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Communication
그러면 그렇지
-박재화
오늘도 테리는 내 발치에서 아침을 맞는다
나와 함께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한
밤의 꿈길을 건너서,
테리는 우리 집 개 말티즈
생후 두 달 만에 와서
열여섯 해를 같이 지난다
개와는 거리가 먼 내 대신
만신창이 아내의 분신되어 지내더니
언제부턴가 나를 따른다
개들은 영민해서 집안 서열을 알아챈다는데
어흠, 그러면 그렇지
이 집의 가장을 이제 알아보는구나
한데, 녀석의 눈빛이 어째 전과 다르다
명퇴 후 뒷방으로 내몰리는 처지를 안다는 투다
꼭 그때부터다
녀석이 내 곁을 맴도는 것은
미음
-박재화
열몇 해 동무해 온 말티즈 두 녀석
나보다 아내를 독차지하는 쌍둥이
어느새 이빨 무너져 먹이를 못 먹는다
수술받은 뒷다리에 좋다는 관절사료
일일이 가위로 몇 조각내서
그 냄새도 뭣한 것들을 믹서에 갈아
닭가슴살 버무려 주면 겨우 몇 입이다
사람으로 치면 팔십 줄?
야성을 잃은 녀석들이 그래도
서로 남의 그릇 기웃댄다
유난히 절룩이던 세상 이내 버리신
아버지 자리보전 이태동안
나, 미음 몇 번이나 떠 넣어 드렸던가
위 시들에 나오는 말티즈 두 녀석이 우리 곁을 떠났다. 떠난 지는 몇 달이 되었지만 그동안 그 녀석들의 죽음에 관해 쓸 수 없었던 것은 슬픔의 양이 지나쳐서도, 삶이 바빠 그들을 잊어서도 아니었다.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꼭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그 녀석들이 살아 있을 때 나의 아버지가 쓴 시들을 옮겨 적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다.
테리는 사실 앤디에 비해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몸속 진액 다 뽑아 먹힐 때까지 키운 자식들은 타국에 살아 시차가 난다느니 음력 달력을 쓰지 않아 생일이고 명절이고 몰랐다느니 하며 연락에 무심하고, 자기 삶을 챙기기에도 버거워 부모의 슬픔과 외로움을 모른 척할 때 방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의 눈물을 핥아 주었던 것은 앤디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몇 시간을 우는 어머니의 불 꺼진 방에서 동상처럼 가만히 곁에 앉아 같이 울었던 것은 앤디여서 어머니는 가끔 말하곤 했다. 얘는 꼭 사람 같아... 내 맘을 아는 것 같아.
반면 테리는 앤디에 비해 야생성이 살아 있는 편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제법 입질을 하기도 하고 먹이에 대한 욕심도 있고 어머니가 울 때 앤디처럼 들여다보는 면이 없어서 사람의 희로애락 같은 것,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세상 타이틀을 내려놓고 뒷방으로 내몰린 것 같다고 느꼈던 그때부터 아버지 곁을 맴돌았다니, 전혀 몰랐었다. 따로 산지 오래되어 그런 일상이 내 부모와 내 개들에게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아버지의 시를 읽기 전까지.
앤디가 갑자기 떠난 지난여름. 혼절할 만큼 울던 어머니가 그래도 정신을 차렸던 것은 남아 있는 테리 때문이었다. 테리라도 잘 지키자, 얘가 얼마나 우리와 더 함께 할지 모르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키울 거야, 다짐했던 것을 알기라도 하는지 테리는 갑자기 곡기를 끊었다. "아니에요 엄마, 저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마세요. 엄마도 많이 아프잖아요. 이제 엄마 그만 고생시킬게요."라는 듯이... 앤디의 냄새를 찾아 미친 듯이 이 방 저 방 베란다까지 백내장이 잔뜩 껴 잘 보이지도 않는 눈 때문에 코만 의지하여 헤매더니 앤디가 이제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어떤 것도 먹지 않았다. 아직 이빨도 많이 남아 있고 걸을 수도 있고 그전에 사료를 곧잘 먹곤 했었는데... 그렇게 테리도 앤디를 따라갔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 형제가 죽었다고 곡기를 끊고 따라 죽는단 말인가. 자식을 앞세우거나 애착관계 좋은 부모, 금실 좋은 배우자의 죽음에 영향받는 경우는 많지만, 사람도 형제의 떠남에 온몸이 부서질 때까지 슬퍼하고 따라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우리 개들은 이렇게나 우애가 좋았다. 그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우리 개들의 자랑거리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정도로 똑똑한 천재견도 아니고, 애교가 많지도 않고, 재주가 많지도 않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닌 지랄견 말티즈들이었지만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을만한 우애가 있었다. 16년을 서로 그렇게 데면데면하더니 하늘나라 갈 때는 꼭 그렇게 같이 가야 했냐. 테리야... 너라도 조금만 더 살아 주지.
얼마 전 아들내미 친구 엄마이자 동네 주민인 M의 고양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서로 집을 왕래하며 놀 때 한 녀석은 사람을 무서워해서 늘 침대 밑에 숨어 있어 얼굴 보기 힘들었고 다른 한 녀석은 그나마 사람을 따르는 편이어서 아이들이 덥석 덥석 안아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순둥이였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매우 조용하고 새침해서 엄마들이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며 놀 동안 가만히 우리를 관망하고 있어 고양이들이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벌써 3년을 보아 왔던 고양이들이 어느새 몇 주 상간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 쓸쓸했다. M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웃으면서 '브레일을 따라 클레오도 갔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앤디를 따라 간 테리의 누나로서, M의 심정을. 그리고 브레일과 클레오, 이 두 고양이들이 비록 평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어쩌면 사람보다 개와 고양이는 모든 면에서 낫다.
개와 고양이의 죽음 이후... 천국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거기에 앤디도, 테리도, 브레일도, 클레오도,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사랑했던 사람들과 동물들이 먼저 가 있을 뿐. 그들이 남기고 간 자죽들을 어루만지며 아플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그곳에 간다. 그래서 조금 더 겁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너무 특별했던 개와 고양이의 죽음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