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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Oct 27. 2021

만학도의 삶

치열했던 과정도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지금까지는 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말이다. 

소위 말하는 인생의 3대 ‘큰 문턱’을 넘고 나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들이 생긴다. 

누가 시켜서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하고 싶은 공부이다. 

좀 더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현명한 엄마가 되기 위해,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기 위해,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나름의 ‘공부’가 필요하다. 

늦은 나이 대학원에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였다. 

시한부 선생님이지만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대한민국 해양경찰 중국어 선생님’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였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학술(Academic) 중국어가 아닌 실용(practical) 중국어 교수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성인 학습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물론 특수분야 업무 환경에 대한 이해와 그에 적합한 교수학습 방법 등을 함께 고민해야 했다. 


대학 모교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대학시절에도 고민을 들으면 시원하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시곤 하셨다. 

나의 이러저러한 상황을 다 들으신 교수님은 나에게 딱 맞는 학교가 있다고 하셨다. 

다만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대학은 서울에 있었고 내가 근무하던 해양경찰교육원은 전라남도 여수에 소재하고 있었다. 합격여부보다 통학이 문제였다. 


여수에서 서울을 오가야 한다. 

다행히 KTX가 있었다.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하고 그 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휴가를 썼다. 

수업을 마치고 거의 뛰다시피 용산역으로 가서 마지막 KTX를 타면 자정이 훌쩍 넘어서 여수에 도착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하루 종일 남편이 육아를 전담했다. 당시 큰 아이가 7살, 작은 아이가 3살이었다. 가족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분명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대견하다. 


오고 가는 KTX 안에서는 부족한 공부를 했다. 

나이를 먹고 오랜만에 공부를 하려니 머리와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동기 선생님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도 부족할 텐데 수업시간 외에는 짬이 나지 않았다. 

직장도 다녀야 했고 아이들도 돌봐야 했다. 그렇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었다. 

잘하고 싶었다. 


힘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다. 

헐레벌떡 도착해 교문을 통과하면서 느껴지는 교정의 풋풋함도 좋았고, 시험기간 스탠드 켜 놓고 리포트를 쓰는 것도 팀 발표 준비를 하는 것도 좋았다. 중국 교수님과 토론을 할 때도 좋았다. 

졸업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지만, 그조차도 이제는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과 실기는 배우는 족족 후배들 수업에 적용했다. 

본의 아니게 나의 ‘실험쥐’가 되어 준 후배들에게 고맙다. 

공부를 다 마치기도 전에 나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나는 불혹(不惑)이 넘은 나이에 졸업을 했다. 




무엇인가를 성취해 가는 과정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그 고통스럽던 과정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우리는 또 무엇인가에 도전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해상 근무를 하면서 마주한 험난한 상황들이 수업 강의 자료가 되고, 

전전긍긍 일과 육아와 공부를 병행했던 시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공부하는 사람이라 인식시켜 놓았듯이 세상에 헛된 수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믿는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과정들조차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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