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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an 31. 2024

온천으로 세계는 하나

2024년 1월 22일-23일(월-화)(19일째)-부다페스트에서 인천

몽환적인 새벽


귀국날이 밝았다. 다소 뿌연 한 안개에 싸인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아침을 시작했다. 서둘러 나와 아내는 짐을 싸고 아이를 깨웠다. 여행 말미부터 여행 끝나가는 걸 아쉬워한 아이는 마지막 날이 온 걸 아쉬워하듯 겨우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우리는 오전에 온천을 갈 예정이라 미리 체크 아웃을 하기로 했다.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맡긴 다음 마트에 들러 간단히 마실 음료와 빵을 샀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세체니 온천역에서 내렸다.


여행의 피로를 날릴 곳


영하의 날씨 속에서 온천이라니 기대가 되었다. 세체니 온천(Széchenyi Gyógyfürdő és Uszoda)은 유럽 최대 규모의 온천이면서 온천으로 유명한 헝가리 온천의 대명사와 같은 곳이었다. 1913년 완공되었으며, 건축가 죄죄 치글러가 설계한 네오르네상스 양식과 네오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화려한 외관으로 유명했다. 온천은 총 18개의 온천탕과 사우나, 수영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온천수는 74°C와 77°C의 2개의 샘에서 공급되며, 황산염, 칼슘, 마그네슘, 중탄산염, 불소 등이 함유되어 있. 그래서 관절염, 신경통, 피부 질환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옛날에는 치료 목적으로 많이 찾았다고 했다.


세체니 온천 내부


우리는 만 9살 아이가 있어서 실내 입장이 안되고 야외 온천장에서만 지낼 수 있어서 가격만 생각한다면 아까웠지만, 여행의 마지막 피로를 푼다는 생각으로 방문했기에 열심히 있는 한에서 즐겼다. 우리가 입장한 시간은 오전 9시 전이어서 다소 할인된 가격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꽤 있어 보였다. 확실히 겔레르트 온천보다는 사람이 많았고, 남녀 탈의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야외 온천장은 상당히 커서 여기서만 놀아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온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고 낯설었다. 정말이지 온천으로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된 것 같았다. 한겨울 아침에 온갖 나라의 말이 들리고, 온갖 사람들이 함께 온천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경험은 아니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정말 재미있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입장객들 거의 대부분이 성인이고 아이들은 10명도 안 되는 것 봐서 가족끼리 오지 않는 이상 대부분이 친구나 연인 같아 보였다. 세 시간 넘게 놀고 나서 씻고 나와서 점심 식사로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세계 10대 레스토랑이라는 군델 레스토랑(Gundel Étterem Kávéház)을 지나갔지만 우리에겐 국물 있는 쌀국수가 우선이었다.


신나게 온천욕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에 완공된 회쇠크 광장(Hősök tere)을 지나갔다. 광장의 중앙에는 1848년 헝가리 혁명의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있는데 꼭대기에는 헝가리의 국부인 성 이슈트반 왕이 서 있다. 밑에는 헝가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14명의 인물들의 동상이 있다. 광장 주변에는 박물관이 늘어서 있는데 그곳들을 지나서 식당에 도착해 곧바로 주문해서 쌀국수와 딤섬으로 뜨끈한 식사를 하고 나서 부다페스트의 시내 중심가인 언드라시 거리(Andrássy út)로 나왔다. 이 거리는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1872년부터 1885년 사이에 건설된 거리로서 거리는 2.5km 길이에 달했다. 서울이나 다른 유럽 대도시의 주요 거리와 비교하면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았다.


회쇠크 광장에서 언드라시 거리까지


카페 가는 길에 보인 리스트 페렌츠 기념관(Liszt Ferenc Emlékmúzeum)은 헝가리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의 신으로 칭송받는 리스트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리스트가 말년에 부다페스트에서 거주하던 집을 개조하여 만든 박물관으로 1886년 리스트가 사망한 후, 그의 유족들이 그의 집을 박물관으로 기증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Magyar Állami Operaház)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유럽에서 역사가 깊은 도시라면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데 이곳은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크기를 자랑했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오페라 하우스로서 1884년 9월 27일에 개관했으며, 헝가리 국립 오페라단이 상주하고 있다. 우리가 가려는 카페는 이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에 있는 뮈베스 카베하즈였다.


리스트 기념관과 오페라 하우스


뮈베스 카베하즈(Művész Kávéház)는 예술가 카페로서 1898년 11월 11일에 개관했으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건축가 리하르트 루트비히가 설계했으며, 화려한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특징으로 1층은 커피와 차, 디저트 등을 판매하고, 2층은 예술가들의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헝가리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했으며, 20세기 초반 헝가리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우리는 코르타도, 레모네이드, 딸기 스무디와 홈메이드 밀푀유를 주문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유를 즐겼다.


이번 여행 마지막 카페 탐방

공항 갈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언드라시 거리를 걸어 호텔로 데려다줄 트램을 탔다. 페스트 지역에서 부다 지역까지 다뉴브강을 건너는 트램을 타고 이 도시와 안녕을 고했다. 느리게 흘러가는 강줄기처럼 천천히 여행의 시간이 가길 바랐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트램처럼 우리도 여행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호텔에서 캐리어를 받아서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부다페스트 페렌츠 리스트 국제공항으로 갔다. 생각보다 큰 공항은 아니어서 구경할 것은 많이 없었지만 곧 비행기 타는 우리로서는 이마저도 즐거웠다.


곧 여행과 작별
한국으로 데려다 줄 공항 도착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아쉬워하고, 한국으로 가서 지낼 일상에 대해 계속 곱씹으며 미련을 남겼다. 작년 여행에서는 안 그러더니 아이도 커가면서 더욱 여행의 매력을 즐기게 된 것 같았다. 두 번의 기내식을 거치며 11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의 정겨운 보금자리가 있는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늘어진 몸으로 공항에서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우리는 4시간 가까이 달려서 우리의 일상이 시작될 곳에 발을 내디뎠다.


꿈나라 여행


공항에 도착해서 먼저 걱정할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니 지금 많이 편찮기 때문에 거의 매일 화상통화하며 안부를 물었다. 병상에 있으면서도 멀리 여행 간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병원 진료 결과가 걱정돼서 연락한 날에는 결과가 괜찮으면 나도 마음이 조금 놓인 채로 여행을 다녔던 것 같았다. 어서 쾌차해서 함께 다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 건강 회복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이번 여행 이후 우리의 여행 리스트에 유럽은 향후 몇 년간 갈 예정이 없었는데, 그간 튀르키예와 그리스, 서유럽. 남유럽을 다녀오고 이번에 동유럽까지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북유럽이 남아 있지만 그건 아이가 더 큰 다음 갈 예정이었다. 이번 동유럽 여행은 이쪽만의 문화를 느끼고 역사를 짚어보는 경험한 좋은 시간이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마자르족이 만들어 놓은 이 세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도시를 가로지르고 둘러싼 강들을 보며 많 생각했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바흐와 모차르트는 나에게 넘치도록 클래식 감성을 채워주었다.


세상 밖 여행을 나름 해본 나로서 조심해야 하는 건 그 나라를 평가는 근거로 여행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그 시간에 그 공간에서 오감으로 겪은 것이고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일 뿐, 그게 어느 도시나 나라의 평가로 이어지려면 정주 생활은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나는 여행객으로서 <아이와 세계를 걷다> 시리즈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고정관념처럼 비칠 수 있는 그 부분이 경계되었고, 내가 쓰는 건 여행에서 얻은 짧은 교감이자 기억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억으로 풀자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은 여행 국가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였다. 체코 프라하는 아내가 참 좋아했고, 여행 온 뜨내기들을 다룰 줄 알았다. 그만큼 프로페셔널하면서 또 친절한 민낯이 보였다. 슬로바키아는 물가도 저렴하며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관광지가 아닌 듯한 느낌이 좋았다. 또한 친절하고 특히 저녁 식사한 레스토랑이 정말 좋았다. 사실 친절로 따지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친절했다. 뭔가 잘 모르면 알려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다. 다만 스몰 토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번 동유럽 여행에서 입을 많이 닫아야 해서 재미는 살짝 떨어졌다. 다섯 나라 중에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까지 참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오는 걸 미루고 싶었다. 다만 독일 철도 파업으로 인해 취소된 베를린-프라하 열차 값을 환불이 아닌 바우처로 준다고 해서 예전 그리스 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헝가리는 기대가 높아서 그랬는지 많이 아쉬운 여행지였다. 일단 물가가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 체코와 비슷한 수준인 줄 알았지만 독일과 비슷한 수준인 듯했다. 이번 여행하면서 외식 기준으로 느끼기에 물가가 비싼 나라는 오스트리아였고, 그다음이 독일과 헝가였으며, 체코 다음 슬로바키아가 가장 저렴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그렇다고 해도 헝가리 물가가 비싸서 놀랐는데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지만, 다른 나라도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닐 텐데 말이었다. 우리가 방문하는 곳들이 유명한 곳들이라고 해도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불친절하며 돈을 얻어내려고 느껴져서 놀랐다. 뭔가 80, 90년대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들이 당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의 여행관 첫머리인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를 봤을 때 결국 사람이었다. 이번에 우리와 말을 섞고 우리와 뭔가 부딪히게 된 헝가리 사람들, 부다페스트 사람들이 좋게 기억될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고 몇몇 경험이 우리에게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우리도 꽤 여러 나라를 다녀보며 경험치가 쌓였는데 누구에겐 최고였을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우리에겐 낙제에 가까웠다.


아마 앞으로 가게 될 나라들 중에서 헝가리보다 못한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기억이 좋게 미화될 수 있겠지만, 그때의 상황이나 인연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더 낙제가 되지 않도록 이번 여행의 경험을 밑거름 삼어서 더 제대로 준비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 이렇게 우리도 여행의 기술을 쌓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점점 더 커서 이제 내가 목마 태우고 다니던 그 꼬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아는 것이 생기기도 했고, 자기 것을 챙길 줄도 알았다. 물론 어린애 같은 면도 많이 보였다. 처음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는 아기띠를 해서 데리고 다녔는데 벌써 만 9살이니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해나가고 있었다. 본인 캐리어를 갖고 다니고, 자기 준비물도 챙기고, 대화시키면 물어볼 줄도 알아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일상을 벗어난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는지 계속 여행이 끝나가서 아쉽다는 소리를 독일에서부터 하더니 빈에 도착해서는 매일 하고, 헝가리서는 하루에도 열 번 넘게 말했다. 우리가 여행을 모두 좋아해서 참 다행이고, 고마웠다. 덕분에 <아이와 세계를 걷다> 시리즈가 계속 쓰인다는 것에 감사했다. 시간과 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건강하고, 우리가 함께해야 가능한 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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