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Julie Dec 07. 2020

덴마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되다

타국에서 겪는 전염병의 공포-4

2020년 올 한 해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단연 '코로나(Covid-19)'일 테다. 이 지긋지긋한 단어를 사계절이 지나도록 매일매일 보고 듣게 될 줄 이야. 새해의 시작, 그 가볍고 몽실한 마음의 산뜻한 다짐들에 매일 마스크를 쓰고 서로가 서로를 조심해야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조차 만나지 못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상은 상상치도 못했던 모습이다. 그렇게 이 바이러스의 싸움과 함께 한지 꼬박 일 년을 채워간다. 

뉴스에 나오는 숫자는 무섭도록 매일 지칠 새도 없이 증가하는데, 대체 왜 내 주변의 주변을 둘러봐도 확진자가 없는 거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느껴 본마음일 테다. 숫자로만 보면 마치 좀비처럼 번지는 것 같은 유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루 확진자가 2만 명을 넘는다는 나라에 사는 친구의 가족까지 어딜 봐도 확진자가 없는데, 뉴스에 나오는 이 바이러스는 대체 누가 걸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되새겼지만, 늘 마스크와 소독제와 함께 하며 매일매일 신경이 곤두서도록 조심했지만,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뉴스에 나오는 바이러스인 줄 알았건만, 주변의 주변을 둘러봐도 없던 확진자가 그 누구도 아닌 내 가장 가까운 사람, 내 남편이 될 줄은 몰랐다. 전염병의 공포가 내 코 끝까지 밀려 들어와 직접 겪어내게 될 것이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 


올해 초, 유럽에서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고 정부의 강경한 봉쇄정책들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덴마크 회사들이 그러하듯, 남편 또한 기약 없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휴가를 지나 가을이 되도록 재택근무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출장이 불가피한 남편의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만으로 일을 지속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국경 봉쇄가 풀리고 긴 여름휴가가 끝난 뒤 회사와의 협의 후 다시 출장 업무를 시작했다. 대중교통 이용 없이 자동차로만 이동을 하더라도 타인과의 밀접 접촉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업무를 강행하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1-2주씩 지속되는 출장 업무 후 덴마크로 복귀하면 바로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음성 결과 확인 후 출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회사와 합의 후 결정했다. 그렇게 출장, 재택근무, 출근을 병행하며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10월 출장 중에는 개인적인 일정으로 나도 동행했는데, 출장이 끝날 무렵 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몸살 증상이라 생각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당연히 '혹시?'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감기약 복용 후 증상이 거의 완화되었고, 계속 함께 했던 남편은 전혀 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큰 걱정 없이 덴마크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바로 미리 예약해두었던 코로나 테스트를 함께 받았다. 덴마크는 증상의 유무나 검사 횟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코로나 테스트가 무료이다. 다만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현장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고 사람이 붐비거나 차가 막히는 문제없이 매우 원활한 검사가 진행된다. 우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했는데,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CPR번호로 간단히 로그인하여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지정하고 Drive-thru 방식과 Walk-in 방식 중에 선택하면, 매우 간단하게 예약이 완료된다. 

검사 진행 장소는 도로에서부터 안내가 잘 되어있고, 병원 주차장 같은 넓은 장소에 여러 개의 천막이 설치되어있기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입구에는 경찰 한 분이 진료소 안내 등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있음에도 혼란이나 혼잡한 상황 없이 검사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Drive-thru 방식을 선택했고, 미리 차량 진입 라인까지 선택하여 예약하기에 별다른 통제 인력 없이도 방문차량들이 알아서 통행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덴마크에서 검사를 진행하시는 분들은 방호복 착용이 가벼워 보였는데, 머리카락이 노출되어있고 얼굴은 마스크에 플라스틱 페이스 실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 라인마다 2명이 근무하는데, 매우 밝고 친절한 분위기였고 외국인에게는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주셨다. 검사는 목구멍을 통해 한번만 진행하고 아주 조금 불편한 5초면 끝이 난다. 작성해야 하는 서류나 다른 질문은 전혀 없고 우리나라 의료보험증과 같은 옐로카드 바코드 스캔으로 본인 확인만 하기에, 검사장소 도착 후 10초면 모든 절차가 완료될 만큼 빠르고 간편하다. 


검사 결과 안내는 이메일이나 전화로도 진행되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본인이 직접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일요일 오후 늦게 검사를 받았는데 월요일 이른 아침에 결과 확인이 가능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게는 12시간 안에도 확인이 가능하다. 혹시나 하는 걱정과 함께 서둘러 결과를 확인한 우리는 말 그대로 황당했다. 아무런 증상이 없던 남편은 '양성', 감기몸살 증상이 있던 나는 '음성'이었다. 매일 붙어 다니며 아주 초근접 접촉을 했는데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나눠 마시고, 심지어 뽀뽀는 수도 없이 했는데? 더욱이 나는 감기 증상이 있었기에 아마도 예상컨대 면역력이 바닥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 황당한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근거는 검사를 받고 온 당일 저녁 식사 도중 남편이 이상하게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장거리 운전으로 무리를 하기도 했고, 추워진 날씨에 코가 좀 막힌 터라 사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그날 밤 읽어본 뉴스 기사에 후각과 미각의 상실이 코로나 증상 중 가장 뚜렷하게 감기와 구분되는 증상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 기사를 읽은 덕분에 다음날 아침 아주 황당한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도 사실이라 믿을 수 있었다. 아마 남편의 이 뚜렷한 증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둘 다 다시 검사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남편은 '확진자'가 되었고, 나는 확진자의 초밀접 접촉자가 되었다. 양성 결과가 나오자 남편의 휴대전화로 보건당국에서 연락이 왔다. 증상과 접촉자에 대한 조사가 있었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접촉자가 전혀 없었기에 다른 추가 조치는 없었다. 다행히 큰 증상이 없으니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며 안정을 취하고, 동거인이 있을 경우 생활공간을 구분하고 위생에 철저할 것을 안내받았다. 미각과 후각의 상실은 최근 확진자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증상이며 특별한 치료 없이 1주일에서 1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회복된다고 했다. 

확진자에 대한 이곳의 관리방식과 조치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들으면 기겁할 기준이다. 단순히 말해 그 어떤 강제 조항이나 법적 제약도 없고, 불이행 시 받게 되는 불이익은 물론 별도 관리 조차 없다. 증상이 있다면 당연히 병원 치료를 받았겠지만, 확진자임에도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 전혀 없으니 자택격리가 후속조치의 전부이다. 격리에 관한 모든 안내 또한 강제 효력이 없는 그저 당부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나 또한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확진자의 '보호자'이자 '동거인' 신분으로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안내받는 정도가 끝이다. 사실 이 모든 안내사항은 굳이 이렇게 누군가 따로 공식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모두가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확진일로부터 일주일 이상 지나고 더 이상의 증상이 없을 시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면 된다는 안내였다. 일주일 이상 시일이 지나고 무증상 일시에는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없다는 것을 의학적 근거로 들며 말했는데, 너무 황당해서 귀를 의심했다. 심지어 재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한국인이 듣기에 기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은 유럽인인 남편이 듣기에도 황당하다고 인정했다. 전화 안내 담당자가 어느 정도 의학적 지식수준으로 해당 업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본인은 물론 모두를 위해 확실히 해야 한다며 일주일 후 테스트를 다시 예약했다. 몸 상태와 증상을 계속 세심하게 관찰하며 일주일 단위로 테스트를 받고, 음성 결과를 받기 전까지는 철저히 격리 수칙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렇게 미각과 후각을 잃은 무증상 코로나 확진자 남편과, 그 동거인이자 보호자의 자가격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가격리 대상자에 대한 강제조치나 제약이 없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문화나 의식 수준에 근거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그러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하다). 각 나라마다 법이 다르고 규제가 상이하듯, 코로나 대응방식 또한 이 나라에는 이들의 방식이 있고, 정부의 결정과 사회적 합의로 시행되는 대응방식에 타 국가의 기준을 적용하여 맞고 틀림을 판단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들의 문화가 우리와 다르듯 이 또한 다른 것이라덴마크는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는 물론 사람들 간 서로에 대한 무언의 신뢰가 대단하고, 이것은 이들의 문화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이들의 생활방식 중 하나이다. 개인의 자유, 그 권리를 누리고 존중하는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은데 생활 곳곳 크고 작은 부분에서 쉽게 느껴질 정도로 뚜렷이 드러난다.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부분에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굉장히 조심스럽고 우리와는 다른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확진자를 포함한 모든 자가격리 대상자에 대한 법적인 강제조치 없이도 정부의 당부와 안내사항을 기준으로 개인이 알아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잘 지켜줄 것에 대한 서로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믿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하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김치찜은 된장 맛이 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