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는 간단히 하고 온천 갈 준비를 한 다음 호텔에서 나온 우리는 도나우강을 쭉 따라가는 트램을 타고겔레르트 온천으로 향했다. 다뉴브강변을 쭉 따라서 가는 트램에서 본 부다페스트의 아침은 푸른색을 띠었으며 평온해 보였다. 가는 길에 보인 치타델라(Citadella)는 겔레르트 언덕 정상에 위치한 요새로 치타델라의 뜻이 성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 강제 노역자들을 데리고 오스트리아가 지어서 1854년에 완성했다.우리가 갈 겔레르트 온천 가는 길에 루다스 온천(Rudas Gyógyfürdő és Uszoda)도 보였다. 약효가 있다고 알려진 이 온천은 오스만 통치 기간인 1572년에 설립되었다.부다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겔레르트 언덕과 다뉴브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했다. 온천의 내부는 오스만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으며, 돔 천장과 아치형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푸른 다뉴브 앞에서
푸른 하늘 물결 아래 도착한 겔레르트 온천(Gellért Gyógyfürdő és Uszoda)은 1918년에 개장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르누보 양식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과거에는 유럽 왕족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아름다운 건물로 인해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었으며 겔레르트 호텔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질이 다른 온천들보다 깨끗하다고 알려져 있다. 평범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로 들어왔을 때에는 로마 제국 시대 온천장이 실제로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겔레르트 온천 도착
입구에 들어섰을 때 고풍스러운 내부의 모습에 일단 감탄했지만, 다소 오래된 듯한 느낌으로 세월이 보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옷을 환복 하는 락커룸으로 갔는데 남녀 혼용이어서 처음에 당황스러웠다. 같이 쓰는데 옷 갈아입는 칸막이는 따로 있어가지고 탈의실처럼 있기는 하지만, 이 같은 공간에서 환복 하는 시스템은 처음이라 아시아 사람들은 당황할 듯했다. 이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니 하는 것이겠지만 독특하긴 했다. 수영복으로 차려입은 우리는 먼저 노천탕으로 갔다. 시원한 공기로 호흡하며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니 여행의 노고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이는 물개처럼 엄청 좋아했다. 아침에 조금 피곤해하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무척 쌩쌩했다. 실내로 들어가서는 실내 수영장에서 놀고, 36도와 40도 탕에 들어가서 몸을 녹였다. 우리나라 온천처럼 땀을 쫙 빼는 건 아니어서 순한 맛으로 즐긴 것 같았다.
겔레르트 온천 내부
환상 속의 수영장
점심시간이 되자 온천에서 나와서 개운한 몸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먼저 겔레르트 온천 길 건너에 있는 겔레르트 언덕 동굴 성당(Gellérthegyi Barlang)으로 갔는데 언덕의 화강암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굴의 길이는 약 1,200m에 달하며, 동굴 안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이슈트반 왕의 동상이 있다. 내려와서는 고풍스러운 철제 다리인 초록다리로 다뉴브강을 건넜다. 자유의 초록다리(Szabadság híd)는 1896년 헝가리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는데, 다리의 길이는 375m, 너비는 20m이며, 다리의 양쪽에는 두 개의 거대한 초록색 조각상이 있다. 왼쪽에는 헝가리의 수호신인 성 게오르기우스가 악마를 물리치는 모습, 오른쪽에는 헝가리의 영웅인 바토니 이슈트반이 헝가리 왕관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동굴 성당을 지나 초록다리를 건너기
생각보다 긴 다뉴브강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곳을 지나갔을 수많은 옛사람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페스트 지역으로 넘어와서 우리가 점심 식사 할 곳은 그레이트 마켓 홀이라는 실내 시장이었다. 그레이트 마켓 홀(Nagy Vásárcsarnok)은 1897년에 지어졌으며, 헝가리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었다. 시장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하 1층에는 정육점, 수산시장, 채소 시장 등이 있고, 지상 1층에는 과일, 꽃, 기념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2층은 종류별로 다양한 스트리트 푸드들이 있는데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어서 시장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먹었다. 굴라쉬 수프와 닭다리 구이 등을 시켰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했던 굴라쉬 수프를 먹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맛은 야채 참치 통조림을 넣어 끓인 김치찌개였다. 그냥 참치캔이 아니고 야채 참치캔으로 넣어 끓은 것 같은 건더기와 비주얼이라서 꼭 그 생각이 났다. 식사 후에 잠깐 구경을 하는데 아내가 아까 먹은 굴라쉬때문인지 배가 아프다고 했다.
시장 구경
시장에서 나와서 우리는 트램을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재정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다뉴브강변을 쭉 따라서 세체니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역으로 다시 갔다. 우리를 여기가 부다페스트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국회의사당(Országház)은 코슈트 러요시 광장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국회의사당으로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건물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시절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당시 제국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1896년에 국회가 열렸고 건물 완성은 1902년에 이루어졌다. 건물 길이는 268m이며 첨탑 높이는 96m에 달했다. 이는 마자르 민족이 유럽에 정착한 896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10만 명 정도의 노동자가 건설 현장에 동원되었고, 4천만 개의 벽돌, 50만 개의 보석, 40kg의 순금이 짓는데 들어갔다.
세체니 다리 건너기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여행객과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지나는 세체니 다리(Széchenyi Lánchíd)를 건너서 강변을 따라 쭉 걸었더니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Cipők a Duna-parton)이 보였다. 이 기념물은 2005년 4월 16일,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기념물은 다뉴브강변에 있는 60켤레의 실제 크기의 신발로 이루어져 있다. 신발은 다양한 스타일과 크기로 되어 있으며, 남자, 여자, 아이 신발이 모두 있었다. 신발은 강변에 고정되어 있으며, 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기념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고, 인종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아이 신발을 볼 땐 무언가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잊지 말자
우리는 페스트 지역 안으로 들어갔는데 부다 지역과는 다르게 평지가 많아서 걷기 편했다. 가는 길에 본 경찰 동상은 풍채 있는 아저씨였고, 도착한 엘리자베트광장(Erzsébet Tér)의 이름은 우리가 아는 시시, 헝가리의 엘리자베트 왕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광장에 있는 분수보다 눈길을 끌은 것은 거대한 대관람차였는데 도는 속도가 빨라서 타고 있는 사람이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이어서 조금 더 걸으니 거대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페스트 지역 걷기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István Bazilika)은 가톨릭을 헝가리에 전파한 업적으로 성인 추대된 성 이슈트반 1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으로 5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내부 기둥의 두께가 상당한데 그것은 기둥이 지탱하는 아치가 많아서 그렇다. 성당의 탑은 96m로서 국회의사당과 같은데 이는 헝가리 건국의 해인 896년의 96 숫자를 의미했다. 성당 안에는 그의 오른손이 유리관 안에 보존되어 있다.이때부터 아이는 걷는걸 조금 힘들어했는데 빨리 카페 가고 싶다는 말을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는 더 걸어야 해서 힘을 북돋우며 걷게 했다.
날은 좋지만 공기는 차갑다
가는 길에 보인 도하니 거리 교회(Dohány utcai Zsinagóga) 또는 부다페스트 대교당은 부다페스트에 있는 유명한 시나고그로서 유럽에서 가장 큰 시나고그 중 하나였다. 1850년대 후반에 건설되어 1859년에 완공되었다. 이슬람 건축 양식인 무어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다른 양식도 혼재되어 있다. 아름다운 붉은 벽돌 외관과 두 개의 둥근 돔을 특징으로 했다. 도하니 거리 교회는 종교적인 중요성 외에도 헝가리 역사의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을 때 교회는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지하에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으며, 나치 점령기 동안 헝가리 유대인들이 겪은 고난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열심히 걸은 아이가 다소 지쳐해서 이제 10분만 더 걸으면 되니 힘내자고 하면서 걸었다.
유대인 시나고그
투덜대지만 잘 따라오는 아이와 함께 드디어 부다페스트 명물 카페인 뉴욕 카페(New York Café)에 도착했다. 이 카페는 1894년에 개장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웅장한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화려한 프레스코화, 샹들리에, 대리석 기둥 등이 인상적이었다. 궁전 같은 내부는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층은 카페, 2층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커피는 헝가리산 원두를 사용해 직접 볶아 만든 것으로 유명했다. 다닥다닥 테이블이 붙어 있는 카페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이고 만석이어서 우리도 5분 정도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었다. 여러 나라의 여러 카페를 가봤지만 화려한 것으로 치면 1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궁전 같은 카페
저녁 식사로는 헝가리 음식이 입에 생각보다 안 맞아서 이탈리아 식당으로 갔다. 헝가리 음식 자체라기보다는 어젯밤에 간 헝가리 레스토랑의 서비스가 상당히 별로여서 거기에 대한 반감이 있기도 했다. 우리 모두 이탈리아 피자를 좋아하니까 무난할 것 같았다. 마르게리타, 디아볼라,마리나라 피자와 펩시 콜라, 슈웹스 오렌지를 주문했다. 맛은 나폴리에서 먹었던 것보다 도우가 더 건조한 느낌에 과하게 쫄깃하다는 것만 빼면 훌륭했다. 종업원 말투가 어제 레스토랑 종업원과 비슷해서 이 도시는 그런 건가 싶었다. 뭔가 정겹지도 신경 쓴다는 말투도 아닌 무미한 말투 같은 느낌이었다. 팁도 12%가 강제로 들어가 있어서 여기 문화인 듯했다. 이런 점들이 그전에 갔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와 비교되게 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 종착점인데 어제, 오늘 계속 아쉬움이 찌꺼기처럼 남게 된 것 같았다.
저녁 식사는 이탈리아
지하철을 타고 부다 지역으로 넘어와서는 마트에 들렀다가 호텔로 돌아와서 나와 아내는 토카이 아쑤(Tokaji Aszú) 와인을 개봉해서 객실 창밖에 그려진 국회의사당 야경을 바라보며 달콤함을 혀끝으로 느끼고 마음에 담았다. 처음 마셔보는데 한 모금씩 목으로 넘길 때마다 달콤함이 터져 나와서 이 순간만큼은 이곳을 사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