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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투 Sep 28. 2023

어린왕자의 비행사

비행사는 왜 어린왕자를 기억해야만 했을까?

비행사는 떠나버린 어린 왕자와의 추억을 글로 남겼다. 비행사에게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주에서 꽃밭으로, 꽃밭에서 사막으로 이어졌다. 사막에서 만난 비행사와 어린 왕자의 대화는 보통의 어른과 어린이의 대화는 아니었다. 비행사가 더 어린아이 같았고, 어린 왕자가 더욱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어른 같았다. 둘의 대화는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비행기가 떨어져 고장이 나던 날, 그날의 절망과 함께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비행사의 굳은 삶의 의지였다. 어린 왕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사막에서 홀로 비행기를 고치며 긴 시간을 물로만 견뎌냈을 비행사의 환상이거나 상상, 또는 신기루였을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여우가 죽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고 지나갔을 것이고, 이내 며칠을 함께 지내며 겨우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여우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비행사는 여우를 길들였을 것이다. 


사막에서는 또 다른 존재도 슬쩍 지나갔을 것이다. 다가오는 뱀을 피해 무너져내린 담벼락 위로 올라가 앉은 비행사는 어린 왕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며 뱀이 포기하고 가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위태로운 담벼락 위에서 하늘을 보며 우주의 별이 아닌 작은 행성에 사는 어린 왕자를 상상하며 <어린 왕자>라는 이야기는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일주일이나 넘게 견디며 비해기를 고쳐야 했던 비행사에게 작은 수통의 물은 무척 적은 양이었을 것이다. 물을 찾아 우물이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 비행사는 분명 정신을 바로잡고 싶었을 것이다. 혼미해지는 정신과 외로움을 '어린 왕자'라는 작은 존재를 만들어 대화하면서 견디어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는 동물 외로움이라는 것에 가장 약한 존재라는 말은 틀 리 말이 아니니까. 


여우를 만나고, 뱀을 만나고, 물을 찾아 우물을 찾던 비행사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만나온 어른들이 우주의 어느 별에 하나씩 있는 이상한 어른으로 캐릭터화했다. 일주일 동안의 시간 동안 비행기를 고치다 쉬는 시간에는 작은 노트에 상상하는 이야기들을 작게 메모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비행기를 고친 비행사는 사는 곳으로 돌아와 그 메모를 하나의 글로 완성하여 출판사에 보여줬을 것이다. 


자신이 사막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어린 왕자'를 만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욱 흥미로운 주제였을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또 어른들이 잊어버린 꿈을 작은 이 글에 담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죽음의 사막에서 살아남은 비행사에게 잊어버리고 이루지 못한 화가의 꿈이 있었듯, 어린이였던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잊은 채 현실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어린 왕자'는 올해 80주년을 맞이하면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동화 같은 내용만을 기억하고, 나 같은 사람은 '비행사'라는 사람이 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번 읽고 나면 잊기 힘든 문장 한 줄이 어딘가에 남아 삶에 계속 영향을 준다. 내가 놓고 살았던 디자이너 또는 작가라는 꿈을 꾸며 아이를 키우는 지금 다시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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