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일했을 때 한 번은 뜬금없이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원래 면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날따라 간절히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밥 때도 아닌 시간에 굳이 몸을 끌고 나가 잔치국수를 사 먹었다. 한껏 기대를 품고 잔뜩 면을 집어삼켰으나 어라? 뭔가 좀 부족한 맛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국물을 들이켰으나 영 시원치 않았다. 뭐랄까, 단전 깊이 시원한 기운이 끓어 나오지 않는달까? 음, 이 집 음식맛이 좀 아쉽네. 하고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때부터 나는 미슐랭 심사원이라도 된 듯 내 입맛을 만족시킬 만한 잔치국숫집을 찾아 이곳저곳 헤매기 시작했다. 경건하게 식탁에 앉아 차분히 국물을 떠먹어보고, 면을 입에 넣어보며 평가 내렸다. 국물이 너무 텁텁한데. 면이 너무 퍼졌어. 이건 너무 짜잖아. 이러쿵저러쿵 까탈스러운 평을 내며 젓가락을 내려놓기 일쑤였다. 세상에 맛있는 잔치국수가 이토록 없다니!
그 아쉬움 때문인지 부모님을 뵈러 당진에 올라가기로 했을 때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는 엄마의 질문에 한치 망설임도 없이 잔치국수를 외쳤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에게 더 맛있는 거 먹이고 싶으셨는지 다른 건 없냐고 물어오셨지만 나는 오직 잔치국수만을 원했다. 잔치 국수야, 딱 기다려라.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건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한껏 배고픈 상태인지라 곧바로 식탁에 착석했다. 그런데 웬걸? 식탁에 잔치국수가 없었다. 왜 잔치국수가 없는데?라고 어리광을 부리기도 전, 뭔가에 홀린 듯 젓가락을 들었다. 정신없이 집밥을 삼켰다. 배를 채우고 나니 엄마가 내게 물었다.
"내일은 잔치국수 해줄까?"
"아니, 괜찮아."
그토록 간절했던 잔치국수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잔치국수를 먹지 않았는데 먹은 것 같은 마법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미 충분히 만족한 상태였다. 그제야 내가 잔치국수가 아닌 집밥이 먹고 싶었던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집밥을 그리면서 왜 잔치국수가 먹고 싶다 착각하고 있었을까? 글쎄, 부담 없이 편안하면서도 뜨끈한 집밥의 기운을 삼키고 싶단 욕구를 잔치국수가 먹고 싶다는 것으로 잘못 인지했나 보다. 식사를 할 때 한 번씩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함께 먹기도 한다. 내가 집밥의 뜨끈한 기운을 먹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건 음식맛을 한층 각별하게 한다. 각별히 좋아하는 음식이란 그런 의미나 이야기가 담긴 음식일 테다.
포항에서 장사하는 잔치국숫집들에게 사과한다. 음식 맛없게 한다고 투덜거렸는데 사실 난 다른 것이 먹고 싶었던 거다. 뜨끈한 집밥의 기운을 애먼 데서 찾으면서 불평했으니 괜히 사장님들만 억울했을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