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 잘 지내니?
나는 운동선수 생활을 하면서 5년 내내 11명의 친구들과 함께 보내다가, 갑자기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내가 흥미가 없었기도 하지만, 한해 위 선배의 괴롭힘에 공황장애가 왔기 때문이다. 정말 죽을만큼 운동이 가기 싫었던 그날 나는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한달가량 아버지는 나와 대화를 이어갔고 아버지는 학교에 이야기 했다. "우리딸 배구 시킬 겁니다"
코치와 감독 선생님은 설득하며 시간을 더 달라고 하셨지만 나는 요지부동이었고 아버지도 딸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주셔다. 농구선수 명단에서 제외되길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까워 숙소엣 자주 교과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교과서를 손에서 놓았는데, 어머니는 매번 학년이 바뀔때마다 왜 교과서를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두냐고 불만이셨다. 나는 '나중에 심심할 때 읽을 거야. 절대 버리지마'하며 어머니의 '버리고 싶은 마음'을 거부했다. 집이 작아서 어머니는 정리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운동할 마음이 싹 사라지면서 5학년때부터 모아온 교과서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어 교과서였다. 국어교과서는 안에 읽을 거리가 잔득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부터 도서대여점 책들을 어른 소설류 빼고는 다 읽었다. 더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교과서를 집어들었다는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교과서를 읽다보니 나중에는 사회, 수학, 과학 등의 다른 교과 과목에도 손이 갔다. 읽기만 하다보니 지루해서 산수, 수학 교과서를 풀기 시작했고 혼자서 2차방정식을 풀때쯤 나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왜 내가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데 선수에서 빼주지 않지? 팀의 분위기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들때쯤 중3이던 우리는 고등하교 숙소에 가서 운동을 해야한다는 소식을 전달 들었다. 나는 두근 거렸다. 나를 괴롭히던 그 선배가 있는 숙소에 가야한다니. 중3 1년동안은 그 선배가 없었기에 편했는데.. 다시 나는 선배에서 막내 후배로 들어가 그 못된 선배의 괴롭힘을 받을 생각을 하니 운동은 커녕 학교도 가기 싫었다.
일주일쯤 그 학교를 가게 되었을까, 학교는 방학을 하고 우리팀은 선배들과 함께 합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때 선배언니들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미 선배언니들이 지내는 합숙소를 가본적이 있다. 좁고. 방 2개에 20명이 넘는 우리가 복작복작 대야 했다. 나는 더이상 그 좁은 곳에 나를 괴롭히던 그 선배와 있거나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안가. 운동 안해. 이 학교로 진학 안해."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만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학교조차 가기 싫어하는지 부모님은 의아해했다. 나는 공부 핑계를 댓다. 이곳은 지역에서 공부 잘한다는 친구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나는 공부를 시작하면 꼴찌다. 그러고 싶지 않다. 실업계로 보내달라. 거기서는 중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제발. 여기 입학을 막아달라.
아버지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사실 중학교 2학년때 공부에 대해 알려준 반 친구가 모두 이곳에 입학을 해서 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지나가며 언젠가는 보게될 나를 괴롭히는 선배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학교 교정도 아름답고 선생님들도 친절하셨고, 특히 그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는 무척 좋으신 분이셨다. 이미 미리 만나봐서 잘 안다. 내가 운동을 그만두기위해 아버지와 함께 상담을 갔을때도 굳이 우리 부녀를 불러 교장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그때의 감사함과 내가 입학하지 않겠다는 대답에 아쉬워하시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 공부를 하더라도 우리 학교에 있는게 어때? 그러다 다시 운동하고 싶으면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 "
그래도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을 고집했다. 실업계로 입학을 고지하고 가자 마음이 한결 편했다. 나중에서야 내 농구팀의 친구들이 하나둘 운동에 흥미를 잃고, 실업계로 전학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마 반이상이 운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마 괴롭히는 그 선배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서야 그 선배도 선생님께 '너는 이 운동보다는 다른 운동을 하는게 어때?'라는 추천을 받고 그 쪽으로 전향을 했는데.. 전국 신예로 큰 관심을 받다가. 놀러간 스키장에서 양쪽 다리뼈가 골절되어 선수생활을 완전히 접어야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쁠 수 도 있지만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든 하늘은, 우주는 나쁜 사람에겐 벌을 주는 구나!
그런 나에게는 3년내내 같은 반 친구로 지내준 50명의 소중한 고등학교 동창들이 있다. 그들은 처음에 운동선수를 하던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왔다는 것에 놀라워 했고,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리고 배려도 많이 해주었다. 아무말 없이 수업에만 참여하던 내게 먼저 말을 꺼내고, 같이 점심을 먹고, 쉬는시간에 매점에 가서 간식을 사먹는 재미도 알려주었다. 친구끼리 학원을 가고, 하교때 불량식품이나 길거리 간식을 사먹는 재미, 여름에 다 함께 시골로 놀러가는 재미. 운동선수 생활로는 알지 못했던 친구의 우정을 알려주었다.
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날, 살찌는 것이 두려워 육류를 모두 끊었다. 유제품만 남겨둔채 달걀도 안먹었던 것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놀라워 했다.
"꼬지도 안먹어 봤어?"
가난한 집의 환경 탓도 있었지만, 나에게 길거리 간식은 생소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못 먹게하는 이유도 이었다. 불량식품은 몸에 해롭다며 늘 건강식을 챙기셨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콜라와 햄버거도 생일날이나 친구 생일날 아니고선 먹지 않았고, 피자도 마찬가지 였다. 그런 내가 신기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매일매일 학원가는 길에 새로운 간식을 소개하고 먹어보게 했다.
그때 가장 재미이었던 것은 피카츄 모양의 꽂이 돈까스였다. 돈까스가 꼬지에 꽂혀 소스를 묻히고 먹는 그 간식 거리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돈까스를 간식으로 사먹을 수 있다는 생소함도 놀라웠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동창 50명이 그런 느낌이다. 졸업전에 한두친구가 전학으르 가거나 반을 옮기고, 다시 한명의 친구가 전학을 오면서 총 49명, 48명의 친구가 한반에서 졸업을 같이 했다. 그중에 취업을 한 친구도 있고 대학을 간 친구도 있다. 그 친구들의 추억을 기억하고 싶어 나는 처음으로 졸업앨범에 참여하고 졸업앨범을 구매했다. 가난했던 우리집 사정에 큰 비용 지출이지만 꼭 간직하고 싶어서다.
실업게 고등하교라고 하면 불량한 친구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 안하고 놀러다니고 나쁜 짓을 일삼거나 불량청소년들끼리 어울리는 그런 그림. 그게 일반적이다. 아마 내가 운동선수 생활을 그만둔다고 했을때 그런 그림을 그리며 '인문계로 입학을 그대로 하는건 어떠냐?'하고 학교 선생님, 코치, 감독, 입학예정인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님들까지 물어보신 듯 하다.
하지만 그모든걸 뿌리치고 들어간 실업계 고등학교의 내 동창들은 무척 착한 친구들이어다. 공부에 열정도 있었고, 서로 친구를 배려할 줄 알며, 순간순간 칭찬할 순간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걔다가 가을 운동대회가 열리면 한마음 한뜻으로 모두 이기자 열심히 하자 똘똘 뭉치는 단체생활의 올바른 예도 보여주었다. 3년간 우리는 이겼다. 그리고 다들 잘 지냈다.
첫해에 나는 운동선수였다는 과거력으로 '체육부장'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이력을 받았다. 혹시 모를 개인적인 사항이 적힌걸 받았는데, 그날 꼼꼼히 한명한명 읽어보고 이름을 외워두었다. 무슨일이 생기면 내가 양호실로 친구를 옮기고 양호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그런일은 거의 없었고, 딱한번 양호선생님께 갈 일이 있었을때 문서를 보지않고도 친구의 이력을 말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친구들의 생각을 일일이 들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동창 50명에 대한 기억은 정말 행복함. 이게 반 학급의 올바른 예. 다사다난한 우리 반의 친구들. 그런 느낌을 받는다. 성인이 되어 다단계에 빠진 친구에게 화도 내 봤고, 연락하지 말라며 연락을 끊기도 했다. 후에 기억 나쁜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우리가 한반으로 50명이 같이 보낸 3년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나의 친구들 50명이 지금모두 40대가 되었다. 모두 어디서 지낼지 일일이 연락 할 길은 없지만, 나는 안다. 그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고 각자의 위치에서 잘 해내가고 있다는 것을. 나보다 10년은 일찍 결혼한 친구도 있고, 이미 10대 후반의 자녀를 둔 친구도 있다. 멀리서 전해 듣는 가끔의 소식에 놀라워 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지낼 것이라는 걸 안다.
한때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함께 밥을 먹고, 간식을 사먹고, 멋지다 대단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아던 친구들. 나를 공부 경쟁상대로 인정해주고 함께 자격증 내기, 성적 내기를 했던 친구, 다른 삶을 선택한 친구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담을 상세히 나누며 대화를 했던 기억도 선명하다. 하마터면 놓치고 성장했을 학생이라는 신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나의 50명의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멀리서 안부를 전한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너희도 잘 지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