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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레순 Jan 10. 2022

이것은 나에 대한 폭로의 글이다

어느 유튜브 1일 평균 8.7시간 시청자의 고해성사

나는 겉과 속이 매우 다른 인간이다. 


낮의 형광등 아래에선 선한 웃음을 짓고 밤의 가로등 아래에서는 그 웃음 뒤에 몰래 숨겼던 쪼잔하고 날카로운 칼을 힘껏 쥐는 인간이다. 어느 인간이라고 해서 겉과 속이 똑같을 수가 있냐고 하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욱 고도로 모순적인 편에 속한다. 나는 앞으로 그 모순에 대해서 폭로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나쁜 생각을 하다가 들킨 적이 있었다. 아니, 들켰다기 보다는.. 어떤 어른이 장난 삼아 슬쩍 던진 말에 어린 내가 괜히 뜨끔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감정을 느끼는 것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마음을 품는 것조차, 종종 혼자서 몰래 했다. 누군가를 미워 하는 마음은 왜인지 들키기에 좋아하는 마음보다도 더욱 부끄러워서 형광등 아래의 웃음을 더욱 과장되게 크게 만들었다. 가끔씩 드는 발칙하고 나쁜 상상들은 그것이 나의 정체성으로 갈음되어버릴까 두려워 서랍 속에 고이 접어 꼭꼭 숨겨두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 기록했다.


감쪽 같았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재생 중인 어느 디제이의 믹스셋, 구독 중인 구독자 수 1000명 이하의 유튜브 채널, 혼잣말로 가득 채워진 산문시의 몇 구절, 손익분기점은 넘을 수 있나 싶은 듣도 보도 못한 독립영화, 그리고 그것을 상영하는 곧 문을 닫을 것 같은 작은 영화관들... 그런 것들로 채워진 나의 SNS는 완벽하고 깨끗해보였다.


사실, 사운드 클라우드는 거의 쓰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믹스셋이라고 했으면서 그 믹스셋을 세번 이상 들어본 적이 없다. 영감과 지식을 주는 유튜브 채널만 보는 척했지만 새벽 5시까지 아프리카 채널에서 방송하는 비제이들의 생방송을 달리기도 한다. 시집은 몇 만원씩 사면서 단 한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고, 특히나 산문시의 경우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세줄 정도 읽다가 넘겨버리기 바쁘다. 2시간은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 혹은 큰 이벤트나 대사 없이 서정적인 흐름과 이해할 수 없는 대사들로 비벼진 독립영화들을 보고 개운하게 잠에서 깨어 영화관을 나선 적도 많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믹스셋은 정말 좋아서 듣다가 운 적도 있고, 어떤 유튜브 채널은 너무 좋아서 한 영상만 여섯번, 일곱번씩 본 적도 있다. 어떤 시는 정말 좋아서 종이에 열심히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기도 했고, 어떤 영화는 러닝타임이 4시간에 육박하는 데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관람하고, 영화관을 나와서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은 적도 있다. 어떤 작은 인디 영화관은 실제로 스무살 때부터 자주 가서 나만의 추억이 있는 곳도 있다. 나는 그런 나를 사람들이 좋아해준다고 생각해서 보여지는 모든 곳에 나의 그런 모습만 보여줬다. 매력적인 나의 모습만 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나를 모르겠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조차도 나를 속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끄럽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까짓 거 쪼잔한 마음 좀 들키면 어떤가. 그냥 다 말하자.

그렇게 나만 알고 싶은 독점욕과 나의 취향이 이정도다 자랑하고자 하는 감성적 허영심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만 홀로 남았다. 


꼭 다 알아야 하나? 모든 것에 솔직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연습의 일종이다. 인간은 연습을 반복하다가 죽는다. 어떠한 완성에 이를 때까지. 하지만 그 완성은 사실 환상에 가깝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소비하는 모든 콘텐츠를 소개함으로써 나를 폭로하는,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추천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 대한 폭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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