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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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윤석열 정권에서 묘청의 난을 생각하는 이유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77
77. 윤석열 정권에서 묘청의 난을 생각하는 이유
“내가 만든 정권 내가 무너뜨릴 수도 있는 거죠. 그게 뭐 대수입니까.”[주기자live] 나날이 처음 사는 오늘이다. 누구든 ‘오늘’을 처음 산다. 처음 살지만 오늘을 경이롭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어제와 아롱이다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삶, 그 나날이 못 보던 풍경을 본다. 그 풍경들은 ‘경이롭다’를 가볍게 뛰어 넘은, ‘경악스런 사건’들로 일신(日新,날로 새롭고) 우일신(又日新,또 날로 새롭다)한다.
“검찰이 22대 총선 당시 김건희 여사의 창원 선거구 공천 개입 의혹 관련자로 지목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과 명태균 씨 간 금전거래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낸다.” 이 보도의 주인공 김영선이란 이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무슨 잘못이냐며 수조의 물을 손으로 떠먹은 ‘수조괴담’의 장본인이다. 위 “검찰이…”는 저이가 대한민국 5선 국회의원이 될 때 일어난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의 한 지류’를 보도하는 내용이다.
‘명태균 게이트’에 거론되는 이름도 김종인, 이준석, 천하람 등 정치인에서 칠불사 스님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홍매화’도 운운의 주술적인 삽화도 섞어드니, 그야말로 ‘전설 따라 삼천리’의 신 버전이다. 이러니 국민들도 “윤석열·김건희 협박하는 명태균의 당당함에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기사를 보고 들어도 예사로 넘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사 연구초』에서 거론한 묘청의 난이 오버랩 되는 이유다. 선생은 이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1,000년 래 제1대 사건’이라고 평했다. ‘묘청의 난(妙淸-亂, 1135년 1월 19일(음력 1월 4일)~1136년)’은 고려 인종 때 승려 묘청과 정지상(鄭知常,?~ 1135) 등이 일으켰다.
‘묘청의 난’이 일어 난 시점, 고려는 474년 역사의 딱 중간 지점인 1130년대 허리를 지나고 있었다. 200여년을 지나는 고려는 여기저기 악폐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고약한 것은 외척의 득세였다. 그 원인은 고려가 ‘여인 천하’였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딸을 낳으면 모두 궁중으로 들여보내 가문의 권세를 드높이려 했다. 대표적인 집안이 인주이씨(仁州李氏)였다.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공주로 피난 갔을 때 공주 절도사였던 김은부가 세 딸을 바쳐 모두 왕후로 만든 게 발단이었다. 이 김은부의 아내가 바로 인주이씨 이허겸의 딸이었다. ‘이자겸(李資謙,?~1126)의 난’은 이때 이미 예약되어 있었다.
고려 16대 왕 예종(睿宗)의 왕비가 이자겸의 딸 순덕왕후이다. 1122년 4월, 예종이 등에 난 종양으로 병석에 누운 지 한 달 만에 갑작스레 사망하자 14세의 어린 왕태자 해(楷)가 왕위에 올랐다. 이가 고려 제17대 왕 인종(仁宗)이다. 왕의 장인이자 외조부가 된 그는 사위인 인종에게 두 딸을 다시 시집보냈다. 인종에게는 두 이모였으니 그야말로 ‘경악스런 일’이다. 이것이 1126년(인종 4) 2월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의 모태이다. 당연히 이 시절 안으로 왕권은 휘청거렸고 백성의 삶은 곤궁했다. 밖으로는 거란과 북송을 잇달아 누른 금나라가 고려에 사대를 요구하는 등 국제 정세가 요동쳤다.
‘묘청의 난’은 이러한 국태민란 속에서 일어났다. 묘청은 ‘금나라 정벌론’과 ‘서경 천도론’을 강력히 주장하며 세력을 규합했다. 그 바탕은 음양비술로 이른바 ‘주술적인 풍수설’이었다. 물론 김부식(金富軾,1075~1151) 등을 중심으로 한 개경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극력 저항하였다. 결국 묘청은 서경(西京,평양)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으로 하는 대위국(大爲國)을 선언하였다. 이후 고려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오늘도 언론을 뒤덮고 있는 ‘명태균 게이트’, ‘무소불위 김건희 왕국’, …‘대한민국 역사상 제2대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를 ‘경악스런 일’들이 일어난다. ‘윤석열 정권’에서 ‘묘청의 난’을 생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