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Dec 09. 2021

잘 먹겠습니다!

음식윤리

저녁을 먹고 나서 굼뜬 몸이 축 쳐지려고만 해서 아파트 단지 안이라도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싶었는데, 추운 날씨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환한 햇빛과 초록에서의 산책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해가 져버린 시간 몸을 꽁꽁 싸매고 나가야 하는 산책은 아무래도 내키질 않았다.

"그냥 안나갈래." 라는 나의 말에

"그럼 우리 다 같이 나가자."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 시간에, 그것도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면 아무리 대충 준비한다 해도 대이동이 되는지라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집에 있었을 텐데, 그날은 나도 순순히 그러자고 답했다. 숙제도, 독서도 다 제쳐두고 그냥 산책이다, 번개 산책!


신난 아이들은 야밤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패딩 안이 금방 땀으로 젖었고, 찌뿌둥했던 내 몸도 금세 가뿐해졌다. 저녁 먹은 배가 금방 꺼져 또 허기가 질 참이었다. 결국 다 같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시장. 중국에는 쇼핑몰마다 깔끔한 슈퍼마켓이 있지만, 동네마다 구석구석 재래시장들이 정말 많다. 처음엔 어두컴컴하고 깔끔하지 못한 것 같은 내부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는데, 아침 일찍 문 열 때 가보면 야채나 과일들이 정말 신선해서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현지 중국인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에 가격 또한 무척 저렴하다. 그런데 중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꽤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는 코너가 있었으니, 바로 정육 코너. 한국에서는 깔끔하게 소분되어 랩으로 포장된 고기류 또는 정육점 냉장칸 안에 잘 진열된 것만 보았었는데, 중국 시장에서는 고기를 커다란 진열대 도마 위에 잘라놓고 팔았다. 한쪽에는 소분되지 않은 커다란 덩어리가 그대로 있었고, 손님이 요청하는 대로 잘라주는 식이었다. 겨울이면 그래도 양호하지만 여름이 문제였다. 상온에 내놓고 팔다 보니 천장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부채 같은 걸로 파리 떼를 쫒고 있었다. 그랬기에 시장에 들락거리며 과일과 야채를 사나를 때도 고기 매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었다. 닭고기의 모든 부위가 말 그대로 부위별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닭가슴살, 닭다리, 닭날개, 닭봉까진 익숙했으나, 닭목, 닭발, 닭머리(의 집합)는 뜨악했다. 처음 봤을 땐 닭 한 마리의 완전체 모습을 상상하게 되어 차마 대놓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닭발도 한국에서는 매운 양념에 요리되어 나온 것만 봤지 요리하기 전 모습은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나는 닭발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주변에 닭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먹는 건 많이 봤었기에 딱히 거부감은 없었는데, 부리가 달려있는 닭머리를 보는 건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번개 산책을 나갔던 그날, 시장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아이들이 쪼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계산을 하고 따라가 본 곳은 바로 닭정육 코너. 아이들 둘이서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닭발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닭머리는 보지 못한 건가?) "얘들아, 이제 가자~"

똘레 똘레 따라 나온 아이들의 눈은 여전히 동그래져 있었고, 헤 벌어져 있던 입에선 곧 쉴 새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엄마 저기 무슨 손이 잔뜩 잘려 있어."

(공포도 이런 공포가 없다. 아이는 닭발을 손으로 착각한 것이다.)

"손이 아니라 발이야."라고 답하면서 어이없는 웃음인지 모를 것이 느껴져 또 소름이 끼쳤다.

"그럼 누구 발이야?"

하아, 누구 발이라니. "당연히 닭발이지."

"아 나는 누구 손인 줄 알았어. 엄마 그런데 사람들이 발~~ 을~~ 먹어?"

"응, 엄마는 먹어본 적 없는데, 요리해서 먹는 사람들도 많아."

"으으, 나도 절대 안 먹어, 너무 이상해."

(다행히 머리는 못 본 모양이다.)


그런데, 뭔가를 더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여기서 말문이 막혔다. 아이에게 어떻게 얘기해줘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닭발 정도는 한국에서도 자주 먹는 음식이다. 그저 내가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음식도 하나의 문화인 건데, 이렇게 닭발을 먹는 음식 문화를 혐오해도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발이 아니라 머리라 하더라도 혐오하면 안 되는 것인지, 잠깐 사이에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전에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이유식으로 닭죽을 자주 만들어 줬는데, 아이가 궁금한 눈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이 죽은 닭죽이야? 그 꼬꼬댁 닭, 죽?"

"응 맞아, 꼬꼬댁 닭."

"아, 그럼 꼬꼬댁 닭이 만들어준 죽이구나~! 고마워 닭아. 엄마 잘 먹겠습니다."

아이는 천진하게 말했다. 한창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였고 동화책에서도 닭 캐릭터를 접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순수한 생각으로는 닭이 우리에게 계란을 주는 것처럼, 닭죽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 맞아, 닭이 만들어준 죽, 정말 고맙다. 이렇게 맛있는 죽을 만들어줘서. 우리 닭에게 인사하고 먹자. 고마워 닭아~! 그리고 고마워 준아."

아이에게 하루 몇 그람씩 꼭 고기를 먹이면서도, 맛있게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입맛을 다시면서도 육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아이의 시선은 달랐다. 아이의 '고마워.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는 요리를 해준 나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원천적 제공자인 꼬꼬댁 닭에 대한 감사가 들어 있었다. 그건 생명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중이었으며, 나아가 음식 윤리였다.


나는 그때 그 대화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닭발도 닭이 준 거니까 감사한 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먹고, 어떤 사람들은 먹지 않아. 그건 선택할 수 있는 거야. 지금은 시장에 가면 먹고 싶은 것들을 아무 때나 살 수 있고 닭발 말고도 먹을 게 아주 많지만, 아주 옛날에는 사냥을 해서 먹기도 했고 먹을게 부족해서 배곯았던 시절도 많았어. 책에서 봤지? 그럴 때는 소중한 식량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까 중요한 건 항상 감사하며 먹어야 한다는 거야. 예전에 닭이 만들어준 죽, 닭죽 생각나지? 그때처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너로 인해 알게 된 거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은 불편했고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이어갈  없는 말들도 있었다. 부위별로 진열된 모습, 특히 닭머리만 따로 물건처럼 쌓여 있는 광경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생명 존중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간혹 현지의 훠궈 식당에 가면 어떤 곳에선 초원에서  떼가 몰려다니는 이미지나 영상을 틀어놓는데 다음 화면에 바로 도축 공장이 등장한다. 유명한 만두 음식점 체인에서도 신선한 재료를 강조하기 위해 벽면 한쪽에 돼지 사진을 붙여놓는다. 숯불구이 집에서도 식당 안에 커다란  모형을 갖다 놓는다. 한국 또는 여행하면서  어떤 나라에서보다도 직접적이고 거리낌이 없다. 중국에선 아직 동물 보호 의식이 많이 부족한  사실이고, 심지어는 택배 상자 안에 동물을 넣어 배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현상이 중국의 음식 윤리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평소엔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너희에게 무엇을 알려줘야 할지, 무엇이 보다 나은 방향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 날 야밤의 산책으로 땀 흘린 우리들은, 집에 와서 시장에서 장 봐온 것들을 풀어 과일 만찬을 즐겼다.

오늘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연 구역 아니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