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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05. 2023

사서 고생하는 녀석들

최근 친구가 손가락을 다쳤다. 주짓수를 하다 인대가 끊어졌단다. 의사 말로는 다행히 지금은 움직이는데 지장 없지만 또 다치게 되면 그땐 이야기가 다를 거라고 경고했단다. 그 말을 듣고도 친구는 며칠뒤 손가락에 테이핑을 하고 주짓수를 하러 갔다. '미련아, 왜 돈 주고 다치고 있냐? 작작 좀 해.'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만 다시 가라앉혔다. 어차피 말해도 듣지 않을 녀석이다. 사실 이 녀석이 주짓수를 하다가 다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쇠파이프로 두드려 맞기라도 했는지 온몸에 흉악한 멍이 들어 있기도 하고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복대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 잔소리를 해도 꾸역꾸역 주짓수 체육관에 가는 꼴을 보니 저건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싶었다. 그제는 같이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가 피식 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야, ooo이 요즘 뮤지컬 연기를 배우거든? 근데 군기가 장난 아니래. 무릎 꿇고 혼나고 그런다던데?"

요즘 시대에도 그런 문화가 있구나라고 놀랄 찰나였다.

"그런데도 걔는 좋다고 다니더라. 그래서 내가 왜 돈 주고 혼나고 있냐?라고 말하려다가 참았어. 나도 돈 주고 다치고 다니잖아."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내 친구들은 돈 내고 체육관에 가서 다치고 있고, 돈 내고 뮤지컬 연기를 배우면서 혼나고 있다. 사서 고생하고 있는 셈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미련퉁아.'라고 핀잔을 주고 싶으면서도 한 편으론 응원하고 싶다. 당장 대단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이뤄내려는 사람,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빛나 보인다. 힘들고 아파도 아랑곳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생기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뿌리 뻗는 들꽃을 보는 듯하다.


우린 모두 황무지 같은 곳에 뿌리를 내린 들꽃 같은 거라 생각한다. 꽃 피우기는커녕 가만히 서있기도 버겁다. 메마른 땅을 파고들어 봤자 꽃 피울 수 있는 확률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꽃 피우지 못할 거 적당히 뿌리 뻗고 살아도 될 것 같다. 옆에서 악착같이 뿌리 뻗지만 똑같이 꽃 피우지 못한 이를 보며  '미련한 놈, 사서 고생하네.'라며 혀를 끌끌 차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악착같이 뿌리 뻗는 이를 마냥 어리석다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활짝 핀 꽃을 보고 감탄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단단한 땅을 깊게 파고든 뿌리를 보고도 감탄하곤 한다. 둘 다 그 생명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멋진 이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뜬금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이 멋지다고 생각한 건 그날 술이 좀 많이 들어가서 일거다. 그럴듯한 글을 쓰려 노력하는 나도 친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 것 또한 취해서 일거다. 원래 술이란 게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고 같이 자리한 사람들끼리 묘한 동질감 같은 걸 만들어내지 않는가. 새삼 술의 순기능에 감탄하게 된다. 내가 이래서 술을 못 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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