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의 『거대한 사기극』을 읽고
새벽 4시 김과장은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자기계발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수를 하고 인증샷을 SNS에 남깁니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합니다. 명상을 통해 나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명상이 끝나면 독서를 합니다. 책은 유명한 자기계발서 『부의 추월차선』입니다. 김과장은 저자의 말에 공감하여 부자가 되는 방법을 배웁니다.
출근길 전철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주식투자 관련 동영상을 봅니다. 앞으로의 유망주와 전망 등을 알아둬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영어공부를 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토익점수 900점 이상은 있어야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퇴근 후 중국어 학원에 들러 중국어 회화를 연습합니다. 지인들은 중국의 발전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력을 생각해서 미리 중국어를 배워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김과장은 분위기에 휩쓸려 미술학원에도 등록했습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체육관입니다. 오늘은 P.T가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배 나온 아저씨는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패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멋진 모습을 생각하며 비지땀을 흘립니다. 집으로 돌아온 김과장은 TV를 켭니다. 마침 유명한 의사들이 나와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내일 새벽에 인증해야 할 ‘미라클 모닝’을 위해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듭니다.
김과장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혹은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입니다. 김과장을 둘러싼 환경이 자기계발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불안감을 조성하지요. 결국, 김과장은 자기의 발전과 성장의 수단인 자율적 자기계발이 아닌 강제적 자기계발을 당하고 있습니다.
김과장의 사례에 나타난 계발의 방식 모두, 자기계발의 중심축에 속합니다. 윤리적 자기계발과 신비적 자기계발이지요. 윤리적 자기계발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외적인 발전을 목표로 합니다. 토익 공부나 운동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신비적 자기계발은 윤리적 자기계발에서 파생된 개념이지요. 자신을 둘러싼 문제의 원인이 바로 ‘내 안’에 있으므로 ‘나’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계발은 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변질되었습니다.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거나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삶의 기준이 됩니다. 사회는 상대적인 빈곤이나 뒤처짐을 자기계발의 실패로 여깁니다. 여기서 자기계발이 수단이자 목적이 됩니다. 지금의 자기계발은 ‘부자가 되는 법’, ‘일 잘하는 법’에 집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신비적 자기계발이 이 틈을 파고듭니다. 신비적 자기계발은 심리학이나 위로의 형태를 빌어 실패를 외면하게 하지요.
이원석은 『거대한 사기극』에서 자기계발이 순종적인 노동자를 산출하는데 효과적 이데올로기라고 말합니다. 거대자본이 자기계발의 방식을 빌어 노동자를 길들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계발 시장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거대기업과 자본에 기대어 불안과 자기계발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자기계발 실패의 보완을 위해 신비적 자기계발이 발생했음을 밝힙니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과 같은 시리즈가 자기계발의 탈을 쓰고 부리기 쉬운 노동자로 만듭니다. 기업은 이런 책을 의무적으로 읽게 함으로써 지배를 정당화하고 노동자를 세뇌합니다. 자기계발 시장과 거대기업의 영합으로 자기계발 상품이 지속적으로 판매되는 순환이 이루어집니다.
실제 도서관이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가장 눈에 띄게 큐레이션 된 책들 대부분이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들입니다. 경제전망, 부자가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나를 위로하는 방법 등 윤리적, 신비적 자기계발서가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이나 ‘위로를 위한’ 같은 추천사가 적혀 있지요. 이것들을 읽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뒤처진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흔히 접하는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기계발의 강제성이 숨어있습니다. 한때, 아이들과 성인들 모두 열광했던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인공 팬더 ‘포’는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국수집 점원입니다. 하지만 쿵푸의 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다양한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포는 내면에 집중하고 자신이 원래 강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의 평화를 이루게 됩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노력에 따라 누구나 무림의 절대 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영화는 평화를 지키는 종족의 일원으로서 남다른 태생의 주인공이 원래 가지고 있던 무술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계발함으로써 사회지도층이 되는 성공스토리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타고난 능력과 성공을 당연시합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혈통과 학습조건 같은 환경 조건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요. 노력하는 천재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을 내재화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계발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는 사회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하여 쓰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만들어진 불안과 연계됩니다. 시민은 불안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계속 채찍질하며, 지배층은 알아서 발전하는 인력을 부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배층에 지배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도구로써 자기계발 콘텐츠가 소비됩니다. 무의식중에서 사람들의 혈통이나 가문 등과 같은 환경 조건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지요.
자기계발의 덫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원석 또한 비판적 지성이 자기계발과 상극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거대한 사기극』에서 자기계발의 기원부터 문제 현상이 발생하는 시점까지 서술하며 비판적 자세를 유지합니다. 비판의 형식이 지나쳐 직접적인 인용이나, 지나치게 날 선 표현으로 ‘거칠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례로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날 수 없다’라고 단정하며, 독자를 당황케 하는데요. 그 이유로 사회적 병폐와 교육환경 등을 설명하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그는 자기계발의 한계를 지적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자기계발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과장되거나 강박으로 이어지는 자기계발의 특성이 문제입니다. 무조건적인 자기계발은 강박과 같은 부작용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신비주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상이 변하기만을 바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계발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기계발에 임해야 합니다. 더불어 자기계발에 대한 무조건적 의지나 신뢰는 비판적 시각을 흐리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글쓴이
질풍노도.
사유의 질풍노도를 겪고 있으며, 웃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
이 글은 글맛공방 ‘서평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