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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Julie Dec 30. 2020

덴마크 코로나 생존기

타국에서 겪는 전염병의 공포-5

이렇게 갑작스럽게 당장 내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뉴스에서만 보던 주변의 주변을 둘러봐도 없던 그 '확진자'가 된 남편은 황당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회사에 해당 사실과 증상을 공지했다. 별다른 증상이 없으므로 음성 결과를 받을 때까지 자가 격리하며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2주간의 출장 이후 확진 판정이라 잠복기를 계산하더라도 회사에서의 접촉자는 없으므로 회사 내 관련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폴란드 출장 중 접촉한 담당자들에게 남편이 직접 해당 사실을 개별 안내했고, 걱정과는 달리 모두들 친절히 알려주는 것에 감사함을 표하며 이후 재택근무를 하거나 검사를 받고 적절히 대응하고 있음을 다시 전해왔다. 업무상 미팅으로 만난 수많은 밀접 접촉자들 중 증상이 있거나 추가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감염경로는 물론 전파경로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유럽 내에서 국경의 의미는 한 가지로 정의하기가 힘들고, 감염경로와 검사장소와 관리당국이 다 다르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우리나라와는 확진자 관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양성' 검사 결과를 받은 남편과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그의 동거인이자 접촉자인 나는 집에서도 따로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남편과의 그 수많은 초밀접 접촉에도 어떻게 나는 감염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후에라도 감염을 막아야 하니 말이다. 생활공간을 철저히 분리하여 남편은 최대한 활동을 줄이고, 대화도 최소화했으며 필요시 서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두고 했다. 부엌은 나만 출입하여 요리를 하고 남편에게 배식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게 너무 미안했던 남편은 설거지는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모두 본인이 담당했다. 덕분에 나는 단 한 번도 고무장갑에 손을 넣지 못(?)했다.

이 곳은 한국처럼 자가격리 중이라고 친절히 나라에서 음식을 지원해주지 않기에, 내가 확진자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더라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직접 마트를 방문할 수밖에 없다. 원래 마트 출입 시 마스크와 손소독제 사용이 엄격히 시행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 이른 아침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대에 마스크와 장갑 착용 후 필요한 물건만 재빠르게 구입하여 다시 집으로 왔다. 이렇게 마트를 방문한 한 번의 외출 외에는 산책도 한번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강제조치가 없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우리로 인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당연하다.

남편은 누군가에 의한 통제나 강제사항 없이도 스스로 격리 수칙을 굉장히 철저히 지켰다. 당연히 집 밖을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집안에서 나와 완벽히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본인 생활 반경의 물건들을 수시로 알코올 티슈로 소독했다. 또한 혹시나 몰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날의 몸상태를 아주 세심하게 기록해뒀는데 가벼운 흉통과 호흡 불편, 두통을 동반한 피로감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 잠깐씩 있었다고 한다. 불편함을 느끼거나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전혀 아니고 아주 예민하게 몸 상태를 체크하려 노력하면 느낄 수 있는 가벼운 정도라 기록만 해뒀다고 한다.

봄부터 계속된 재택근무와 락다운 상황으로 인해 집콕 생활이 이미 익숙해져서 인지 사실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다. 굳이 꼽자면 원래 하루 종일 딱 붙어 생활하는 우리가 일주일이 넘도록 대화조차 잘 못하는 격리생활을 이어가니 한 집에 있는데 서로가 그리운 정도의 불편함이 있었다. 다행히 둘 다 다른 증상의 발현 없이 길고 긴 일주일이 지났고, 드디어 미리 예약해둔 재 검사 날이 되었다. 둘 다 검사를 받아야 해서 함께 차를 타야 했기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창문을 연 상태에서 내가 운전을 하고 남편은 뒷자리에 타고 검사장으로 향했다. 처음 검사와 동일한 방식으로 Drive-thru를 통해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검사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복귀했다.


남편의 코로나 검사 결과, 아래에서 위로 '양성 - 불확실 - 음성 - 음성'


검사 결과는 나는 '음성', 남편은 '불확실, 결론 내릴 수 없음'이었다. 양성이나 음성 어느 한쪽으로 확정 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일주일 이상 다른 증상이 없다면 일상생활로 복귀해도 좋다는 보건당국의 안내를 따르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남편은 검사 결과 확인 후 바로 이틀 후 다시 검사를 예약했다. 드디어 이 지겨운 격리생활을 끝내나 했던 기대를 접어두고, 이틀을 더 견뎌 남편 혼자 다시 받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남편은 한번 더 검사를 예약했다. 회사 동료들 중 50세 이상 고령자들이 꽤 되는데, 그들에게 혹시 나라도 어떤 피해도 될 수 없기에 업무 복귀 전 한번 더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결과는 '음성'이었고, 남편은 해당 사실을 회사에 고지하고 그다음 주부터 업무에 복귀했다.

드디어 2주간의 한 지붕 두 자가 격리자의 생활을 접고 남편 꼭 끌어안고 한 침대에 누워 잠들고,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밥 먹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일상을 되찾았다. 사소한 모든 일상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든 평범한 날들의 감사함을 온몸으로 배우는 올 한 해다.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마음껏 다니던 그런 특별한 일상 이전에, 건강한 너와 내가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눈을 보고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들고 함께 깨어나는 매일의 일상,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건강한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 말이다.

당시에는 특별히 증상이 없음에도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 걱정하실까,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다 지나고 나서야 웃으며 그렇게 바이러스가 지나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말씀드릴 수 있었다. 철저히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생활했음에도 경로도 알 수 없이 바이러스에 걸렸지만, 큰 증상 없이 또 별다른 후유증 없이 이렇게 지나가서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비타민 챙겨 먹으며 운동하고 면역력 관리를 위해 힘쓴 덕분인 것인지 단순히 운이 좋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둘 다 건강함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이렇게 일 년이 지나도록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인구 580만의 이 작은 나라에 하루 확진자가 1천 명이 넘더니 2천, 3천 명을 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덴마크는 유럽 내에서 가장 코로나 대응을 잘 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로 빠른 국경 봉쇄 등 초기 적극적 대응으로 심각한 확산을 방지하고 봉쇄 완화 정책 또한 가장 빠르게 시행하여 사회경제 전반에 타격을 최소화한 노력을 꼽는다. (초반 진단키트가 부족하여 검사를 원활히 시행하지 못해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한 중대한 사건은 이미 잊힌 듯하다.) 하지만 겨울이 되고 다시 시작된 확산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2020.12.29 기준 코로나 관련 덴마크와 대한민국의 수치 비교, 출처 :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


확진자보다 더 놀라운 숫자는 인구 580만 나라의 총 검사건수가 1천만 건을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인구 전체가 2번 정도 검사를 한 것과도 같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를 하자면, 총인구는 9분의 1 수준인데 총 검사수가 2.5배에 달한다.(총 확진자수는 2.7배..) 실제로 인구당 검사건수는 전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다. 인구당 확진자수는 매우 높은 수치이지만 공격적인 검사 시행으로 증상의 유무와 상관없이 최대한 확진자를 빨리 찾아내어 전파를 막겠다는 적극적 사전 대응 의지는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11월 이후 확진자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모이게 될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을 대비해 무증상 확진자가 가장 많은 15-25세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권고했다. 무분별한 검사 시행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법적 규제하에 확진자의 동선 추적이나 접촉자 혹은 자가격리 대상자의 별도 관리 방식을 택하지 않는 이곳에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사전적 대응방안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해외 입국자 2주 격리기간 동안 입국 검사에서 음성결과를 받았음에도,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 미열 증상과 귀국행 비행기 바로 뒷자리 한국인 아저씨들이 10시간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자가격리 해제 전 추가 검사를 요청했었다. 하지만 미열은 증상에 해당되지 않고 출국 국가가 위험국가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이유(유럽 내에서 과연 출국지의 의미가 있을까? 실제로 나는 5개국 이상의 실제 방문국가를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출국 지만 의미가 있었다.)로 검사 요청을 단칼에 거절당하고 원하면 개인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라는 답변을 받은 경험이 있어 증상의 유무와 상관없는 검사의 적극적 시행에는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다.


실제로 덴마크 전체 인구 중 3분의 2 이상이 1회 이상 검사를 받았다.        [ 출처 : 덴마크 보건부 홈페이지 ]


겨울이 되자 더 무섭도록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유럽 전역은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연휴임에도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유럽 겨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들 조차 모두 다 취소되었고 상점들도 다 문을 닫아 길고 긴 겨울이 더 어둡게만 느껴진다. 덴마크의 많은 회사들이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2주에 가까운 휴가를 준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 따뜻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고 긴 휴가를 활용해 우리는 늘 아름다운 겨울 여행지를 찾아 여행을 다녔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긴 연휴를 둘이서 아주 조용히 집에서 보내고 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직접 만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여유로운 연말 휴가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말이다. 특별한 연말 연초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야 다들 똑같겠지만, 올해는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건강하게 새해를 함께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연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행복과 건강한 몸과 마음에 감사함을 채우는 한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이 되기를. 모두가 힘들었던 올 한 해를 건강하게 마무리하고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의 희망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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