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Nov 23. 2021

금연 구역 아니었나요?

차이나는 생활

중국에 오기 전까지는 담배로 스트레스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꽤 일찍이 금연에 성공하셔서 내 기억 속에 아빠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남편은 폐가 좋지 않은 가족력 때문에 담배를 입에 댄 적도 없다고 했다. 음식점이나 카페를 가도 금연석에 앉으면 됐고, 가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걷는 사람을 봤을 땐 속으로 '아직도 이렇게 몰상식한 인간이 있네' 하며 걸음을 빨리 옮기면 그만이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담배꽁초를 보고도 별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 바닥에 함께 굴러다니던 작은 쓰레기들의 범주 안에 포함시켰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 길가 풀밭으로 담배꽁초를 휙 던져버리는 사람을 봤을 때도 '저런 저런' 하고 말았고, 지나치다 운이 없어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말았을 때도 그저 정말 운이 없어서인 줄만 알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중국은 흡연가의 천국이었다.


#1.

한국식 숯불 구이 식당에 갔을 때였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고기를 마음껏 먹이고 우리도 육아로 지친 몸을 보양하자며 찾아간 곳이었다. 분위기는 조금 어두컴컴했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에 맛도 괜찮아서 중국 사람들에게도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들에게 쌈도 싸주고 사이사이 우리 입에도 하나씩 넣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숨을 들이쉬며 코를 킁킁거렸다. 나보다 담배연기에 더 민감한 남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기 굽는 연기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지긋한 아저씨들이 단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어린아이들이 안 보이나? 더군다나 벽면 한쪽에는 '금연' 표시가 떡하니 붙어 있는데..? 이거 실화야? 머리가 띵해지기도 전에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남편이 말했다. "빨리 먹고 나가자."

"빨리 먹고 나가자니? 이런 건 말해야지. 여기 사장님 한국 분이시지? 내가 얘기할게."

그러자 나보다는 중국 물정을 잘 알았던 남편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여기선 가게 주인도 금연하라고 함부로 얘기 못해. 저 사람들에겐 너무 당연한 거라서 오히려 자기들이 더 황당해할걸. 암튼, 내가 얘기해볼게."  그렇게 우리는 사장님께 잘 말씀드렸다. 아이들이 어리니, 옆 테이블 분들에게 여기 금연 구역이라고 말씀드릴 수 없겠느냐고. 설마 했던 한국 사장님의 반응은 이러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도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는데 몸싸움 일어난 적도 있어서요. 다음에는 미리 예약해 주시면 제가 따로 방으로 모실게요. 양해 부탁드려요."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 버젓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안 되겠어. 여보. 이 사람들도 알아야지. 내가 가서 좋게 얘기해볼게." 화난 건 화난 거고, 다른 건 다른 거지만, 아닌 건 여전히 아닌 거였다. 일어나는 나를 남편이 붙잡았다. 다음에는 꼭 예약을 하고 오자고, 여기 식당들 이런 거 알면서 미리 생각 못한 본인 잘못이라 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예상하는 상식이 없을 수도 있어. 저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냥 가자."

그렇게 우리는 식당을 나왔고, 담배 연기로 가득 차 버린 그곳을 나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있는 힘을 다한 흰자위로 담배 피는 그들을 노려보는 뿐이었다. (정말 화가 많이 났었다^^;)


#2.

둘째에게 절친이 생겼다. 하오펑요. 유치원에서도 둘이 꼭 붙어 다녔는데, 우연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면서 매일 함께 노는 사이가 되었다. 첫째들 나이도 비슷해서 아이들 넷이 자주 놀다 보니 부모들끼리도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그 엄마는 결혼 전에 스튜어디스였기에 한국에 가본 적이 많았고 관심도 많았다.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친한 친구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그 친구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며 우리에게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해 주기도 했고, 외국 생활하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물심양면으로 나서서 도와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좋은 식당을 골라 가족 식사 초대를 했는데, 웬 걸 오히려 마음이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집 남편은 골초 중 골초였다. 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웃고 떠들고, 어른들은 맛있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 집 남편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으잉? 설마 여기서? 우리를 의식한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창문을 열었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얼어버린 와중에 '창문은 열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집 엄마가 황급히 와서 창문을 닫아버렸다. "추워, 애들 감기 걸리잖아."

'와.... 애들 감기 걸리는 건 걱정하고, 담배 연기 들이마시는 건 걱정 안 되나?'

목구멍까지 엉켜 나오는 중국어를 꿀꺽 삼켰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丢脸(디우리엔, 체면이 깎인다는 뜻)은 피해야겠다 싶었다.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을 쿡쿡 찌르고 당황스러운 눈빛을 교환하고 복화술로 말을 주고받는 사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담뱃불은 꺼져 있었다. 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국에서는 길거리나 식당에서 담배 피우지 못해요.라고 둘러서 겨우겨우 얘기했는데, 또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아 맞아요, 한국 여행 갔을 때 보면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진짜 식당에서도 다 못 피게 해요?"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아, 알고 있었구나. 듣고 나니 한국에선 공공장소에서 금연한다는 것을 알고도, 한국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며 담배를 피운다는 게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던 한편, '이 사람들,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당연히 알고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로 해로운지는 잘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는 중국 사람들인데, 간접흡연이 해롭다는 걸 안다면 자기 자식 앞에서 그렇게 담배를 피울 수 없을 터였다. 놀이터에서, 스쿨버스 앞에서 유모차를 밀며 담배를 피우는 중국 할아버지들을 떠올렸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가 식사 자리에서 두 번째 담배 개비를 입에 문 순간, 우리 부부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단호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이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밖에 나가서 얘기하면서 핍시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 얘기하자 그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어리둥절해했다. 잠깐의 정적을 깨뜨리려 내가 말을 꺼냈다. "큰 아이한테 비염이 있거든요, 담배 연기가 아이들한테 안 좋잖아요." 

그러자 그 집 엄마가 하오, 하오를 연신 외치며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


상식이 상식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항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던가. 당황해하는 그들에게 땀을 삐질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내면서, 상식을 모르는 그들도 말이 안 되지만, 상식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나도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그동안 잘 정제되어 있는 상식 속에서 편안히 살아왔었구나. 


2016년 기준, 15세 이상 중국인의 흡연율은 무려 27.7%이며, 중국 남성 52%가 흡연자라고 한다. (연합뉴스 2016.1.2) 중국 당국이 흡연율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국가 기관인 연초국이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무용지물인 금연 표시만 눈에 띌 뿐, 담배의 폐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 곳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한 사람의 몰상식을 비난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세계 공통의 소통 채널이 막혀 있는 중국에서는, 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벽을 깨고 정보를 찾아보려 하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과 귀를 닫은 채로 살아가게 된다. 온전히 개인의 선택과 자유에 흡연을 맡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보에의 자유와 알 권리가 제한되어 있는 선택의 차단인 셈이다.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걷는데, 맞은편에 걸어오는 세 청년들이 나란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아직 불이 채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무심하게 튕겨서 바닥에 버린다. 그들의 등에 꽂힌 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첫째가 둘째에게 조용히 말한다. "저 형아들은 이런 데서 담배 피우면 안 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어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