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구원자...아니 구독자
유튜브 시대 인간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지나가다라도 들어봤을 말이 있다. 구독자가 많든 적든, 운동 채널이든 먹방 채널이든 꼭 단체로 짠 듯이 마지막엔 모종의 주문과 같은 이 문장을 외치며 영상이 끝난다.
"좋아요, 구독, 댓글, 알림 설정 부탁드려요."
하도 많이 반복해서 그런지 말하는 이들도 어딘가 정형화된 리듬이 실려서 꼭 노랫말처럼 들릴 때도 있다. 왜 그들은 이토록이나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에 집착하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365일 중에서 360일 정도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나에게는 다음날 숙취로 오전 수업은 재껴도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오전 8시 40분부터 20분간 진행되는 캠퍼스의 아침방송이었다. 당시 교내방송국에서 PD 직책을 맡고 있던 나는 배정된 방송 요일이 찾아오면 헛구역질을 하면서라도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방송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캠퍼스 내에 고요한 정적만이 맴도는 대참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학 방송국에서 '대참사'라고 함은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말한다. 으레 모든 방송국이 그렇겠지만 '성실, 정확, 신념의 소리'를 표어로 내걸었던 우리 방송국도 시간 엄수를 특히 중요시했다. 수습 국원 평가 기간, 집합 예정 시간에 1분이 늦었다는 이유로 정국원 발령 전 퇴출을 당한 국원이 있을 정도였고, 방송에 지각하거나 펑크를 낸 선배들은 대자보 크기의 시말서를 써 벽에 붙여놓기도 했다.
듣는 이가 있으니 엄격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마침내 선배들의 방송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던 1학년 첫 학기가 지나고, 직접 방송을 송출해야 하는 2학기의 첫날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 부스실에 들어가, 부푼 가슴을 안고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을 고심해 골랐다. 두 손가락으로 앰프의 볼륨을 올림과 동시에 내가 고른 노래들을 캠퍼스로 흘려보냈다. 두근거렸다.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두꺼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부스실에서는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게 등교하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으로만 떠올릴 뿐이었다.
오늘 선곡 괜찮았나? 날씨에 어울렸을까? 방송을 하는 매 순간 궁금했지만 물어볼 상대가 없었다. 유일하게 물을 수 있는 건 캠퍼스 어딘가에서 햇볕에 눈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받아적고 있을 같은 국원들이었다. 당시 방송을 진행하지 않는 날에는 2명씩 짝을 지어 방송이 잘 송출되는지 체크하기 위해 바깥에서 모니터를 하곤 했다. 다 같이 공유하는 모니터 일지에는 땡땡이를 치지 않았다는 증거로 그날 나온 선곡표를 수기로 적었다.
20분에서 길게는 40분까지 모니터를 하다 보면 수많은 학생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무리 지어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학생들,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 이어폰을 끼고 어디론가 바삐 이동하는 학생들. 저마다의 제스쳐로 젊음의 열기를 내뿜는 와중 스피커 속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 같아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 첫 방송 날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캠퍼스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막말로 방송을 한두 번 펑크 낸다 한들 '대참사'는 방송국 안에서 벌어질 뿐, 바깥 세상은 정적 속에서도 평화로울 것처럼 보였다.
공들여 선곡한 노래와 몇 시간 들여 쓴 대본을 귀 기울여 듣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얼마간 음악방송의 선곡표는 내 휴대폰 속 플레이리스트와 거의 동기화되었다. '아무도 안 들어주면 나라도 듣는다'는 삐딱한 마음으로 청자를 고려하지 않은 플레이리스트를 캠퍼스에 마구 울려 퍼트렸다. 이상한(?) 노래를 틀었다는 말은 아니고, 멜론 '탑백'이나 대중적인 유행가보다는 내 취향으로 점철된 노래를 마음껏 선곡했다. 학생들보단 부모님뻘이 좋아할 법한 올드팝도 넣고, 좋아하는 아이돌이 신곡을 들고 컴백한 날에는 당당하게 한 곡씩 끼워서 틀기도 했다. 선곡이라는 게 라디오 PD의 독보적인 권한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나 싶긴 했다.
단조로운 일상 속 작은 반항이 반복되던 어느 날, 저녁 방송을 끝마치고 부스실을 나왔을 때 국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방송국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고 했다.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쳐다보자 국원은 "방금 방송에서 나온 노래 제목이 뭐냐던데?" 설명을 덧붙였다. 잠시 벙쪘다. 노래 제목을? 어떤 노래를? 아니, 그전에. 누가 방송을 들었어?
한동안 잠시 잊고 있던, 아니 어딘가에 존재하긴 하는지 늘 마음 한구석으로 의문을 가졌던 청취자의 등장에 당황과 동시에 붕 뜨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반가운 마음, 놀라운 마음, 궁금한 마음, 그러면서도 왜인지 서운한 마음.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오셨어요! 버선발로 마중이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 어쩌면 나는 계속해서 누구라도 이 자유분방한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욕이든 뭐든 반응해 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청취자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몇 번 더 있었다. 하루에 국원들 빼고 외부인이 한 명 이상 들어올까 말까 하던 방송국 홈페이지 게시판에 노래 제목에 대한 문의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신청곡을 요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친구가 네 방송 너무 좋대' 인사치레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지인을 통해 건너 듣는 피드백도 하루 종일 기분을 들뜨게 했다. 듣는 귀가 많으니 해이해지지 말라는 하늘의 시그널이었던걸까. 당시 유튜브가 활성화되지는 않을 때였지만 꼭 구독, 좋아요, 댓글, 알림 설정을 받는 기분이었다.
일련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겪고서는 고독한 부스실이 더이상 고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존재하는 청취자들이 지금 흐르는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덕분에 나는 방송국 생활 2년 내내 단 한 번의 지각과 펑크 없이 울렁이는 숙취 속에서도, 실연의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정시에 'on air' 불을 켤 수 있었다. 10년 전 그때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지금이나 나에게는 청취자들이 '라붐'의 소피마르소고 나는 그녀에게 헤드셋을 씌워주는 남자 주인공 마티유다.
플레이리스트는 말이 없다. 오직 음악과 컨셉으로만 승부한다. 그래서 사실은 플리 유튜브를 시작한 후부터 늘 구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내가 선택한 노래들을 선택해 줘서 고맙다고. 그러니까 좋아요, 구독, 댓글, 알림 설정도 잊지 말아 달라고.
P.S 10년 전 나의 첫 번째 구독자가 전화로 물어봤던 곡은 Lily Allen - Littlest things 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하늘에 구름이 많은 날 자주 듣던 노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