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출국하는 날이 왔다. 정확히는 오전 12시 35분 비행기이기에 오늘을 넘기는 거지만 잘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 시간까지 어쨌든 버텨야 했다. 출국날이지만 다들 여유 있는 날이라서 천천히 짐을 싸고 호텔에서 12시가 조금 못돼서 나왔다. 아이는 연신 태국에 더 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여행을 본인도 좋아해서 같이 즐길 수 있는 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침 식사를 거르고 간 식당은 BTS 나나역 근처에 있는 로컬 식당으로 문도 없이 오픈되어서 선풍기가 여러 대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팟타이, 끈적 국수, 새우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작아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맛은 있었으며 보통 태국 사람들이 이 정도 먹고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산을 하니 3개에 270바트여서 가격이 확실히 쌌다.
우리에겐 입맛만 도는 식사
사람들로 붐비는 BTS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서 시암역에 내렸다. 환승역이기도 하고 대형 쇼핑몰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일 낮 시간에도 이런데 주말에는 얼마나 붐빌지 놀라웠다. 역에서 내려 바로 시암 파라곤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가볍게 1층을 돌아보고 첫 번째 목적지인 시암 센터로 갔다. 여기도 시암 파라곤 바로 옆이어서 같은 쇼핑몰처럼 느껴졌다.
번잡한 시암역
시암 센터(Siam Center)는 가장 트렌디하고 세련된 쇼핑몰 중 하나로서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하여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브랜드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태국 최초의 쇼핑센터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꾸준한 리뉴얼을 통해 항상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며 젊은 세대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국적의 맛집들이 입점해 있어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BTS 시암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돌아보다가 배가 고파져 두 번째 점심 식사를 해야 할 상태라서아시아 푸드를 파는 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아내가 찾은 빙수 맛집에서 차이 티 빙수와 망고 빙수를 먹었다. 잘게 갈아서 소복하게 쌓아서 준 빙수가 맛도 있었는데 안에 큐브 식빵, 젤리, 찹쌀이 들어가 있어서 먹는 재미도 있었다.
시암 센터
두 번째 점심
차이 티 빙수&망고 빙수
짧은 휴식을 하고 나서 다시 시암 파라곤으로 넘어왔다. 시암 파라곤(Siam Paragon)은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방콕을 대표하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태국에서 대형 쇼핑몰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99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꾸준히 확장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고급 브랜드 중심의 백화점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쇼핑뿐만 아니라 영화관, 수족관, 미술관, 호텔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다양한 매장과 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특히 지하 1층과 2층에 위치한 시암 오션월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족관 중 하나라고 했다. 대형 쇼핑몰이 즐비한 방콕에서 아이콘 시암, 센트럴 월드와 더불어 삼대장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는 장난감 코너에 가서 원래 사고 싶었던 것과 새로 사고 싶었던 것을 발견하곤 숙고를 거듭하다가 가지고 있는 용돈을 털어서 결국 두 개 다 샀다.
시암 파라곤
3인 3색
결국 두 개 다 사기
우리는 시암역 건너편에 위치한 스퀘어 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시암 스퀘어 원(Siam Square One)은 태국 방콕의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로서 패션, 음식, 문화가 어우러진 트렌디한 공간으로미로 같은 공간 구성 속에서 활기가 넘쳤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시암 스퀘어 지역 내에 새롭게 조성된 복합 쇼핑몰인데 기존의 시암 스퀘어가 캐주얼하고 개성 넘치는 분위기였다면 시암 스퀘어 원보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쇼핑몰이지만, 알찬 구성으로 인기가 많아서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었다.
시암 스퀘어 원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시암역으로 다시 나와서 시암 파라곤 근처에 있는 센트럴 월드로 걸어갔다. 도로는 좁은데 차량과 오토바이 등이 많아서 계속 혼잡하고 밀렸다. 센트럴 월드(Central World)는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방콕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거대한 복합 공간으로 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쇼핑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식사, 그리고 다양한 문화 체험까지 가능한 곳이었다. 1990년에 문을 열어 꾸준히 확장되어 온 센트럴 월드는 방콕 시민들에게는 물론 여행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인데 특히 2010년 대규모 리뉴얼을 거치면서 더욱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 다양한 매장과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넓은 광장과 이벤트 공간까지 갖춰져 있어 마치 작은 도시와 같았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부터 태국 현지 브랜드까지다양한 상품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쇼핑을 한다면 꼭 들려야 할 곳이었다. 아이 때문에 장난감 코너와 레고 코너는 무조건 들리는 듯했다. 쭉 둘러보다가 지친 다리를 쉬게 할 겸 카페에 가서 잠시 숨을 돌렸다.
센트럴 월드
레고로 만든 방콕 지도
잠깐 쉼표
마지막으로 우리가 방문할 곳은 태국의 대표 마트인 빅씨 마켓이었다. 가기 전에 힌두교 사당으로 유명한 에라완 사당이 있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며 지나갔다. 에라완 사당(Erawan Shrine)은 1956년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 호텔 건설 당시에 공사 중 발생하는 여러 사고와 불운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당시 힌두교 성직자의 조언에 따라 브라흐마 신을 모시는 사당을 건설하게 되었고, 이후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사당 중심에 자리한 브라흐마 신은 힌두교의 창조신으로서 코끼리 머리를 한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태국인들은 브라흐마 신에게 행운과 번영을 기원하며 방문한다고 했다. 에라완 사당은 그 역사만큼이나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겪었는데, 2006년에는 동상 파손 사건이 발생했고 2015년에는 테러 공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신자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복구되었으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참배하러 왔다.
북적이는 시암
에라완 사당
우리의 쇼핑 종착점인 빅씨 마켓도 시암에 대형 지점이 있어서 쇼핑하기 좋았다. 빅씨 마켓(Big C Market)은 테스코 로터스와 함께 태국에서 가장 큰 대형 마트 체인 중 하나로서 생필품부터 기념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마트 입구부터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고 안에 들어서자 수많은 카트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많아서 저마다 고향으로 가지고 갈 기념품들을 잔뜩 싣고 다녔다. 우리는 미리 쇼핑할 것을 생각해 왔어서 빠르게 카트에 주워 담았다. 김 과자, 망고젤리, 똠얌꿍 가루, 각종 소스, 차이 티 라테 가루, 라면 등을 사서 나왔다. 저녁 식사는 간단히 푸드코트에서 하기로 해서태국 국수, 새우볼 튀김, 똠얌꿍을 먹고 코코넛 아이스크림까지 디저트로 즐겼다.
빅씨 마켓
마지막 태국 식사
마트에서 나오니 시암의 밤거리는 더욱 반짝이고 북적이는 듯했다. 우리는 다시 BTS를 타고 짐을 맡겨놓은 호텔로 다시 갔다. 짐 정리를 다시 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끝냈다. 택시를 부르고 우리를 고향으로 데려다 줄 수완나품 국제공항으로 갔다. 네온사인과 헤드라이트가 반짝이는 방콕의 거리를 지나가는데 아이가 무척 아쉬워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행의 맛을 진하게 느껴가고 있었다. 공항은 한밤중이지만 밤을 잊은 듯 시끌벅적하며 출국을 기다리는 전 세계 사람들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우리는 비행이 연착되어 새벽 1시가 넘어서 태국을 떠날 수 있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음, 경적소리, 길거리 냄새가 그리워질 것 같은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아이는 여행이 끝났다는 걸 아쉬워해서 여행이란 끝이 아니라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