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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레순 Jun 21. 2022

EATFLIX 2022 / ch.03 : [MUSIC]

Music always makes me ---!



추억은

BGM을 타고.

80년대생 이책임의 EATFLIX


카카오톡으로 사진 하나가 왔다. 십수 년 전 빡빡머리의 나와 그가 있고,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시절은 있지'라는 멘트가 달린 싸이월드 캡처 화면이었다. 그때의 부끄러움이 왜 지금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그 시절은 대체 끝나지 않는 건가. 사진도 멘트도 아니 그냥 싸이월드를 했다는 그 행위조차도 창피했다. 왜 그렇게 살았던 걸까. 아니 원래 산다는 거 자체가 이런 건가, 아님 조금 더 나이가 들어야 티브이 속 사람들처럼 아! 그때 참 아름다웠지라고 말하려나.



십 년을 훌쩍 넘긴 지난 기록들이 거기 있다. 머릿속의 지난 시절은 대체로 추억인데, 그 시절의 기록은 종종 소름을 돋게 하고,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그때 멋지던 것들이, 그때 심각했던 것들이 그리고 그때 인생의 전부였던 것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고 쉬프트 딜리트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언젠가 술에 취해 계정을 삭제해버려서 싸이월드가 열린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스크랩해간 사진들은 아직도 거기에 남아 나의 창피함이 되어버렸다.



고통을 잊기 위해 더 고통스러운 것을 마주하는 것처럼, 오그라드는 창피함을 잊기 위해 더 창피한 무언가를 꺼내본다. 십수 년 전 봄에 봤던 시트콤 <소울메이트>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자꾸만 꿈에서 만나고, 우연처럼 스치고, 보자마자 마음에 끌리고, 그리하여 잘 만나고 있던 서로의 연인을 버리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대충 환승이나 바람인데 '소울메이트'라는 그 시절 근사한 단어로 포장한 이야기다. 스물몇 살이던 그때는 그 세상을 믿었다. 어딘가의 운명의 여자가 반드시 있으며,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통하는 그런 소울메이트가 존재한다고.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거나, 우연찮게 대한극장 앞에서 몇 번 마주치면 괜히 설렜고 라쎄린드 음악을 비지엠으로 깔고 아무도 모르게 동욱이자, 필립이자 료헤이로 살았다.




그리고 최근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나는 두 손을 다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직업이라 생각하는 픽업아티스트들이 여기 있고, 피식 대학 혁이의 잘생긴 버전이 50분 동안 연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좋은 것은 단 하나, 각 편마다 소개되는 그때는 낯설고 좋았던 음악들이다. 지금도 두 눈을 감고, 음악만 들으면 그때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 2000년대를 어른으로 살아온, 그리고 그때 제법 사랑을 했거나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라면 다시 켜보자. 그리고 그들이 나눠먹던 곱창 대창 혹은 유진의 눈물이 담긴 고등어구이를 먹으며 이 음악들을 플레이하자.



♬ This is not a Love Song - Nouvelle Vague

♬ Stop in the Name of Love - Bang Gang

♬ C'mon Through - Lasse Lindh

♬ Since You`ve Gone - Laurel Music

♬ Fly Me to the Moon - Olivia

♬ Milod - Brynhildur

♬ The Servant - Coco Suma

♬ In a Manner of Speaking - Nouvelle Vague

♬ The Stuff - Lasse Lindh

♬ Play Our Love`s Theme - Toki Asako

♬ Goodbye to Romance - Lisa Loeb

♬ Everyday I Fall in Love Again - Linus Of Hollywood



추억에 푹 빠지며 오늘도 EATFLIX!






쓰기의 탄생

90년대생 오대리의 EATFLIX


벌써 두 달이 흘렀다. “이번 주제는 음악 어떠세요?” 패기롭게 주제를 던져 놓고, “이번주 주말에 꼭 쓸게요”, “5월 31일까지 꼭 쓸게요”라던 다짐을 한지 두 달이나 지났다. 업무용 파일을 전송하기 위해 사수와의 카톡 창을 켤 때마다 저 위에 이미 도착해 있는 3번째 잇플릭스 글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수는 내게 단 한번도 “너 그래서 언제 올릴 거니?”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6월엔 꼭 올릴게요..”라고 두 번 정도 말했다. 6월이 열흘 남짓 남은 지금껏, 나는 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글을 띄엄 띄엄 읽고, 짜릿한 도파민 가득한 자극성 콘텐츠를 주구장창 보면서, 마치 글쓰기에 미쳐있고 지쳐있는 작가라도 된 것 마냥 몇 페이지 읽지도 않은 책의 몇쪽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바빴다.


책임님 죄송합니다 파일 저장 기간 만료도 됐네요


하지만 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보는 것과 먹는 것에 대해서 쓰는 것이 어려웠다. 뭘 봐도 큰 감흥이 없고, 음식을 먹는 것도 맛을 느낀다기보다 허기진 마음에 무언가를 꾸역꾸역 넣는 것처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고는 맛있는 걸 많이 먹긴 했지만) 아무래도 ‘인생 노잼 시기’라고 일컬어지는 권태를 겪는 것 같았다. 내게는 마음 속에 꿍얼거리는 소리들을 듣는 것부터가 글쓰기의 시작인데, 그것을 듣는 것이 싫기도 했다.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니까,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자극 받을 수 있는 것들만 좇았다.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내향적인 나를 광장 속에 가두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다 만나는 적적한 기분을 마주하지 않고 애써 외면한 채 새로운 약속을 잡았다. 공허함은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 뿐임에도 나를 괴롭히기 바빴다.



부산을 간 것도 텅 빈 일정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여행을 할 때 꼭 나만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함께 이동할 때도 꼭 따로 앉아야 하고, 어딘가를 구경하거나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혼자서 걷거나 앉아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이번 부산행은 걱정이 많았다.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쥐고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비어 있는 시간들이 내게 주어졌고, 그 강박을 조금이나마 해운대 모래사장에 묻어두고 온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최근에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했는데, 그들이 배려 아닌 배려를 해준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단순히 일정만 채우려고 잡았던 약속이 어떤 충만한 마음을 만들어준 것 같았고, 비로소 나는 이제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몸이 아주 피곤했음에도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어떤 음악도 듣기가 싫어서 이어폰도 가방에 넣고 꺼내질 않았는데, 푹 꺼졌던 마음이 여정 동안에 금세 부풀어 오르기라도 한 것인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디제이의 믹스셋을 듣고 싶어서 미리 다운로드까지 받았다. 그동안 화면도 끄고 배경음악처럼 깔아놨던 음악이었는데, 화면까지 키고 디제이의 표정과 움직임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이 사람도 분명 어떤 마음을 만났을 때 무시하지 않고 오밀조밀 만져서 이것을 만든 거겠지, 하며 미루어두었던 글을 쓰고, 유예시켜둔 생각과 마음들을 만나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김포공항에 도착해서야 죽은 줄 알았던 나의 쓰기에 가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디제이 글리!


https://youtu.be/09QoUxnnA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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