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3년동안 나는 참 잘 다녔다. 좋은 사람, 좋은 일, 좋은 결과
작년에 쓴 글에 관심이 계신 분들이 계셔서 몇글자 더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2003년 졸업하고 방황하며 2곳의 회사를 잠시 다녔다. 두곳다 사람들과 내가 맞지 않았다. 한곳은 변태사장과 무척 예민한 팀장, 한곳은 친구들끼리라 나만 혼자 9시 출근. 그들은 12시나 1시나 되서 술냄새를 풍긴채 함께 출근했다. 회사 분위이가 이상했고.. 내 퇴근시간 6시에 그들은 택배를 싸기 시작했고, 택배기사님이 5시반에 오시면 그들과 함께 택배를 쌌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미안해하면서도 개선의 의지는 없어 보였다.
나는 그 회사를 자진해서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녔다는 L기업에 취업을 희망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산 끝에서 살았던 나는 을지로까지 출퇴근할 거리를 체크하고, 명동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면서 언제 어떻게 출퇴근을 하면되는지 알아보았다. 미리 회사에 대해서 알아 본 것이다. 그래도 쉽게 그 기업의 취업 공고를 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해가 되었다. 어머니와 둘째이모 덕에 이사를 서울로 할 수 있었다. 강북구 끝이라 비록 서울보다 의정부, 남양주가 더 가까운 곳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지하철 한두번으로 40분이내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였다. 일산 끝 보다는 가까웠다. 회사 계약직 공고를 기다리며 집근처 아르바이트를 찾아보았다. 언제든 면접을 가야하고, 붙으면 회사를 주말, 늦은 저녁 아르바이트만 찾아보았다. 다행히 집근처 자동차 극장에서 사람을 구했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취업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께 돈이 필요하다, 먹을 것이 필요하다 말을 못했다. 아르바이트로 조금의 돈을 벌면 쌀과 고추장 양파 달걀한판을 샀다. 탄수화물, 양념, 야채, 단백질을 구매한 것이다. 나머지 돈은 공과금, 통신비, 면접오갈때 차비를 남겨두어야 했다. 주말은 자동차 극장에서 저녁에 라면을 식사로 먹을 수 있었다. 운이 좋은 주에는 사장님 사모님께서 김밥도 사오셔서 주셨다. 주말은 충분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3월에 계약직 공고가 떳다. 새로 카테고리 분리를 하면서 사람을 추가 모집한 것이다. 웹디자이너, 상품 누끼, 촬영 각각 뽑고 있었다. 나는 웹디자이너에 지원했다. 사이트를 디자인 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페이지 상단에 탑이미지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사실 웹디자이너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약직으로 L기업에 들어가고 싶었고, 웹디자이너라는 당시 내세울 만한 명함은 필요치 않았다.
지잡대도 아닌 전문대2년 졸업하고 와서 몇개월 백수아닌 백수로 살면서 기다린 공고였다. 바로 넣었고, 결과는 지난번 글에서처럼 운이 좋았다. 백화점 물건중 이월상품을 대부분 판매하고 있었고, 신상품도 간혹 등록을 했다. 브랜드에서는 이월상품인 재고를 처리할 수 있어 좋았고, 우리회사 입장에서는 백화점 상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매력적인 슬로건이 고객들에게 통했다.
처음 시작은 패션잡화, 패션의류, 화장품 세가지였던 것 같다. 각각의 카테고리가 매출이 성장하다 세분화 되었다. 패션잡화 - 남성의류 - 여성의류 - 스포츠/유니섹스 - 화장품. 백화점 화장품과 패션잡화는 좋은 가격에 백화점 상품을 백화점에서 직접 포장하여 배송하는 시스템이였다. 덕분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매출도 무척 좋았다. 그다음은 여성의류 매출이 좋았다. 여성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다보니 매출도 좋았고, 온라인상에 업로드할 상품들도 많았다. 여성의류로 1년채 채우지 않고 작업하던 나는 새로 오신 대리님과 함께 남성의류 - 스포츠/유니섹스 카테고리를 맡았다.
새로 생긴, 세분화된 카테고리는 여성의류와 달리 재미있었다. 또 내가 재미있어 했기에 매출도 늘 좋았다. 대리님이 제출하는 월별 예상매출액을 항상 넘어섰다. 하루는 그 달의 20일쯤 되었는데, 대리님이 조용히 상품을 몇개 내리라고 하셨다. 목표 매출을 벌써 달성해서 다음달이 걱정이라고 하셨던 거다. 나는 담달 더 매출하면 된다며 대리님을 놀렸다. 그래도 다 받아주시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 할 수 있어 좋았다. 당시 매출이 늘 초과 달성할때라 대리님도 기분이 좋았다. 팀장님의 압박이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팁장님은 좋으신 분이지만 업무적인 면에서는 압박스타일이다. 주말에 매출이 좋지 않으면 주말 매출에 대해서 다음날 월요일 회의때 많은 분들이 혼이 났다. 그래서 주말에만 또 따로 목표 매출을 달성할 수 있도록 회사에 잠시 나와 걸어둔 상품을 바꾸기도 하고, 잘 팔리는 상품이 있으면 브랜드 창고에 가서 추가로 상품을 구성해서 찾오시는 작업도 했다. 10분 거리의 백화점에 직접 나가서 매장 매니저님들에게 트렌드나 주력 상품을 물어보시기도하고, 온라인 판매 수량을 확보하시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쇼핑몰 MD에 대해서 2가지 상반된 생각이 떠올랐다. 첫번째는 주말도 없이 매출을 위해 뛰어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바로바로 매출로 확인가능하니 능력 입증은 문제 없다는 것. 나는 두번째에 걸기로 했다. 매일 출근시간마다 지하철 무료 신문 종류별로 모조리 읽고, 카테고리별로 키워드별로 머릿 속에 정리하며 회사에 가져갔다. 더 궁금한 것은 업무 시작전에 검색해서 관련 브랜드 이미지를 저장하고 언제든 탑이미지 제작에 쓸 준비를 해 두었다.
또 회사가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어,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고등학교때 이미 교과목으로 일본어가 있었고, 나는 한자를 좋아했다. 대학교때도 일본으로 유학을 염두해고 일본어학원을 다녔던 경험이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 아르바이트 때보다 수익이 4배정도로 늘었다. 25~28만원 정도 받던 알바비가 계약직 풀타임 업무로 인해 당시 첫 계약직 월급은 수습 78만원, 정식 계약직 85만원부터 계속 오르기만 했다.
걔다가 매출이 좋은 달은 우리 카테고리가 상과 상금을 받았다. 나는 계약직으로 10만원, 20만원, 30만원. 정도 선에서 받은 걸로 기억한다. 30만원이 안되는 알바비로 생활하던 내가 100만원 가까이 수익이 생기니 의미있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다. 처음엔 회사 일이 끝나고 저녁 학원을 등록했는데, 일하다보면 자주 야근을 해야했다. 주 2회 학원을 가기에도 어려웠다.
당시에는 카테고리가 한참 성장하는 중이었고, 매출도 L기업이 가장 좋았다. 백화점 물건을 온라인에서 파는 기업은 우리뿐이었으니까, 당연할 수 밖에. 걔다가 백화점 물건이니 가격도 높았다. 온라인에 다른 상품들보다 '백화점 물건' 이라는 매리트는 고객들 먼저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매출도 매달 좋아졌고, 회사 성장도 빨랐다. 나중에 내가 퇴사를 결심할 때 쯤엔 홈쇼핑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였다.
현재는 잘 알다시피 이 L회사는 온라인쇼핑-홈쇼핑 둘다 운영중이다. 몇년전에는 동생의 지인이 L홈쇼핑에 취업을 했다. L회사 취업을 고민하며 나에게 회사 분위기를 물어왔다. 사실 나는 홈쇼핑 인수할때 홈쇼핑 웹사이트 쪽으로 가고 싶었다. 가장 일을 못하거나 눈치가 없는 친구가 그쪽으로 갔다. 초창기니 아직은 괜찮은 느낌이었나보다. 나는 사실 그 친구를 질투했다. 나보다 일을 못하는 것 같은데 내가 가고싶은 홈쇼핑 웹사이트 운영에 투입되니 그랬던 모양이다. 그땐 그냥 내 속이 좁고 솔직하게 가고싶다고 말 못했다. 내가 문제인데 회사에 처음으로 서운한 경험이었다. 그친구는 꽤 오래 L기업에서 꾸준히 일하는 묵묵한 친구였다고 한다.
"견디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를 잘 보여준 친구다.
나는 동생 친구에게 L기업의 경험이 좋았다. 내가 미련하고 바보라서 다시 오라고 했는데 못갔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으면 회사는 배신하지 않는다. 대기업 중에 가장 힘들고 빡시고 월급도 적은 편에 속한다고 하지만, 계약직인 내가 그만두고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경험해보니, 그래도 대기업이 좋았다. 내가 할 일만 할 수 있고, 이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서 일만 하면된다. 홈쇼핑으로 간다면 나는 정말 추천한다. 앞으로 회사가 성장할 일만 있으니 가면 좋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 회사는 내가 하기에 따라 적응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적당히 친하게 지내며 내 목표를 이뤄나가면 어느 회사던 적응을 할 수 있다. 다만 이왕이면 큰 회사를 가서 적응하자. 배울 점도 많고, 각자 분야가 나눠져 있다보니 빠르게 해당 부분을 배울 수 있고, 좋다. 걔다가 동생 친구는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니 나보다 시작이 좋다. 짤릴 위험성 없이 오래오래 다닐 수 있으니 목표를 세워 잘 다니면 된다.
추후에 그녀의 소식을 들어보니, 맘 단단히 먹고 들어간 그녀는 월급은 모두 저축을 하고, 보너스로만 생활을 하면서 악착같이 모았다고 한다. 몇년후 그녀는 1억이 넘는 큰 돈을 모았고, 회사근처에 집을 구해서 출퇴근시간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하는 똑똑함을 실천했다고 한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잘 다니고 있고, 회사도 좋아서 만족하는 삶이 살고있어 부럽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큰 회사는 자신의 기준과 목적을 정하고 착실히 해나가는게 답인듯 하다. 대기업에서 매일 같은 일을 한다며 지루해 하는 사람도 있고, 기준이나 목적없이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은 취업 후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라 MD의 경험치는 없다. 옆에서 본 나는 바쁘게 살아가고, 야근과 주말 출근이 기다리는 삶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 해내겠다는 마음, 성공을 위해 한 3년~4년은 적응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더 빠른 적응과 결과물이 다가온다. 나는 직접 눈으로 봤고 경험했고, 즐겼다. 그래서 L회사의 3년이 절대 후회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10년간 직장생활과 백수생활을 반복하면서 가장 좋은 회사로 기억된다.
야근을 하면 밥을 주고, 점심때는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었다. 먼 시골에서 올라온 나에게는 동료들이 유일하게 대화하며 식사하는 사람들이었고 감사했다. 일한다며 2~3시간을 꼼짝않고 앉아서 쉬는 시간엔 뭘 해야할지 모를때도 커피한잔, 물한잔, 화장실 같이 가자며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고, 금요일 퇴근 후에는 한잔 같이하자며 퇴근후 약속을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정규직 직원분들은 계약직 직원들끼리 너무 친하게 지낸다며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었고, 내 바로 위 직속상사 대리님이 일이 많으면 같이 야근하는 미덕까지 발휘할 정도로 나는 회사에 흡수되어 있었다. 그 생활이 재미있었고 신이 났었고, 즐겁고 활기찼다.
새벽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면 회사 2~5정거장 전에 내려 도보로 걸으며 새벽 공기를 마시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김밥한줄에 커피를 마시고 아침을 시작했다. 근무시간이 시작되면 대리님이 주시는 기획서에 맞춰 이벤트 페이지를 제작하고, 상품 등록이 늦어지면 누끼작업 직원을 도우며 빨리 오픈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모습들이 정규직 직원분들에게 좋게 보였음은 분명하다.
나는 L기업 이전에 이상한 회사 2곳을 만났다. 그래서 L기업 계약직이 즐겁고 좋았다. 이상한 사람도 없었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포토샵으로 작업해서 이미지를 올리고, 남는 시간은 대리님이 마구 올려놓은 상품들을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덕분에 남성의류/스포츠 라는 카테고리는 남성의류 - 스포츠/유니섹스로 분리운영할 정도로 매출이 상승했고, 다시 남성의류 - 스포츠 - 유니섹스 로 카테고리가 또 분리 되었다. 현재는 사이트 개편으로 내가 운영하던 사이트는 따로 찾아볼 수는 없다.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그때는 매출 상승으로 S기업에서도 백화점 물건을 온라인에서 판매하게 되었고. 회사마다 백화점 - 홈쇼핑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속에 내가 일하는 작은 일개미 인 것이 무척 즐겁고 재미있었다. 누가 신경이라도 쓸까 싶은 작은 존재지만, 그 속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도 아닌 3개의 카테고리로 매출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패션잡화 이미지작업 직원을 뽑을때까지 내가 잠시 맡게되어 총 3개의 카테고리 작업도 하게 되었다. 일이 3년차쯤 되니 손에 익어서 늘 시간이 남았던 덕이다.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작업하냐는 질문, 대충 작업해도 '아 이건 아닌거 같은데. 그래도 니가 하면 매출이 오르니까' 하고 내가 작업한 걸 믿고 전시해주시는 대리님, 팀장님 등이 무척 감사했다. 나도 왜 내가 작업하면 매출이 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확신은 있었다. 지금 당장 이걸 이렇게 작업하고 상품은 이렇게 전시해야 한다는 확신. 덕분에 매출도 좋았고, 나의 평가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말 할 수 있다. 내가 경험했기에.
회사는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하기 싫다, 어렵다, 힘들다 생각하면서 겨우겨우 회사를 출근한다면 당연히 생각대로 삶이 흘러간다.
반대로 회사 재밌잖아. 이거 되지. 즐겁잖아, 신나잖아. 시간안에 끝내고 칼퇴근 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회사 업무에 임한다면 분명히 또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다. 회사 분들이 날 예뻐하고 궁금해 한다. 나는 일을 잘한다. 그런 생각으로 부지런히 업무시간 내에 오전히 업무에 집중했다. 업무에 도움될 자기계발서를 읽고, 신문을 읽고 사회 분위기를 살펴봤다.
당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웰빙' 이었다. 새벽 학원을 가지 않는 날, 새벽 수영을 하고 칼퇴가 가능해진 달에는 저녁 헬스장과 요가를 다녔다. 술을 마시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나를 발전시키고 싶어서 나에게 투자했다. 2~4주에 한번 동료들과 인사동에 모여 저녁과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졌기에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에 투자했다. 취미도 가져보고, 가끔은 서울 구경도하고, 3년차 시작하던 겨울에는 스노보드라는 취미생활도 시작했다.
덕분에 더욱 회사 업무에 집중하고 즐길 수 있었고, 회사 업무를 미리 준비해서 빨리 근무시간안에 끝낼 수 있었다. 사실 혼자서 3~4개의 카테고리 이미지 작업을 하고, 남는 시간 위 상사인 MD의 상품 진열을 신경쓰고, 상품진열의 띠를 만들고, 오류가 있으면 다시 알아서 스스로 수정하고.. 그런 업무는 누가 맡기는 것이 아니였다. 내가 스스로 남는 시간 찾아서 하는 것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업무시간에 남는 시간이 있다니.
그만큼 나는 업무에 진심이었고, 회사에 진심이었고 즐기고 있었다. 덕분에 평가도 좋았고, 따르는 보상도 좋았고, 윗분들께 예쁨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인생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같은 상황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독서도 즐긴다면 계속 가능하지만 독서가 싫다 못한다 안한다 생각하면 독서는 진척이 없다. 읽어도 남는 것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독서에 임하고 메모하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그 한권의 책은 1만원 남짓 하겠지만, 나에게는 100만원의 가치보다 더 높게 다가온다.
회사 생활이 이와 비슷하다. 월급쟁이로서 억지로 삶을 위해 다닌다면 회사는 힘들다. 하지만 업무에 진심으로 즐기고 스스로 목표가 있다면 어렵지 않고 당연히 주어지는 과제가 될 것이다.
내가 다닌 L기업에는 나처럼 계약직으로 시작해서 정규직이 되신분이 있다. 그 분이 나의 상사였고 나는 그분의 대단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참고 견디며 맡은바에 적응하며 진심으로 열심히 일한 그녀에게 주어진건 정규직. 그 밑에서 일하는 나는 그녀를 잘 돕는 계약직이고 싶었다. 그녀가 성공해야 나의 일자리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게 계약직이다. 나는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내가 다닐 당시 L계약직은 카테고리마다 1~2명씩 있었다. 엠디를 제외하고 이미지제작 - 누끼 각각 한명. 엠디분이 자리를 비우면 업무전화를 대신받고 메모를 남기는 일, 엠디가 밖에서 업무처리를 부탁하면 가끔 아주 가끔 자리에서 세팅을 바꾸는 일도 더러 있었다. 내가 입사전에 이미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언니들이 있었기에 계약직 언니들의 노하우나 충고도 잘 적용했다. 역시 사람들을 잘 만난 덕이다.
그 때 언니들과는 아직도 SNS를 통해 서로 어찌 사는지 직간접적으로 연락을 알리고 지낸다. 세상이 더욱 좋아진 덕이다. 비록 만나고자 하는 공통점은 사라졌지만, 좋은 사람으로 남은 기억은 지울 수 없다.
L기업 계약직으로 같이 어울리던 사람중에 갑자기 우리랑 어울리지 않기로 한 분도 있다. 그분은 위 상사인 엠디와 더욱 친해지고 엠디분의 업무를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그 덕에 바빠져서 더이상 우리랑 어울릴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분이 엠디를 염두에 두고 업무를 배우고 싶다며 따라 다닌 것을 알았다. 그때 나도 이미 팀장님께 4년 계약직이 마무리 되면 5년차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며 귀뜸을 들어둔 터였다.
엠디분과 함께 일을 해나가던 그분은 현재는 A&G사에 취업해서(두회사가 현재는 통합 운영되는 하나의 회삭 되었지만, 쇼핑몰은 따로 구분이 되어 있다) 카테고리를 담당하는 팀장님이 되어있다. 역시나 종종 SNS를 통해 그분의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있는데, 꽤 성공한 사람으로 팀을 이끌고 있었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조용히 맡은 바 임무에 집중하고 있는 분들이 내게는 몇분이나 있다.
그러니 그게 불가능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게 되겟어? 라고 생각한 사람은 계약직 1~2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지만, 가능하다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사람은 노력에 배신당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두렵다거나 계약직은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하느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계약직으로 시작했고, 비록 월급은 정규직에 비해 무척 작을지 몰라도, 충분히 나의 맡은바 소임을 다했고, 덕분에 3년차 들어갈때 4년까지 견디고 정규직 제안을 받았음을 말해주고 싶다. 가능하다. 가능하고 이미 이룬 사람들도 있다.
두려워 말고 일단 시작하고 경험하고 노력해보자. 취업없이 백수로 지내는 것 보다는, 나는 일하기를 추천한다. 나는 백수도 해봤고, 직장인도 해봤고, 스스로 그만둬봤고, 짤려봤고, 회사가 어려워 담당업무가 사라진 곳도 있고, 프리랜서, 프로젝트 다 들어가봤다. 나의 능력의 한계도 경험하고 내가 어디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지 알게되었다. 신생회사 시작하는 곳에서 뛰어도 봤고, 그 회사에 늦게 들어온 사람들의 뒷다마에 잠시 휴식도 해봤고, 역시나 또 다시 불러주는 회사에 2번을 들어가봤다.
2003년부터 2015년도까지 나는 총 12년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정식 경력은 10년이되며, 약 2년간 백수를 경험하며 겨울마다 스노보드도 탔다. 그리고 2015년 결혼과 임신을 했고, 2016년부터 2022년인 지금까지는 육아와 그림책육아, 아이에게 온전히 쏟으며 책을 읽고, 작가로서 책쓰기를 준비하고 있다.
과정은 복잡하지만 사실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노력하고 믿고 확신하며 실천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고민하는 시간은 시간만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하루에 4~6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중 80~95%는 부정적인 생각이다. 걔다가 내일 우리는 또 어제한 생각중 80% 이상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할 시간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집중하고 노력하고 실천하는데 써야한다.
나는 L기업에 다닐때, 고민하기보다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과도 좋았고 평가도 좋았고 남은 기억도 좋다.
엠디가 바쁘다며 아무렇게 전시해놓은 상품을 보기좋게 띠로 나눠서 전시를 하고, 내가 고객일때 정리가 잘된 매장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잠시 하다가 바로 실천했다. 나중에야 매출이 거의 없던 상품들의 매출이 확 오르면서 '니가 정리했어?' 묻는 질문에.. 혼이날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맙다, 잘했다'는 칭찬이었다. 이렇게 정리할 생각은 못했다는 말도 함께 해주셨다.
그리고 대리님이 칭찬받을 시간에, 공을 혼자 독차지 하지 않고, '그 아이가 잘 했어요. 그 아이가 칭찬받아야죠' 라며 공을 나에게 돌려주신 덕에 나는 정규직 제안을 팀장님께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니 실천해라.
이런 말을 40대 아줌마가 해 주고 싶다.
만약 고민이 되고 궁금하다면, 직접 부딪혀보고 안된다면 나에게 안되는 이유를 분석하고 노력하기를 응원한다.
오늘도 당신에게 어제보다 나은 하루가 되기를 축복하며. L사 계약직 3년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