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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Feb 23. 2023

그토록 싫어하던 직장 상사와 내가 닮아간다 느낀 이유

일순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직장 동료 앞에서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에게 왜 화가 났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동료가 그 뒷담화에 적절히 맞장구 쳐주자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라는 쾌감까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콧방귀를 뀌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결국 구겨버리기 수첩을 꺼내 글을 적었다. 생각이 너무 많을 때마다 적고 구겨버리는 용도의 수첩이었다. 그 친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계속해서 적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적었다. 그러고 나선 품평이라도 하듯이 찬찬히 그 글을 읽어봤다. 어쩌면 여기서도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라는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사람은 굉장히 잔인한 사람이구나. 한 사람에 대해 낱낱이 분석하고 파고들어 그 안의 결함을 찾았다. 그 결함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고 비판해야 효과적인가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그건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말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악의가 가득한, 잔인한 글이었다.


이런 잔인함을 목격한 적이 있다. 입이 험한 선배 아래에서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있는 후배가 있었다. 일을 못한다고 거친 욕설을 들어먹었다. 그 사람은 본인이 못하기 때문이라고 다른 사람들 고생시키고 있으니까 욕 먹어도 싸다고 본인을 탓했다. 못하는 만큼 열심히 해서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싶어 했다. 그렇게 부족한 부분을 메꾸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도 남들만큼 일을 할 때가 올 것이라고, 그땐 조금 떳떳이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위안했다고 한다.


그날도 이리저리 공장을 뛰어다니다 땀에 푹 젖은 작업복을 말리며 2층 운전실에 잠시 앉아있었다 한다. 그러다 문득 1층 휴게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렸다고 한다. 계단에 조용히 앉아 들어보니 입 거친 선배와 다른 선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충 '걔는 안된다, 여기 오면 안 됐다, 글러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라고, 그래도 지켜봐 주라고 하는 다른 선배의 말을 입 거친 선배는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사코 그 친구의 단점을 낱낱이 까발리며 그 친구는 글러먹은 친구라고 설득하려는 말을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땀에 젖은 작업복이 서늘하게 말라감을 느꼈다고 한다. 저런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6년 차쯤 되고 잘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일이 손에 붙어 나름대로 요령도 생겼다. 항상 막내였었는데 이젠 하나둘씩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도 회사에서 보인다. 이전처럼 회사에 다니는 것이 괴롭지만은 않아 졌다.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버린 걸까. 이젠 퇴직해 버린 그 입 거친 선배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내가 쓴 글에서 그 선배를 만났다. 내 글을 읽다 보니 그 선배가 어떤 마음으로 날 험담했었는지 그 악의가 이해 돼버렸다. 어느 순간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선배를 닮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노트를 찢어 구겨버렸다. 세상에 한 명쯤은 나와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걸 억지로 맞추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을 거다. 그래도 그 사람의 주변 사람에게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못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설득하려는 이유가 대체 뭔가.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을 못된 사람이라고 공감해 버리면 그 사람은 조금 더 혼자가 되는 거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 사람이 혼자가 되도록 만들려는 건가. 사람을 너무 미워하다가 잔인해지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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