 풍부해지는 현상을 말했다. 토카이 지방은 헝가리 북동부에 위치한 헝가리 알프스 산맥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후 조건이 귀부화에 적합하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귀부 포도 재배 지역 중 하나로 손꼽혔다. 헝가리 정부는 토카이 와인의 품질을 보호하기 위해 1993년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리적 표시 보호(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PDO)를 획득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토카이 와인이라는 품종이 있고, 하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세세하게 나뉘어 있어서 공부를 벼락치기로 하고서 구입을 했다.
많은 종류의 토카이 와인
저녁 식사는 호텔 추천으로 간 헝가리 전통 음식 레스토랑인데 호텔 근처에 위치해 마트에서 산 것들을 객실에 두고 금방 갈 수 있었다. 유명한 고급 식당인데 손님은 우리뿐이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메뉴를 보고 오리 요리가 주력인 듯해서 일단 크리스피 오리 다리 구이, 헝가리안 굴라쉬, 오리 가슴살 펜네 파스타, 로제와 화이트 하우스 와인, 파인애플 주스를 주문했다. 손님 없는 것보다 더 당황한 건 우리가 주문한 헝가리안 굴라쉬가 율무 같은 곡물에 굴라쉬를 비벼놓은 것이라서 수프를 생각한 우리 생각과 너무 달랐다는 것이었다. 주문 전에 종업원에게 메뉴에 있는 수프와 헝가리안 굴라쉬의 차이점을 물어봤는데 단순히 수프와 메인 식사라고만 설명해 줘서 잘 몰랐던 우리는 사람이 세 명이라 메인 식사로 주문했다. 우린 메인 식사가 수프와 빵이나 샐러드 같은 게 함께 나오는 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조리 방식이 다르거나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종업원이 설명해 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게 없이 주문을 해서 굉장히 아쉬웠다. 우리가 이렇게 나오는 거냐고 수프에 대해서 물으니 수프를 다시 주문할 거냐고 물어봐서 기분이 살짝 언짢았다. 어쨌든 이런 음식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전통 음식이라는 점에서 점수는 높지만 요리 맛으로 볼 땐 평균정도였다. 잠시 두 테이블이 더 차서 우리까지 세 테이블이 되었고, 저녁 7시부터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공연이 있어서 입보다는 귀가 즐거웠던 식사였다. 그 외에 아쉬웠던 점은 그렇게 메뉴 설명을 해 놓고서는 원래 비싼 가격에 팁이 15%나 영수증에 강제 포함되어 있었으며, 카드 결제가 안되고 현금 결제만 이야기해서 결국 현금 결제를 하게 만들었다. 맛도 맛이지만 세련되지 못한 종업원의 말투나 서비스 응대가 별로였기 때문에 헝가리의 이미지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나와서는 다시 마트에 들러서 내일 먹을 간단한 아침 식사할 것을 사서 호텔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까 저녁 식사의 아쉬운 점을 달래줄 일본 컵라면을 까서 호호 불어 먹으며 내일 온천 준비를 했다. 솔직히 컵라면도 맛없어서 먹구름에서 비가 내릴 지경이었다. 유일한 위안은 객실 창밖으로 국회의사당이 반짝이고 있는 야경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이었다.
호텔 들어가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