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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Mar 02. 2023

에세이 03, 덕질찬가

운명의 덕통사고

“가시나 또 시작이라. 아직도 그렇게 좋나? 열정이 부럽다 정말”


활동을 재개하는 그의 영상과 기사가 뜰 때마다 나는 부지런히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에게 공유한다. 이번에는 뮤직 드라마다.


“됐고 빨리 좋아요나 누르고 공유 눌러라”


나의 채근에 '아이고 또 시작이다' 싶은 표정이 눈에 선한 한 친구가 대답한다.


“벌써 눌렀지.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고맙데이?”

“남편이 안 삐지나? 딴 남자를 그래 좋아하는데?”


진지한 대답을 바라지 않고 툭 던진 친구의 질문에 나는 이 때다 하고 창욱 용비어천가를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남편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본체도 안 한다. 내가 뭐 바람이 난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 얼마나 건전한 취미로. 그리고 창욱이는 남자가 아니고 하나의 예술 작품이지. 앤디워홀이 캤잖아. 예술은 일상을 잊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데이. 너네 예쁜 사진 보면 기분 좋지? 좋은 노래 들으면 기분 좋잖애. 창욱이는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노래면 노래 다 따로 따로 봐도 하나의 완성된 작품 같은 존재인데 이게 또 놀라운 게 하나로 합쳐지면 그게 또 하나의 종합 예술이거든. 

아 근데 내가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라.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창욱이 연.기. 때문이데이.”


지창욱

내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2016년 어느 늦여름이다. 

야심 차게 세상의 불편함을 바꿔보겠다며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 멀쩡히 다니던 은행을 박차고 나온 지 1년 차. 처음 해본 창업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일을 했고 그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초보 학부모로서 몸이 10개라도 모자랐다. 하루 4~5시간 자면서 일과 살림, 육아를 했다. 내가 허락된 유일한 자유 시간은 새벽. 친구들의 밀린 SNS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그것이 나의 유일한 쉼이었다. 

뻑뻑하게 돌아가던 일상의 어느 날도 어김없이 아들을 재우고 새벽에 유튜브 앱을 열었다. 뭔가 재밌는 게 없나 하고 무의미한 손가락질을 하던 중 동방신기 영웅재중이 여자를 팔 베개하고 있는 헐벗은 남녀의 썸 네일을 발견했다. 

“그 녀석 참 느끼하게도 생겼네?” 

모른 척, 마치 실수한 듯 반드시 우연히 썸네일을 클릭했는데 아니 이 청년은 누구? 영웅재중이 아니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새하얀 얼굴, 짙은 쌍꺼풀, 초롱 초롱 하고 깊은 눈동자, 오똑한 콧날 느끼하게 생기기 짝이 없는 이 아이! 몸은 또 어찌나 잘 쓰는지 액션 연기도 일품인 그는 지창욱이라는 배우란다. 무심코 보게 된 그 영상은 “힐러”라는 몇 년 지난 KBS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그 썸네일을 시작으로 알고리즘이 전해준 드라마 메이킹 영상들을 연달아 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이렇게 밝고 애교 있고 연기까지 잘하는 애가 있었다니! 심지어 외모는 역대급으로 잘생겼다. 힐러의 “서정후” 역할도 멋있었지만 메이킹에서 보이는 지창욱 배우의 본체 모습은 정말 남자판 아프로디테 그 자체였다.


그렇게 그때 나는 치료가 불가능한 운명의 덕통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때 당한 사고는 거의 전치 16주 급이었다. 난 왜 이제야 이 배우를 알게 된 것인가 자책하며 매일 새벽이면 잠을 자지 않고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나간 드라마와 각종 방송 영상, 기사, 팬클럽 게시 글 모두 섭렵했고, 마침 뮤지컬 공연 중이라 엄청난 티켓팅 경쟁을 뚫으며 공연을 보러 다녔다. 처음으로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잠은 더욱 모자라 낮엔 거의 좀비 상태였다. 그러기를 벌써 7년 차.. 마치 메멘토처럼 돌아서면 치이고 돌아서면 또 치이고 거의 매 분기마다 덕통 사고를 당하고 있다. 나올 수 없는 인간 회전문 지창욱.


“그래 진짜 니 열정 진짜 존경한다. 부럽다."


친구가 진심인지 비꼬는 건지 나의 덕질이 부럽다고 한다.


“니도 덕질해 봐. 덕질은 정말 최고의 취미 생활이야. 우울증이 올 새가 없어. 그리고 또 얼마나 건전한 줄 아나? 내가 돈 버는 이유가 뭔데. 창욱이 덕질 자금 마련 하려고 이래 열심히 살고 있는 거 아니겠나? 뮤지컬 N차 뛰려면 돈이 어마하게 든다.”


흥분하면서 답을 하는 나에게 얕은 한숨을 쉬면서 친구가 대답한다.


“히유, 부럽다. 난 그런 에너지와 열정이 없어. 하루 종일 애들 수발에 살림하고 일하고 하다 보면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이놈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냐. 니 보면서 나도 덕질 좀 해 보려고 드라마 보면 멋있는 애들 좀 파보는데 며칠을 못 가. 드라마 볼 때뿐이야. 어찌 그리 오래 한 사람을 좋아하지? 서울대 지창욱과 있으면 네가 수석합격 했을 텐데”


“니는 드라마 캐릭터에 빠진 거라 그래. 대부분 캐릭터에 빠졌다가 배우 본체 보고 실망하게 되는 케이스가 많지. 근데 배우 본체 그 사람 자체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어. 지창욱은 본체가 사랑 그 자체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거든 “


“도대체 어디가 그리 좋노?? 뭐가 그리 좋노”

아 도대체 똑같은 대답을 몇 번 해야 될까. 그러나 늘 새롭게 답해준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하노. 창욱이 눈을 봐라. 진짜 얼마나 이쁜데. 남자 눈이 그럴 수가 있나. 걔는 악역을 맡아도 눈에 사연이 있어. 악역들 보면 그냥 눈깔 돈 사이코 같은 애들 있잖아. 창욱이는 악역을 해도 그 눈엔 분명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스며 있거든. 눈으로 이야기를 한다 캐야 하나. 그리고 목소리 또 장난 아니거든. 부드럽고 진짜 달달 한데 또 딕션도 장난 아니지. 법정 드라마나 의학 드라마를 한번 해야 진짜 그 딕션 맛을 보여 줄텐데 진짜 창욱이 연기 못 본 사람들 안타깝다 진짜!

노래는 또 얼마나 잘 하노, 팬미팅 갔는데 3시간짜리 공연을 연속으로 2타임 6시간을 하잖아. 근데 목도 안 쉬어. 팬들한테 계속 노래 불러주는데 그거 가수가 해도 하루에 6시간 하면 힘들거든. 근데 그걸 또 다 소화한데이. 군대 갔을 땐 군 뮤지컬이라 이 국방부 놈들이 뽕을 뽑아 먹겠다고 애를 그냥 더블 캐스팅도 아니고 단독으로 공연을 매일 돌리는데. 그걸 또 다 소화해 내잖아. 차라리 훈련을 하지. 근데 춤은 좀 못 추긴 해. 근데 또 그게 그래 귀엽데이. 그고 뮤지컬 때 내랑 아이컨택 했다 아니라 내보고 웃든데”


“알았다 알았다 세상 불공평하다 사기캐네 사기캐”


칭찬인 듯 하지만 저 인간 또 시작이네 하는 듯한 친구의 대답.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 않고 물어봤으니 또 친절하게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 좋은 건 알려주고 함께 하는 것이 참된 우정 아니겠나?


“야 근데 그 정도면 인성이 또 별로 여도 할 말 없지 않나. 근데 또 인성도 장난 아니고 팬 서비스도 장난 아니거든. 퇴근길 출근길에 팬들 보면 꼭 창문 열어서 인사해 주고. 팬미팅 때는 팬들한테 팔찌 선물도 해주고. 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창욱이 뮤지컬 음악 감독이었는데 팬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인성 좋고 리더십도 있다고 하대. 진짜 내가 지뿌듯하다. 그고 애가 리더십도 있고 책임감도 있고 멋지게 살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잖아. 어찌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애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지. 근데 또 어떨 때 보면 귀여워 죽어. 역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인간 회전문이야”


어느새 인가 또 다시 지창욱 용비어천가를 읊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늘 비슷한 결론이다.


지창욱 덕질은 나에게 오아시스이다. 쉼터이기도 하고 삶의 활력이기도 하고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지창욱 덕질을 하면서 나는 덕질 전도사가 되었다. 지인들에게 덕질의 이로움에 대해 널리 알리고 있다. 

덕질은 추앙이다. 요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로 “추앙”이라는 단어가 유행인데 덕질이 곧 추앙이다. 어떤 사람을 조건 없이 응원하고 추앙하는 것. 의심 없이, 고민 없이 추앙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억압된 현실로부터 해방되는 것. 이게 바로 덕질의 순기능이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이라는 쉼터가 있다. 하지만 그곳은 “현실”이라는 방해꾼 때문에 온전히 쉴 수만은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덕질을 잘하면 나만이 만든 판타지 속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욘사마의 일본 아줌마 팬들이 그로 인해 병을 고쳤다는 인문학적 과학적 근거도 있지 않은가? 


덕질은 가장 현실성 있고 일상적인 판타지이다. 단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이처럼 부끄러움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조금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다음 작품을 위해 늘 노력하는 그를 따라 하며 나도 한 번 더 노력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되기 위해 내일도 열정적으로 살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가니 곧 다시 뮤지컬 티켓팅이 시작될 것이다. 난 또 덕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내일 일터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야 한다. 덕질은 그만하고 이제 자야겠다. 

아! 지창욱 배우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에 대한 자랑을 할지 늘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독자님들도 덕질 하신다면 꼭 성덕하시길 기도해 드릴께요.


#지창욱 #못잃어 #덕질 #덕후 #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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