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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형 Jul 28. 2020

결과는 중요하고 과정은 소중하다.

결과는 실패했지만 과정은 아름다웠던 전액 환급 챌린지.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한번 뱉어내면 주어 담을 수 없는 말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보다

글로 수백번 고쳐 쓴 나 자신이 더욱 나에 가까웠기 때문에.

싸이월드에 중2병 도진 허세 가득한 글들을 적어나갈 때도 그게 진짜 나라서 좋았다.
현실은 찌질해도 멋진 이상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각 잡고 어떤 글을 쓰려면 퇴고 과정에 몇 날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정말 글을 쓰고 싶을 때만 글을 쓰곤 했다.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마침내 2년 동안 그토록 오고 싶었던 크리에이터 클럽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커리큘럼 중에 낯선 생각이 가장 끌렸고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돈 내고 이용하는 건데 첫 시즌에 계속 팀원들과 논쟁만 하다가 감정만 상해서 그만두거나 블랙카드 맞고 아웃 조치당할 미래가 너무 선명하게 그려져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쓰기 팀은 글을 의무적으로 써야 할 것만 같아서 처음엔 다소 거부감이 느껴졌다. 인기 커리큘럼이라는 나다시보기와 작은 철학은 물론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자칫 소비적으로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결국, 내게 남은 선택권은 기름붓기뿐이었다.
진취적이고 성장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늘 그것을 지속 해내갈 꾸준함이 부족했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가진 고질적인 결함이었다. '평생을 바뀌지 않았는데 기름붓기에 참여한다고 과연 내가 바뀔까?'라는 의구심은 여전히 있었지만, 회사의 모토인 열정에 기름붓기에 기반한 커리큘럼이고 2년간 크리에이터 클럽의 성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태어나서 일기를 꾸준히 써본 적이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펑생 무언가를 꾸준하게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꾸준함이라는 능력을 기르고 싶어 매일 일기를 쓰고 일정한 충족 조건을 채우면 멤버십 비용을 전액 환급해준다길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기름붓기 팀 카톡방에 인증했다.

1주일쯤 지나서 고비가 왔다. 밤늦게 퇴근하거나 약속이 있어서 늦게 집에 돌아와서도 일기를 써야 하는 게 아주 큰 고역이었다. 혼자 일기를 썼다면 분명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팀원들이 본인만의 작심 2주 목표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팀원 중 한 명이 내가 꾸준히 일기를 쓰고 인증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도 포기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듣고 나니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달이 넘어가자 이제는 그동안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서히 일기를 쓰는 게 일상으로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결국, 3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냈다. 일기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가끔 지난날들을 일기장을 통해 돌아볼 때면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고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는 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레 근무 스케줄이 바뀌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정기모임에 1번 결석하게 됐고, 다른 조건들을 모두 채웠는데도 불구하고 전액 환급 챌린지는 실패했다.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중에 전액 환급 챌린지에 도전했던 사람들 중 30일 동안 일기를 꾸준히 쓴 사람이 나를 포함해 8명도 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3달 동안 일기를 썼던 경험은 나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2주마다 나 다움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전액 환급 챌린지는 실패했지만 도전했던 과정만은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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